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짧지만 달콤한, 혹은 짧아서 더 절실한 점심시간.
위장은 텅 비어 아우성이고, 머리는 오전에 이미 지쳐있다. 이 허기와 피로를 달래줄 구원자는 역시 배달음식이다. 스마트폰을 켠다. 익숙한 앱 아이콘들이 나를 유혹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분식… 화면을 가득 채운 메뉴의 숲 속에서 나는 길을 잃는다. 어제 먹었던 메뉴는 피하고 싶고, 너무 자극적인 것은 부담스럽다.
별점과 후기를 꼼꼼히 살피며 신중하게 후보를 압축한다. 마치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 선 사람처럼, 이 작은 선택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래, 오늘은 너다!’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결정을 내리고 주문 버튼을 누른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롯이 기다림의 몫이다.
예상 도착 시간까지 남은 30분. 머릿속으로는 이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그 완벽한 비주얼을 그리고 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음식 맛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는 숙성 과정과도 같다. ‘띵동-’ 드디어 기다리던 벨 소리. 반가운 마음에 현관으로 달려 나간다.
포장을 풀고 마주한 음식. … 어딘가 이상하다. 내가 상상했던,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양은 적고, 색감은 칙칙하며, 온기는 미지근하게 식어있다. 한 입 먹어본다. 혀끝에 감도는 것은 감칠맛이 아닌 밍밍함, 눅눅함, 혹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낯선 맛이다. 아, 이 한 끼를 위해 얼마나 고심했던가. 기다림의 시간 동안 얼마나 설레었던가. 허탈함과 함께 작지만 확실한 배신감이 밀려온다.
문득, 이 작은 점심 메뉴 하나에서 인생의 거대한 질문과 마주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예상치 못한 실망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노력과 기대가 반드시 행복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배달 음식 하나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은 점심 메뉴 하나에도 나의 시간과 고민, 약간의 설렘과 기대가 담겨 있었는데, 그 결과가 이토록 허무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과 기다림, 그리고 그 끝에서 경험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씁쓸한 뒷맛을 남긴 점심을 꾸역꾸역 넘기며 생각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완벽한 메뉴를 찾아 헤매는 미식가의 여정이 아니라, 때로는 맛없는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다음 끼니를 다시 기대하고, 또 다른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실망이라는 양념 또한, 삶이라는 식탁을 채우는 하나의 맛일 뿐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남은 오후를 살아낼 힘을 얻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