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 글 작성일 기준으로 유료 결제분인 35, 36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어떠한 운명이나 사건으로 인해 헤어지고, 결국에 다시 재회하는 스토리는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재이다. 견우와 직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보면 이러한 서사는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위험하지 않아요 NPC씨』는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 '두 연인의 재회'라는 전통적인 사랑 이야기 구조를 따르면서도, 여러 모티브와 게임적 세계관을 교차시켜 인간의 도전과 존재를 심도있게 고찰했다.
본 비평에서는 작품에서 사용한 여러 모티브들과 작품의 세계관 설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 요소들이 어떻게 작품의 주제로 이어지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웹툰 스토리 간단 설명
주인공은 게임의 플레이어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게임 속 npc 들이다. npc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처럼 활동하지만, 실제로는 시스템 상의 많은 제약이 걸려있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플레이어 뿐이다. 예를 들어 npc는 시스템 창을 볼 수 없고, 특정 문장을 반복하기도 하며, 게임의 설정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길드 건물에서 일하는 npc '엠마' 등 여러 인물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발명가 '스라키'와 대리자 '이라그네프'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과거 연인 사이로, 과거 마물의 침입을 자주 받는 작은 마을에서 같이 생활하며,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등불'을 만들어가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스라키가 등불을 완성하여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지만, 사제였던 이라그네프가 신의 대리자로 지명되고 플레이어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성역'으로 강제 이동되면서 두 연인은 이별하게 된다. 이후 스라키는 그녀를 잊지 않고, 그녀가 있는 성역에 닿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실패하게 되고, 마지막 도전을 준비하던 시점에 플레이어를 만나게 된다.

이카루스 모티브
주인공인 '스라키'의 이름은 이카루스를 뒤집은 것으로, 이카루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이카루스 신화는 하늘을 날아 태양에 닿고 싶어하는 인간의 동경심과 욕망, 그런 동경심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인간의 무모한 도전, 만족할 줄 모르고 너무 높게 날아버린 인간의 오만, 결국 태양에 닿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등을 상징한다. 특히 '인간의 무모한 도전'과 '한계'라는 특성이 많이 차용됐는데, 발명가라는 스라키의 직업으로 이것이 표현이 된다. 발명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과거에는 등불을 만들어 마을을 지키는 것이 도전 과제였지만, 연인인 '이라그네프'가 성역으로 간 후에는 성역에 닿아 그녀와 다시 만나는 것이 그의 도전이 되었다. 즉 불가능에 대한 도전과 연인과의 재회를 등치한 것이다.

시스투스 모티브
시스투스라는 특이한 꽃도 스라키의 모티브가 된 요소 중 하나이다. 시스투스는 스스로의 몸을 태워 주변을 불태우고 주변이 재가 되면 거기에 씨를 뿌려 다시 자라나는 꽃으로, 놀랍게도 지중해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는 꽃이라고 한다. 휘발성 기름을 발산하여 식물이 불에 잘 타도록 하며 자연 발화하기도 한다고 하므로, 실제 생태가 웹툰에서의 설정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이 번식하기 위해 주변을 불태운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꽃으로 불린다고 한다.
시스투스는 마을을 지킨 발명품으로도 사용되지만, 불타버려 생긴 재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른다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스라키가 작은 가능성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시스투스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다시 꽃을 피우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스투스는 스라키가 끝없는 도전과 실패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시스투스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모습은 이카루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가 몸이 불타버린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카루스와 달리 시스투스와 스라키는 한번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몸을 불사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즉 스라키는 이카루스와 시스투스가 합쳐져, 도전-실패-절망-희망-도전의 운명을 반복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미약한 인간의 도전을 지지하는 동반자
스라키가 끝없는 도전을 반복하는 밝은 빛을 상징한다면, 이라그네프는 그 빛을 반사해 묵묵히 밤하늘을 밝혀주는 달을 상징한다. 스라키가 등불을 발명하기 전이라 마을이 어둠에 갇혀 있었을 때, 그가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지지하는 이라그네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빛 한점 없는 밤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요즘은 가로등과 조명이 많아 밤에도 길을 가는데 문제가 없지만, 보름달이 뜬 밤에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을 걸으면 생각보다 달빛이 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두운 밤, 길을 밝혀주는 달과 같이, 외롭고 어두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이라그네프가 있었기 때문에 스라키는 등불을 발명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스라키를 상징하는 시스투스는 재를 양분 삼아 다시 피어오른다는 점에서, 그의 도전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라그네프는 스라키의 도전을 믿고 지지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니라 불가능에 도전하는 미약한 인간과, 그를 지지하는 동반자라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가 더욱 의미가 있다. 현실에서도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외로운 사람들은 주변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시스템 제약 내에서의 도전과 극복
이라그네프와 달을 상징한다면, 반대로 스라키는 밝은 빛을 발산하는 해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그들이 재회하는 시간대가 낮과 밤이 교차하는 황혼이었다는 점도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해와 달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만날 수 없기에 그들은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스라키의 도전을 지지해주던 이라그네프가 곁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스라키의 도전이 계속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 웹툰의 강점은 인물의 한계와 극복의 서사가 웹툰의 설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웹툰의 게임 세계관 속에서 비교적 자유도를 많이 가진 것은 게임 플레이어인 주인공뿐이고, 그외 npc들은 게임의 설정과 제약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스라키가 연인이 있는 성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하고 주인공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게임의 시스템으로 정해져 있는 운명이다.
그렇기에 게임 설정과 퀘스트 즉, 게임 속 미리 정해진 이야기의 흐름상 스라키는 도전을 반복하다가 죽던가, 도전을 포기하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 정착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스라키와 이라그네프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어떻게든 둘이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게 노력했고, 결국은 게임의 시스템 속의 허점을 이용해 두 연인이 재회할 수 있었다. 이 서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설득력 있으면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첫째, 극복의 방식이 게임의 시스템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틈새를 이용해서 제한적으로 극복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세계관 내에서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극복한 것이기에 독자들에게는 현실적이라고 느껴져 설득력 있다. 또 제한적인 극복이었기 때문에 아련함이 배가되는 동시에, 스라키가 도전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둘째, 주인공이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스라키를 돕기 위해 그와 마찬가지로 작은 가능성을 향해 도전을 반복해서 극복이 이루어졌다. 주인공이 스라키와 동일한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스라키가 지금까지 일말의 가능성을 향해 노력했던 시간과 노력들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웹툰은 많은 모티브들을 혼합해서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이야기가 난잡하지 않고 오히려 매우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이는 다양한 모티브들을 인물들의 특성에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과, 치밀하게 구축해 놓은 세계관 속에서 인물들의 한계와 극복의 서사를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야기의 힘은, 그 이야기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에 어떻게 저항하는가에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인물의 정체성과 의미가 만들어진다. 『위험하지 않아요 NPC씨』는 '게임 속 npc'라는 온갖 제약이 가해져 있는 인물의 저항과 극복 서사를 통해 완성도 높은 서사적 감동, 즉 인간의 의지의 숭고함을 전하는 작품이다.

서사에 집중해 설명하느라 내용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각 화마다 타이틀 그림들이 미묘하게 바뀐 점, 좌우 컷 분할 방식을 이용해 두 연인의 단절을 표현한 점, 30화와 35화의 bgm, 엠마와 주인공의 일정한 역할, 온갖 복선（아이템, 퀘스트） 등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구석이 없는 완벽한 goat 웹툰이었다. 아직 이 웹툰을 보시지 않은 분들은 꼭 한번 봐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