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상태로 오래 살아가는》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네 삶은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 백 명 중 한 명은 채 돌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유년기를 넘긴다 해도 평균 수명은 고작 마흔, 쉰에 머물렀지요. 물론 장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노년의 삶이란 대개 병고에 시달리기 시작하면 그리 길지 않아 죽음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질병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삶의 끝자락은 짧고 고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경이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의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유아 사망률은 거의 사라졌고, 평균 수명은 여든, 아흔을 바라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오랜 삶을 누릴 것을 기대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 축복과 같은 변화 속에는 역설적인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바로 '아픈 상태로 오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병들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생을 마감했다면, 이제는 만성 질환을 안고, 때로는 의식 없이 연명 치료에 의지하며 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동시에, 아이 울음소리는 점점 더 귀해지고 있습니다. 낮은 출생률은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웁니다. 이처럼 극적으로 변화한 생애 주기는 우리의 삶의 방식, 가족의 형태, 그리고 죽음을 바라보는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문득, 이러한 인간 개개인의 삶의 변화가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과거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국가는 끊임없이 태어나고 또 소멸했습니다. 마치 연약한 신생아처럼, 막 탄생한 나라는 외세의 침략이나 내부의 분열이라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제대로 기틀을 잡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설령 강력한 제국으로 번성한다 해도, 그 영광이 영원히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흥망성쇠의 주기는 비교적 짧았고, 지도는 끊임없이 다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현대를 보십시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와 규범 속에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내전이나 분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한 나라가 완전히 지도에서 사라지거나 새로운 나라가 쉽게 세워지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 기존 국가의 틀은 좀처럼 깨지지 않고, 설령 내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해도 그 형태는 끈질기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노쇠했지만 쉽사리 죽음에 이르지 않는 현대의 노년처럼, 많은 국가들이 과거보다 훨씬 긴 수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신생 국가의 '출생률'은 낮아지고, 기존 국가의 '사망률' 또한 현저히 감소한 셈입니다.
이 놀라운 공통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국가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우리 인간 개개인의 삶의 특징이 국가 전체의 모습에 반영되기 때문일까요?
개인의 수명이 길어지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사람들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개선을, 혁명보다는 질서 유지를 선호하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만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전쟁이나 극단적인 이념 대립을 기피하는 심리가 사회 전반에 퍼졌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낮은 출생률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대신, 현상 유지에 대한 요구를 강화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긴 노후를 대비하듯, 국가 역시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개인의 삶과 국가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 세계화, 국제기구의 역할 강화, 정보 통신의 발달 등 국가의 수명을 연장시킨 복합적인 요인들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개인의 수명 연장과 국가의 지속성 강화는 과학 기술 발전, 질병 관리 능력 향상, 사회 시스템 안정화, 전 지구적 교류와 협력 강화라는 동일한 시대적 배경에서 파생된 두 개의 가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이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애 주기와 그들이 속한 공동체인 국가의 모습이 이토록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는 점은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개인의 삶이 길어지고 그 형태가 변화하면서 우리가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듯, '장수하는 국가', '새로 태어나지 않는 국가'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국가의 역할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결국, 국가의 운명 또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과 국가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늙은 세계, 늙은 국가, 늙은 인간
세 단어는 마치 한 세트처럼 엮여,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시대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늙은 세계.
더 이상 미지의 대륙을 찾아 떠나는 탐험가의 시대가 아닙니다. 지구 곳곳은 이미 알려지고 연결되었으며, 새로운 질서보다는 기존의 틀 안에서 관계를 조정하고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쌓인 문제들（환경 오염, 자원 고갈, 뿌리 깊은 갈등）과 씨름하며,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처럼 과거의 행적이 남긴 결과들을 책임져야 하는 세계입니다.

늙은 국가.
폭발적인 영토 확장이나 혁명적인 체제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관리와 현상 유지가 중요해진 나라들이 많습니다. 특히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인구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사회 시스템은 늘어난 노년 인구를 부양하고 복지를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국경은 견고해졌고, 새로운 국가의 탄생보다는 기존 국가의 지속과 관리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은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변화를 가로막는 관성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늙은 인간.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유례없이 길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며, 노년기는 더 이상 짧은 여생이 아닌 인생의 중요한 한 막이 되었습니다. 이는 지혜와 경험의 축적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길어진 노쇠의 시간, 만성 질환과의 싸움, 사회적 역할의 상실과 고독이라는 그늘도 동반합니다. 개인은 길어진 노후를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 사회는 어떻게 이들을 부양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늙음'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늙은 인간들이 모여 늙은 국가를 이루고, 이러한 국가들이 모여 늙은 세계를 구성합니다. 개인의 수명 연장과 저출산이 인구 구조를 바꾸고, 이는 도시와 국가의 활력과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안정되었지만 때로는 활력을 잃고, 경험이 풍부하지만 변화에는 더딘, 성숙했지만 동시에 쇠락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시대.
우리는 이 '늙음'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