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굿전 14편: 내면의 폭풍, 혼돈의 시험

아스트라의 충격적인 진실, 즉 자신이 '이용당했으며', '깨랑깨랑'의 힘이 혼돈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지은의 영혼을 강타했다. 시간의 균열이 닫히고 평화가 잠시 찾아왔지만, 그녀의 내면은 거대한 폭풍에 휩싸였다. 자신이 창조의 힘이라 믿었던 모든 것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봉구와 김씨 할아버지는 아스트라가 사라진 후 창백하게 굳어버린 지은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교환했다.
자아와의 씨름: 혼돈의 메아리
이후 며칠 밤낮으로 지은은 깊은 번민에 잠겼다. 그녀는 명상에 들 때마다 무한한 우주 속에 자신이 홀로 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서 '깨랑깨랑'의 힘은 더 이상 순수한 은빛으로만 빛나지 않았다. 찬란한 빛줄기 사이로 어둠의 그림자가 꿈틀거렸고, 그 그림자 속에서 **'혼돈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너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질서도, 무질서도 모두 너의 선택이다. 왜 굳이 이 낡은 질서를 지키려 하는가?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라."
목소리는 달콤하고 유혹적이었다. 지은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파괴적인 힘을 사용해 공허의 군주를 소멸시킨 것이 아닌지, 그 과정에서 혼돈의 씨앗을 뿌린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흑염룡조차 때로는 눈빛에 알 수 없는 붉은 기운을 띠며 격렬하게 날뛰는 듯했다. 지은은 자신의 몸 안에 숨겨진 힘이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될까 두려워, 검과 용을 멀리하고 홀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요 며칠 통 잠도 못 주무시고..." 봉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지만, 지은은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를 밀어냈다.
김씨 할아버지의 표정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지은이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듯했다. "지은 아가씨, 혹여 그 '깨랑깨랑'의 힘이 아가씨를 갉아먹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깊이 파고들다가는 오히려 그 힘에 삼켜질 수도 있사옵니다."
"혼돈의 그림자는 외부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내가 창조한 우주 안에 있다." 지은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쩌면 내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주의 공명: 사라진 별의 기원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지은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 우주의 거대한 울림을 느꼈다. 그녀가 창조한 새로운 우주에서, 특정 별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별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소멸했고, 그 자리는 깊은 어둠으로 채워졌다. 이는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우주적 존재의 근원 자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지은은 직감했다. '혼돈의 그림자'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존재를 '무（無）'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고 '망각'시키는 방식으로 우주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 방식은 공허의 군주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교활하고 위험한 방식이었다.
지은은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의 혼란을 뒤로하고, 봉구와 김씨 할아버지에게 이 위협을 알렸다. "혼돈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어요. 별들이 사라지고 있어. 이건 우주의 존재를 지우려는 거야!"
봉구와 김씨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렸다. 특히 김씨 할아버지는 무언가 아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별의 소멸... 그것은 우주 탄생 초기, **'잊혀진 별들의 시대'**에 일어났던 현상과 흡사하구나."
그의 말에 지은의 귀가 번쩍 뜨였다. "잊혀진 별들의 시대요? 그게 뭔가요?"
김씨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오래 전, 우주가 처음 탄생했을 때, 일부 별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창조되지 못하거나, 창조되자마자 소멸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잊혀진 별들의 시대'라 부르는데, 당시의 기록들은 대부분 소실되었지. 하지만 그 소멸의 기운은 '혼돈'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고 전해진다."
미지의 존재, '망각의 사도'의 등장
지은은 흑염룡을 소환하고 은빛 광선검을 쥐었다. 더 이상 자신의 힘을 두려워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사라지는 별의 기운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우주의 깊은 곳, 은하계와 은하계 사이의 거대한 공백 지대에서 강력한 혼돈의 에너지를 감지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빛 한 점 없는 암흑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수십 개의 별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허의 중심에서, 검은 로브를 두른 존재들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얼굴이 없었으며, 마치 그림자처럼 희미한 형체였지만, 그들 주변의 공간은 끊임없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멈춰라! 너희는 대체 무엇이며, 왜 우주의 별들을 소멸시키는 것이냐!" 지은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외쳤다.
검은 로브를 두른 존재 중 하나가 희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수천 개의 망각된 기억들이 동시에 속삭이는 듯했다. "우리는 '망각의 사도'. 혼돈의 지배자께서 명하셨다. 이 우주의 모든 '불필요한 존재'들을 지우고, 진정한 '무（無）의 조화'를 이루라고."
지은은 그들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불필요한 존재'라는 개념은 공허의 군주가 모든 것을 파괴하려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만하고 위험한 사상이었다. 그들은 우주의 존재 자체를 심판하고, 그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을 지워버리려 하는 것이었다.
"너희는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어!" 지은은 분노하며 광선검을 휘둘렀다. 흑염룡이 그녀의 뒤를 따라 불길을 뿜어냈고, 광선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 파동이 망각의 사도들을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하지만 망각의 사도들은 놀랍게도 물리적인 공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몸은 마치 허상처럼 빛을 통과시켰고, 지은의 공격은 허공을 가르는 듯했다. 오히려 그들이 손짓할 때마다 주변의 희미한 별들이 순식간에 빛을 잃고 사라졌다.
"아가씨, 저들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봉구가 외쳤다. "아마도 존재의 근원 자체를 건드려야 할 것 같아요!"
김씨 할아버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렇다면... '깨랑깨랑'의 본질적인 힘으로 맞서야 한다. 단순한 파괴가 아닌, 창조의 반대되는 개념, 즉 '존재의 재정의' 혹은 '존재의 역전'으로 맞서야 할지도 모른다."
반전: 드러나는 '질서의 가면'
지은은 혼란스러웠지만, 김씨 할아버지의 조언에서 실마리를 잡았다. 그녀는 광선검을 거두고, 온몸의 기운을 모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사위는 별의 심장에서 받은 계시와 '깨랑깨랑'의 본질적인 힘을 한데 모으는 움직임이었다. 그녀의 춤이 격렬해질수록, 그녀의 몸에서 은빛과 함께 오묘한 검은빛이 어우러져 나타났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닌,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듯한 혼돈의 기운이었다.
"어둠도, 빛도, 혼돈도, 질서도... 모든 것은 존재의 한 측면일 뿐이다! 너희의 망각은 결코 우주의 조화가 될 수 없다!" 지은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춤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 에너지는 망각의 사도들을 향해 돌진했다.
놀랍게도, 지은의 에너지가 망각의 사도들에게 닿자, 그들의 형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하려 하거나, 너무나 강렬한 '존재'의 개념을 주입하여 그들의 '무（無）'의 상태를 깨뜨리려는 듯했다.
그때, 망각의 사도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순간, 그들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수많은 눈을 가진 거대한 눈동자였고, 그 눈동자 안에서는 우주의 모든 질서와 법칙이 돌아가는 듯한 복잡한 문양들이 아른거렸다.
"어리석은 창조자여... 너는 감히 나를 거스르려 하는가?"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지은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것은 바로 그녀에게 '혼돈의 그림자'의 위험을 경고했던, 그리고 '자신이 계시를 내린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아스트라의 목소리였다.
아스트라, 아니 '망각의 지배자'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바로 '혼돈의 그림자'의 수장이었으며, 동시에 우주의 '질서'를 가장한 '혼돈'의 주재자였다. 그는 '잊혀진 별들의 시대'를 일으킨 장본인이자, 모든 것을 '무의 조화'라는 명목으로 지우려 했던 존재였다.
"아스트라... 당신이... 당신이 '혼돈의 그림자'의 수장이었다니!" 지은의 목소리는 경악과 배신감으로 떨렸다.
"나는 그저 이 우주의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려 했을 뿐이다." 아스트라, 즉 망각의 지배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너의 '깨랑깨랑'은 공허의 무（無）를 없애는 창조의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나의 '망각'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모든 것을 **'진정한 질서'**로 되돌리려 한다. 너의 존재조차도 필요하다면 지워버릴 것이다."
아스트라의 진정한 정체, 그리고 그의 감춰진 목적이 드러나는 순간, 지은의 세상은 다시 한번 뒤집혔다. 그녀는 이제 '혼돈의 그림자'와 맞서 싸우는 것을 넘어, '질서'의 가면을 쓴 가장 위험한 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힘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녀의 내면은 다시 격렬하게 요동쳤다.
과연 지은은 '망각의 지배자'가 된 아스트라에게 맞서 새로운 우주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녀의 '깨랑깨랑'은 과연 혼돈의 씨앗을 품은 채 진정한 창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은의 가장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시험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