첫 손님이 다녀간 뒤,

나는 이 공간의 의미를

이전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주지 않았다.

생겨나는 일들도,

내 마음도,

예상과는 달리 흘러갔다.







그날 이후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블로그도 그대로였다.

처음 손님이 왔을 때 느꼈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설렘은,

내가 의도한 감정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곳을

굳이 알릴 이유도 없었고,

그렇다고 감출 이유도 없었다.

그저 하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나는 이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들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무언가에 쫓기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올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처럼.

필요 없는 정리를 반복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붙잡고 고치다가

끝내 글 전체를 지워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해가 질 무렵이면

나는 창가에 기대어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들이

시야를 천천히 가려갔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고,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문득 낯설게 들렸다.

누가 온 것도 아닌데,

누가 머문 적도 없는데,

이 공간엔

기척처럼 남아 있는 공백들이 있었다.







‘조용한 글쓰기 공방’이라는 말에는

사실 많은 모순이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건 원치 않았다.

공간이 비어 있기를 바라면서도

계속 비어 있는 건 또 불안했다.

나는 그 모순을

누군가가 깨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문이 열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아무도 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은,

유난히 기운이 가라앉는 아침이었다.

불길하다고까지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예민해지는 날.

낮이 조금 지난 시간,

문이 열렸다.

한 여자가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천히, 그러나 짧게.

그리고 잠시 멈춰서더니

작게 말했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나는 그 말에

기분이 약간 상하는 것을 느꼈다.

표정에 드러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적당히 응대했다.

그녀는 몇 걸음 더 들어오더니

내가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시선엔 분명한 망설임이 담겨 있었다.

이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 생각보다 좀 추운 것 같아요.

근처까지 온 김에 들러봤는데,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 말은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고,

나는 다시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남았다.

사실, 나는 안다.

그녀가 머물 수 없었던 이유를.

이곳은

누군가의 망설임을 환영하는 공간이 아니다.

조금은 낡고, 어딘가 미처 정리되지 않은

남자 혼자 있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불편함이 되기도 한다.







나는 창을 열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낮은 산 너머로

해가 조용히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저번엔

이곳의 의미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는데.”

사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유독

오래된 감정들이 올라오는 날이었다.

이겨야 하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난 2년 동안은

내 마음도 어느 정도는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또 하나의 생각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