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같은 삶이었다.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만족감을 주려고 저글링따위를 하며 살았던것 같다.

정작 나도 그런 삶이 재미도 있었지만 관객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피로감이 씻은듯이 사라지던 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 서커스에 온

기괴한 관객이었다.

내가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면 모자 밑의 비밀장치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소리쳤고 내가 능숙하게 외줄타기를 끝내면 우스꽝스럽게 외줄타기를 흉내내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서커스 천막 뒷편에서 조용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녀가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온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내 머릿속에선 경보장치가 켜졌지만 그녀는 너무 편안한 얼굴로 내 코 앞까지 왔다.

이미 내 머릿속은 엉망이 되고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내게 이 서커스의 팬이라고 했다.

마음이 놓였다

아 모든게 그래서 그랬구나 정말 다행이다

곧 두번째 막이 시작된다

관객들의 눈빛이 묘했다.

그동안의 패턴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여는 동네처럼 1막보다 한층 기대감이 커진 맑은 눈빛을 즐길수 없었다.

극성팬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됐지만 곧 그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만들어주리라 생각했다.

가장 고난도 서커스의 연속이었다.

원판에 매달린 미녀의 머리위 사과에 마지막 칼이 꽂혔다.

이상했다.

박수와 함성의 타이밍이 이상했다.

나만이 느낄수 있는 이질감이었다. 분명 이상했다.

마지막 코너인 사자 묘기였다

이때 내 마음가짐은 가슴떨림이었다.

끝맺음과 동시에 관객의 함성에 감동이 전해지는 가슴 벅찬 떨림이 아니었다.

어서 빨리 끝내고 싶다는 가슴벅참이었다.

끝내고 허름한 숙소의 침대에서 이불을 뒤엎고 싶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묘기는 시작됐고 사자는 마지막 불고리를 통과해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작은 원통 무대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끝냈다

이윽고 알아선 안되던 이상한 관객들의 박수타이밍의 비밀을 알았다.

관객들은 그녀의 반응을 본뒤에 따라했다.

그녀가 함성을 지르니 좌석 곧곧에서 함성이 나왔다

그녀가 손을 드니 좌석 곧곧에서 손이 올라왔다.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암순응이 되자 300명의 관객이 모두 그녀의 얼굴같았다.

공포감과 안도감이 같이 들었다.

그래도 끝이 났다는 안도감

이제 쉴수 있다는 안도감.

이불로 세상의 시선을 막을수 있다는 안도감.

저 밤하늘을 순항중이던 내 서커스가 곤두박질 칠것 같은 공포감.

그래도 항상 그랬듯이 천막뒤에서 담배는 태우고 가리라.

그녀가 저 멀리서 걸어왔다.

제발 이 시간만은 날 좀 놔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난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난 행복을 전하고 기대감을 받아야하는 서커스단장이니까

.

그녀는 또 다시 내 코앞에서 이런 저런 말을 했다. 자기도 서커스를 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로 시작하며 그녀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대응하다보니 어느새 난 내가 서커스를 하게된 과정 서커스의 비밀을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없었는데 난 모든 걸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진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나의 서커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이제 난 집으로 가면 된다.

행복하다 이 이상한 안도감은 뭘까? 왜 쉽게도 감동하던 내 가슴에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걸까? 알수없는 감정을 억지로 술과 함께 털어넣었다.

다음날 서커스준비가 한창이다.

어제밤에 마신 술과 이 지역의 맛있는 음식들이 온몸을 재충전시켜주었다.

노을이 지면 서커스는 시작된다

내가 이 지역 밤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은 내 두뇌 회전에 힘을 실어준다.

막이 오르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같은 자리에서 너무 큰 이상한 눈빛과 이빨이 너무 많이 보이는 웃음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맑은 머릿속이 한순간에 혼탁해졌다.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자 모든 관객들이 웃었다

그 웃음은 신기함이나 놀라움의 감정이 아니었다.

모자 밑 비밀장치의 비밀을 예측했고 그것이 예측한대로 진행됐다는 것에 대한 호응이었고

이제 이 쇼난 어제와 같이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이 쇼의 끝에 관객들의 실망과 비아냥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떡해야 할까

어떡해야 할까

내가 신이 되어 시간을 둘로 쪼개어 두가지를 같이 경험해나가볼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어떡해야 할까

그래

관객들을 예측불허의 놀라움의 순간으로 밀어넣어야 한다.

난 자유로운 들개다.

나는 먹이를 따라 덫을 향해가지 않는다.

몇 년전에 했던 총알 피하기와 칼삼키기가 있다 

머리속에 새로운 스케쥴을 만들고 그 묘기들의 수법을 다시 차근차근 떠올려봤다.

와줄타기 코너를 빼고 칼삼키기로 전환했다.

칼을 목구멍 깊숙히 밀어넣고 뺐다.

예상대로 관객은 놀라움과 신선한 반응이었다.

자 이제 총알 피하기다 

저 멀리 미녀가 라이플을 쏘면 난 묶여있던 수갑을 풀고 과녁에서 탈출하면 된다.

일전에 미녀조수가 합을 맞춘 타이밍보다 일찍 쏴서 위험했던 뒤로는 안한 모기지만 또 이것처럼 쉬운 묘기도 없다.

저 멀리 조수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고 날 노려본다

탕!

난 아직 수갑을 풀지 못햇다

난 지금 죽은건가? 수만개의 생각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관객사이에서 그녀의 화약총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분 나쁜 미소는 여전히 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난 이제 그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미녀조수의 총을 빼앗아 지금 당장 죽여야 한다

어떻게 쏴야 가장 천천히 고통을 느끼며 확실히 죽일까?

자유로운 들개도 가끔 사람을 공격하고 사람을 작아먹지 않나?

이제 내 머릿속은 그녀 뿐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내 머릿속에서 그녀를 죽여야 한다.

그래야 이 쇼를 무사히 끝낼수 있다.

관객들을 미친듯이 둘러보았다.

순진한 작은 소녀가 보였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단발을 한 천사다 그 아이는 천사다  사상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서커스단장에게 하늘에서 보내준 마지막 천사다.

그 아이의 눈은 왠지 맑고도 날카로웠다.

난 예정대로 수갑을 풀고 총알을 피해 무사히 탈출했고 그 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콧물이 흐르는줄도 모르는 아이의 얼굴은 행복감과 격정적인 반응이 스쳐지나갔다.

다른 모든 간객들이 악마같은 표정같았고 그 아이는 천사같았다.

그 아이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뒤로 몇년 뒤 난 서커스를 그만두고 작은 정비소를 운영한다.

이 일도 어쩐지 서커스의 연장선 같았다.

차가 고장난 손님의 불안한 마음에 다행감을 주는 것이 서커스의 그것같기도 했다. 의심많은 손님에게 오히려 교묘한 말로 불안감을 조성시켜 추가정비를 끌어내기도 하고 심드렁한 손님에게 음료를 주면서 내 재주를 맘껏 뽐내기도 했다.

그런 묘기를 무사히 마친후 셔터문을 닫는다

영업을 마친 적막한 정비소 사무실 티비에서 나온 풍경은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기이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였다.

온 동네 사람들이 서커스에 집착하는 마을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서커스 단장의 모자와 낯익은 콧수염을 그려넣고 꺄르르 웃고 있었고 

어른 아이 할것 없이 강아지를 링에 통과 시키고 모자에서 쥐를 꺼내고 있었다.

마을에선 산속 계곡사이로 줄타기를 하다가 숨지기도 하고 

과거 어떤 여자에 의해 엽총 사고도 났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