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버지와 술을 한 잔 했습니다.

술 한잔 못하는 나였으나 술병이 기울어짐에도 시선은 올곧기 그지없었습니다

피로에 젖은 아버지의 눈빛이란 형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꺼져가는 촛불이 다시 강렬한 빛을 발하듯 되살아나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저 몸쓰는 일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지성을 갖춘 하루살이에 불과했으나 형은 대기업에 입사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 이었던 것입니다.

허나 형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사소한 일로 다툰 후 연락을 끊고 살아갔기에 아버지께선 겉으로는 형에 대해 좋지 못한 말들을하며 내게 기대를 품으시는 듯 하였으나 나의 과대망상인지, 혹은 내가 술에 취하였던 것인지 당신께선 나를 첫째의 대체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비춰졌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인간이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눈물에 익사하는 모습 대신 춤추는 듯한 음영을 남들의 시선에 비추곤 하였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가식적인 미소를 띠우며 아버지께 걱정마시라고 하였습니다. 구역질 나는 인간이지요. 고통스런 삶이 훈장이라도 되는 양 다른 이들 앞에 자랑스레 내비치는 인간들이 밉습디다. 치부를 까발리곤 남들의 애정어린 시선을 갈구하는 것을 보면 속이 뒤집히더랍니다. 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들과 비슷한 군상에 끼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애써 부정하지만 말이지요.

아버지께선 내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어떤 인간이 되고 싶으냐고. 하지만 나는 그 물음에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누누히 되뇌였듯 나의 글은 설운 삶에 핀 곰팡이 같은 것이었으니 감히 아버지께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하며 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술자리는 파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선 내게 기대를 품으신다하였으나 내가 아닌 다른 이를 보고 계셨을텝니다

우울한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