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처음이었다
탈고는 마지막에 하는 것이라고
결과는 끝자락에 보는 것이라고
어른은 한참뒤에 되는 것이라고
만 오천 원 짜리 참고서 훑듯이
앞장 스물 두 페이지만 낡아서
이제 다음 단원을 어찌 나갈지 고민인 나에게
나중에 배운다던 모든 것들은
나에겐 항상 처음이었다
언제까지고 다음으로 한 장
나아가기 위해서 첫 장을 펼쳐야 했는지
시꺼멓게 때가 타고 구김살 지고
누렇게 얼룩이 지고 연필자국 남고
반 쪽 짜리 지우개로 벅벅 긁은 흔적
하얗던 종이 얼룩에 엉엉 울다 일어난 흔적
이미 넘겨버린 페이지에 조금만
더 조금만 있다가 가고 싶은데
책 속에선 소나기가 내리고
창 밖에선 싸리눈이 나리고
갈 길이 멀다하며 손짓하는 다음장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머물지 못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