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틀 무렵 수평선 너머에 무수히 많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의 차가운 기운은 주변의 공기까지 얼어붙일 정도였다.

칼을 든 자 활을 든 자 창을 든 자

한 명 한 명이 죽음을 가져오는 기사처럼 무시무시한 안광을 내뿜으며 전쟁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단 하나

눈 앞에 보이는 성의 함락뿐이었다.


성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인영들이 급하게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 전쟁의 마지막이 온 것을 알고 있는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자들이 눈에 띄게 보였다.

'부디 우리를 굽어 살펴주소서..'

성안의 기사들은 눈 앞에 닥친 전투를 위해 자신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전의 시간.

죽음의 시간.

지평선 자그마한 인영들의 모습이 이내 얼굴을 분간 할 수 있을 정도로 눈 앞에 다가 왔다.

고요한 떨림이 양측 군사에게 전해졌다.

성벽 가장 높은 곳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성안의 군사들에게 말하기 시작했기에 잠시의 적막이 깨어졌다.

"뒤를 봐라!!"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올라오는 힘있는 목소리에
죽음의 공포에 먹혀있던 이들이 정신을 차렸다.

"뒤를 보아라!!"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에 성벽에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그곳엔 얼마전까지 어린아이들이 뛰어놀았던 공터
와 얼마전까지 거리의 여인들이 수다를 떨던 작은 쉼터 그리고 자신들의 가족이 머물던 집, 추억 그 모든 것이 있었다.

"다시 앞을 보아라.."

방금과는 달리 큰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일제히 앞을 바라봤다.

"지켜야 한다."

낮고 작은 목소리 하지만 무언가 담겨있는 목소리에 병사 하나가 무언가를 느낀듯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네 명이 되고 그 수는 점점 늘어가며 모든 병사들한테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붉은 기운에 방금까지의 적막함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이 전쟁의 시발점이 된 듯

성밖의 군사들이 차가운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여인 때문에 일어난 전쟁

훗날 사람들은 이 전쟁을 여인의 이름을 따
'로즈 마리엘 전쟁' 이라고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