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불타는 모루의 만찬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상인들은 비틀거리며 객실로 올라갔고, 몇몇은 어지러운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잠이 들어 있었다. 잠이 든 취객을 한명 한명 깨워 모두 객실로 올려보낸 뒤에야 레이나와 토비는 모루 모양의 의자에 걸터앉아 쉴 수 있었다. 청소를 마무리한 그림즈비가 그들 곁을 지나가다, 의자에 기대 해조류처럼 늘어져 있는 토비를 힐끗 바라보며 무심한 척 말했다.

“오늘 잘했어, 꼬맹이. 생각보다 능숙하더군.”

토비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살짝 일으켰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토비가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귀를 후비적거리면서 말했다.

“우쭐대지 마라. 초짜치고 그럭저럭 쓸만했다는 뜻이니까.”

그림즈비는 고개를 홱 돌리며, 역정을 내듯 말했다. 그 말에 오히려 기운을 얻은 토비는 언제 지쳤냐는 듯 그에게 오늘 서빙을 하며 이룬 업적들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림즈비는 후회로 가득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레이나는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잠시나마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바쁜 주방일을 하느라 잠시 잊고 있던 걱정거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찬은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아직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소지품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윈델렌으로 가는 상단도 구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주방 문이 쾅 소리와 함께 열리며 톰의 험악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레이나와 토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의자를 우악스럽게 잡아빼고 앉았다. 그의 험상궂은 얼굴이 램프 불빛에 흔들려 더욱 위압적으로 보였다. 그는 낮음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 애송이 녀석들.”

그는 위협적으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은 어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네들을 계속 고용하고 싶은 정도로군.”

레이나와 토비는 그의 표정을 보곤 잠시 혼란에 빠졌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그때, 토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톰. 혹시... 지금 웃으신 거예요?”

톰은 다시 얼굴을 원상태로 되돌리며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웃을 줄 아시는지 몰랐어요, 톰.”

토비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말했다.

“조용!”

톰은 근엄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살짝 내리쳤다. 그러나 그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레이나와 토비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톰은 팔짱을 끼고 그들의 웃음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이나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 웃었나?”

레이나와 토비가 정신없이 웃다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훔쳐낼 때쯤, 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상단 대표에게는 잘 이야기해뒀네. 엑스브리지에서 재정비하고 윈델렌으로 갈 때, 자네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지.”

레이나는 톰의 말에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톰은 차분한 목소리로 레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상단에 합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일단 자네의 소지품을 찾는 것이겠지?”

레이나는 톰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톰은 말을 이어갔다.

“자네들의 소지품이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이 가는 것이 있네. 자네들이 오늘 안내원에게 안내를 받았다고 했었지?”

“맞아요!”

토비가 불쑥 말했다.

“복장은 안내원이라기엔 조금 허름했을 거고.”

“맞아요!!”

토비가 이번에는 고개를 거세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톰은 작게 한숨을 쉬며 큰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이 쓰는 수법이네. 안내해준다고 하고 여행객들이 방심했을 때, 물건을 훔치지. 요새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여러모로 문제가 되고 있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 자식일 줄 알았다니까? 지금 당장 녀석을 찾으러 가야겠어!”

“진정하게, 토비. 내가 자네들이 이렇게 나올까 봐 아까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

토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분개하자, 톰이 그를 진정시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같이 어두울 때는 도적단도 빈민가 주변을 마음 놓고 활보한다더군. 굳이 가겠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내일쯤 시체로 발견될걸세.”

톰의 무시무시한 말에 토비는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되어 슬그머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하루 묵게. 숙박비는 필요 없어. 오늘 충분히 그 값어치 이상으로 일해줬으니. 그리고 내일 아침에 나와 함께 빈민가로 가보세. 빈민가 사람들과 조금 친분이 있으니 잘 이야기해보겠네.”

말을 마친 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레이나와 토비에게 방을 안내해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내일 일찍 출발할테니, 푹 쉬어둬.”

톰은 두 사람을 안쪽 방으로 안내하며 짧게 당부했다. 레이나와 토비는 간소한 침대에 각각 걸터앉았다. 둘은 지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쉽지 않은 하루였어, 레이나.”

“그러니까... 내일은 꼭 물건을 되찾았으면 좋겠어.”

말을 마친 레이나는 쓰러지듯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조금씩 그들이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객실들의 불빛도 하나둘 잦아들었다. 창밖에 희미한 달빛만이 그들의 방안을 은은하게 비추었고, 불타는 모루는 평온한 밤을 맞이했다.


-

엑스 브리지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거리는 아침의 활기로 가득 찼다. 따스한 햇볕이 거리를 비추고 사람들은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벽에 바로 붙어있는 빈민가에는 볕이 들지 않아, 여전히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그넬은 빈민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표정 없이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던 그의 머릿속에 어젯밤 고르칸의 비열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빈민가에서 제대로 상납금을 받아오지 않으면 빈민가 버러지 녀석들은 물론 네 놈도 족쳐주지. 내일 아침까지 상납금을 가져와, 빌어먹을 빨간 눈깔.’

고르칸은 이그넬의 어깨를 으스러질 정도로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그를 위협했었다.

“쓰레기같은 자식.”

이그넬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나지막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오늘도 역시 빈민가 사람들에게서 제대로 돈을 받아낼 생각은 없었지만, 겁주는 시늉이라도 할 요량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였다. 빈민가 골목 모퉁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네. 다만 이 친구들이 잃어버린 물건이 있으니 한번 찾아봐 주게.”

덩치 큰 모그림이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일행을 둘러싼 빈민가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그넬은 멀찍이 몸을 숨긴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목소리와 실루엣이 낯설지 않았다.

‘톰?’

덩치의 얼굴을 확인한 이그넬은 중얼거렸다. 종종 빈민가 아이들에게 빵과 음식을 나눠주던 사람이었다. 톰의 옆에는 초조해 보이는 여자와 적운 넬피아 남성이 서 있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발을 들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것은 그들이 곤경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조합이군.’

이그넬은 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의 말소리가 좀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새미라는 아이가 이 친구들을 안내해준 이후로 물건이 사라졌다고 하네. 이 친구들에겐 아주 중요한 물건이니, 찾게 도와주게나.”

톰은 차분한 목소리로 설득했지만, 빈민가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 빈민가의 남성이 톰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곳에 그런 애는 없어. 왜 빈민가에서 벌인 일이라 확신하나, 톰?”

“그런 뜻이 아닐세. 불편했다면 미안하네. 그저 한번 찾아봐 달라고 하는 것뿐이네.”

톰은 손사래를 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빈민가 사람들은 여전히 험악한 표정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넬피아 남성의 눈에 사람들이 비켜 선 사이로 한 소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기! 새미! 너 맞지?”

넬피아 남성이 소리치자, 소년은 화들짝 놀라 인파 속으로 재빠르게 숨어버렸다. 넬피아 남성이 소년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자 빈민가 사람들이 일제히 몽둥이와 날붙이 꺼내들고 그를 막아섰다. 당황한 톰은 서둘러 그의 어깨를 잡고 뒤로 물러서게 했다. 빈민가 사람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톰에게 경고했다.

“이 이상 소란을 피운다면 흠씬 두들겨 패주지. 썩 꺼져!”

“알겠네. 알겠네. 이만 돌아가겠네.”

톰은 황급히 두 손을 위로 올리며 더는 추궁할 생각이 없음을 표현하며 말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빈민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물러섰다. 이그넬은 그들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벽 뒤에서 나와 빈민가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몽둥이를 들고 있던 한 빈민가 남성이 이그넬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 주춤거렸다.

“펠튼 삼촌, 오늘은 상납금을 줘야 해. 내 입장이 곤란하다고.”

이그넬이 건조한 말투로 한 남성에게 말했다.

“카.. 카엘...”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이그넬은 매서운 붉은색 눈으로 남성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 미안해. 돈이라면 어젯밤에 그 녀석이 가져갔어. 돈이 될만한 물건까지 전부다.”

남성은 더듬거리며 황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이그넬은 한쪽 눈을 가늘게 뜨며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 녀석?”

“두목 옆에 있던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던 녀석 있잖아. 녀석이 직접 찾아와서 모조리 다 가져갔다고.”

남성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남성의 말에 이그넬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더스크 자식... 나를 또 엿먹이다니.’

이그넬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자 남성은 그의 눈치를 보며 쭈뼛거렸다. 이그넬은 분노를 삼키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남성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톰이랑 같이 찾아온 녀석들. 뭐 하는 녀석들이야?”

“아. 물건을 잃어버렸다더군. 빈민가 아이에게 소매치기당했다고. 돈은 됐으니까, 물건만이라도 돌려달라던데.”

남성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이그넬은 남성의 말에 흥미가 생긴 듯 추가적으로 물어보았다.

“뭘 잃어 버렸다는데?”

“뭐였지? 상자하고 편지 봉투라던가?”

남성의 말에 이그넬은 턱을 손으로 받치며 생각에 잠겼다.

‘그것 때문에 더스크 녀석이 직접 납셨던 건가?’

잠시 고민하던 이그넬은 남성에게 급작스럽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속삭이듯 물었다.

“그 녀석들이 말한 물건, 실제로 가지고 있었어?”

“그건 정말로 몰라! 있었든 없었든 지금은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

남성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대답했다. 잠시 이그넬은 남성을 시험하듯 응시했다. 남성은 눈길을 피하고 안절부절못했으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그넬은 입꼬리를 올리며 조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쓸모가 있는 녀석들일지도 모르겠군.’

이그넬은 몸을 살짝 일으키며 남성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도적단에서 물자를 좀 빼돌렸어. 성벽밖에 창고에 가져다 놓았으니까 들키지 않게 잘 가져오라고. 다음부터는 필요한 돈은 따로 숨겨놔. 전부 다 빼앗기지 말고.”

이그넬의 말에 남성은 고개를 푹 떨궜다. 말을 마친 이그넬은 뒤를 돌아 걸음을 옮겼다.

“매번 고마워. 카엘.. 아니, 이그넬.”

남성은 이그넬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이그넬은 대답하듯 대충 손을 올리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

불타는 모루는 침통한 분위기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레이나는 여관의 돌바닥만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톰은 테이블을 한손으로 짚고 비스듬이 서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수다스러운 토비마저 이따금씩 한숨을 쉴 뿐 조용했다.

“도움이 못되서 미안하네.”

톰이 레이나를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레이나는 톰에게 애써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미안... 내가 흥분해서 모든 걸 망친 것 같아.”

토비도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레이나는 토비의 잘못도 아니라는 듯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올 줄은 나도 몰랐네. 뭔가 잘못되었어.”

톰이 생각에 잠긴 듯한 멍한 표정으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불타는 모루의 문이 조심스럽게 끼익 열렸고 조그만 그림자가 망설이듯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레이나와 토비는 그의 모습을 보자 멈칫하며 가만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눈물 자국이 선명한 꼬질꼬질한 얼굴, 헤진 옷차림새. 새미였다.

“새미?”

레이나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레이나와 눈이 마주친 새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 힘겹게 참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레이나는 새미의 모습에 놀라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울어?”

레이나는 새미와 눈높이를 맞추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나의 따듯한 말에 새미는 봇물이 터진 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말없이 새미를 따듯하게 안아주며,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렇게 레이나는 새미가 진정할 때까지 한참동안이나 그를 안아주었다.

잠시 뒤, 새미는 훌쩍거리다가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제가 누나의 물건을 훔쳤어요. 아까 우리 동네에 오셨을 때 들었어요. 소중한 물건이라고. 정말 죄송해요.”

새미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도 터진 울음의 여운이 남은 듯 그는 간간히 흐느꼈다.

“그랬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새미.”

레이나는 따듯한 표정으로 새미의 눈물을 소매로 닦아주며 말했다. 새미는 레이나의 반응에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혼내시지 않을 거에요?”

새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자 토비가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잘못을 말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칭찬이 필요한걸?”

토비는 씩 웃으면서 새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헝클어진 머리가 더 헝클어지며 새미의 눈을 가렸다. 톰은 새미를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나가 시장 아저씨가 절 쫓아내려고 하는 걸 막아준 거 알아요. 그 아저씨는 빈민가 사람들을 싫어하거든요.”

새미가 훌쩍거리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사실 오늘 아침엔 물건을 돌려드리려고 했어요. 여기로 들어가시는 걸 봤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새미는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듯, 울먹거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레이나는 새미가 진정할 수 있도록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새미는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어제 무서운 아저씨들이 와서 마을을 다 부시고 갔어요. 누나 물건도 모두 가져갔고요.”

새미는 간신히 말을 마치자마자 끅끅거리며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레이나는 ‘무서운 아저씨들?’이라고 되뇌며 톰을 바라보았다. 톰은 무언가 아는게 있는 듯 입을 열었다.

“피주먹단이로군.”

톰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여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 듯했다.

“피주먹단이요?”

토비는 톰의 말을 되풀이하며 되물었다.

“그래. 피주먹단.”

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몇 년 전에 생긴 도적단일세. 한 5년 정도 되었으려나. 주변의 크고 작은 도적단이나 패거리들이 모두 모인 곳이지. 이름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제법 규모도 커서 경비대에서도 손을 못 쓰는 모양이더라고. 주로 상단을 약탈하고 주변 마을에 보호비 명목으로 상납금을 받아.”

“그렇지만 엑스 브리지에는 경비대가 상주하고 있잖아요.”

토비가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빈민가는 도시 외곽에 있어서 경비대가 보호하는 범위 밖이야. 그리고 아까 저 아이가 말했던 대로 베르트랑 시장은 빈민가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굳이 빈민가까지 보호해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저 아이 말대로 피주먹단에서 자네들 물건을 가져갔다면, 안타깝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네. 경비대가 근거지를 찾으려고 몇 년 동안이나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어. 그리고 찾는다고 하더라도 직접 상대하기엔 너무 큰 조직일세.”

말을 마친 톰은 괴로운 듯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청천벽력 같은 톰의 말에 레이나와 토비는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 여관에는 한동안 적막만 가득했다.

그때였다. 그들의 뒤에서 ‘드르륵’하고 의자를 밀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나 일행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한 사내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사내는 천천히 저벅저벅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동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물건을 되찾을 방법을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