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레이나와 토비는 식재료 창고에 산더미 같이 쌓인 고기와 채소들을 보고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톰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놀라긴 일러, 애송이들.”

톰이 다른 창고 문을 열자 레이나와 토비가 앞서 본만큼이나 많은 식자재가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상단을 위한 만찬 준비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톰은 손을 탁탁 털며 얼어붙은 레이나와 토비를 바라보았다.

“도망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지금 가도 밥값은 안받도록 하지.”

톰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비는 그의 말에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사나이가 이 정도로 포기하지 않아요.”

토비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호기롭게 외쳤다. 레이나도 그의 말에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전장으로 향하는 여전사 같았다.

“좋아, 기백은 마음에 드는 군.”

톰은 흡족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톰은 식자재의 산 앞에 토비와 직원들을 소집했다. 직원이라 해봐야 토비와 레이나, 그들에게 윽박질렀던 심술궂게 생긴 대머리 직원이 전부였다. 토비는 그를 보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늘 자네들은 각각 요리 및 재료 손질과 서빙을 도울걸세.”

톰은 힘주어 말하며, 레이나와 토비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그리고 레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서빙을 맡는게 좋겠군.”

그는 뒤이어 대머리 직원을 가리켰다.

“그림즈비에게 가서 오늘 메뉴와 서빙하는 요령에 대해 배우도록. 그림즈비! 잘 가르쳐 주게!”

대머리 직원은 무언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톰은 다음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네는 넬피아인이겠지?”

토비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요리에 능숙하겠지?”

토비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나를 따라 주방으로 간다.”

톰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톰의 잘못된 판단에 레이나는 속이 타들어갔다. 토비의 요리 솜씨는 재앙 그 자체였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토비가 주방으로 들어간다면 톰에게 도움을 받기는커녕, 당장 쫓겨날지도 몰랐다. 레이나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고기 대신 소금을 듬뿍 넣은 수프와 반죽이 폭발하던 빵, 그리고 어제 자랑스럽게 내민 돌까지 녹여버리던 검은 수프가 떠올랐다.

“안돼요!”

갑작스러운 레이나의 절규에 가까운 말에 톰이 주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토비는 무엇이 문제냐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결정에 불만있나?”

톰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이나는 차마 토비의 끔찍한 요리실력을 말할 수 없었다.

“아... 그러니까.”

레이나가 살짝 말을 더듬거리며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저 친구는 요리보다 서빙을 잘해요! 주방일은 제가 도울게요!”

레이나가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톰은 그녀의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토비를 흘끗 처다보며 물었다.

“정말인가?”

“정말이에요. 저희 가게에서도 손님 응대는 전부 토비가 해요.”

이번에도 레이나가 토비 대신 황급히 대답하자 톰은 커다란 손가락으로 턱수염을 톡톡 두드렸다. 그의 작은 동작조차 험악한 얼굴 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임무를 바꾸도록 하지. 토비, 자네가 그림즈비에게 가서 일을 배우게.”

토비는 그림즈비 쪽을 쳐다보았다. 그림즈비는 토비를 보며 으르렁거리며 위협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토비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군말 없이 그림즈비에게 향했다. 그림즈비는 토비에게 메뉴판을 하나 던지며 메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상단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움직여, 애송이들!”

주방의 지휘관 톰의 말을 시작으로 레이나, 톰 그리고 그림즈비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채소들의 무덤 앞에 비장한 표정으로 앞치마를 동여맸다.

얼마 지나지않아 불타는 모루는 금세 상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상단의 대표는 흰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경험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톰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늘도 잘 부탁하네, 톰. 막 엑스 브리지에 도착해서 다들 지쳐있다네.”

톰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악수를 받았다.

“고생많았네. 오늘도 잘 먹고 푹 쉬다가게.”

“지친 몸을 달래는 데는 모그림 요리가 최고지.”

상단 대표는 말을 마치고 피곤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곧이어, 준비된 요리가 하나둘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여정에 지친 몸을 달래줄 푸짐한 고기 요리와 따듯한 스튜를 본 상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토비도 작은 체구로 낑낑대며 돌판을 나르면서도, 상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피곤한 기색의 상인들 틈에서 그는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게 했다.

“윈델렌까지 매번 왔다갔다 하시면 힘드시겠어요. 몇 번이나 다녀오셨어요?”

토비가 테이블 위에 꼬치 요리를 올려놓으며, 한 모그림 상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벌써 스무 번은 더 갔다왔지. 이젠 일상이지, 뭐.”

모그림 상인은 자부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토비에게 말했다. 토비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스무 번이나 다녀오시다니. 베테랑이 따로 없네요!”

토비가 높은 톤으로 상인의 기분을 좋게하자, 뒤에 있던 꼬장꼬장하게 생긴 상인 한명이 딴죽을 걸었다.

“하! 스무 번 가지고. 오십 번은 다녀와야 그 때부터 상단으로 인정해주는 거야.”

말을 마친 그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올렸다. 모그림 상인도 지지 않고 술통째 들어 올리며 호쾌하게 외쳤다.

“어디 한번 술로 붙어봅시다! 노인네!”

“으하하! 네 발로 기어가게 해주지.”

어느새, 상인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넬피아 상인 무리는 악기를 꺼내 흥겨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한 상인무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 때, 함께 웃고 있던 토비의 눈에 여관 한쪽에 앉은 상인 무리가 들어왔다. 그들은 좀처럼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들은 스튜를 숟가락으로 뒤적거리거나, 음식을 코로 냄새만 맡고 작게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이 입에 잘 안맞으시나?’

토비는 티나지 않게 조금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무를 닮은 연한 갈색의 광택 나는 피부. 초록색 눈동자와 날씬하고 가녀린 체구. 나뭇잎을 닮은 연한 초록색 머리카락. 그들은 숲지기 종족이라고 불리는 실바렌 사람들이었다.

‘이런. 실바렌 분들도 계신 것을 놓쳤군.’

토비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메뉴에는 고기가 들어가 있지 않은 요리가 없었다. 토비는 잰걸음으로 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톰! 문제가 생겼어요!”

토비가 주방을 문을 여러번 두드렸다.

“뭐지? 뭐가 그리 급해?”

톰은 땀을 닦으며 주방에서 나와 말했다. 토비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상단 손님 중에, 실바렌 상인 분들이 계셔요. 고기 요리에 손을 거의 대지 않고 있는데, 아무래도 고기를 못 드시는 것 같습니다.”

“고기를 못 먹는다고?”

“네, 대부분의 실바렌 사람들은 고기를 안 드셔요.”

톰은 토비의 말을 듣자 팔짱을 끼고 턱을 커다란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런! 그걸 미처 생각 못했군. 잘했다, 토비. 그런 손님이 몇 분이나 되시지?”

“열 분 정도였어요.”

토비의 말에 톰은 뒤를 돌아 재료들을 훑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손질된 재료도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손이 부족했다. 톰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곤란한 기색을 본 레이나가 불쑥 나섰다.

“제가 음식을 만들어볼게요.”

레이나의 말에 톰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레이나는 차분히 덧붙였다.

“시트러스가 좀 남아있던데 샐러드를 만들어볼게요. 저희 마을 축제에서도 샐러드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요.”

톰은 잠시 고민하더니, 조그맣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간도 얼마 없고, 양도 적지 않을 텐데. 괜찮겠나?”

톰의 말에 레이나는 확신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하겠네.”

톰이 다시 자신의 위치로 되돌아가자, 레이나는 숨을 고르고 식칼을 집어 들었다. 눈을 감고 중얼거리자 그녀의 손끝을 떠나 칼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칼은 레이나의 손을 떠났지만, 부드럽고 정교하게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칼날은 채소 위를 춤을 추듯 오가며, 채소를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고 정교하게 썰어 나갔다.

레이나는 고개를 돌려 개수대 쪽을 바라봤다. 그녀가 작게 속삭이면서 손가락을 튕기자 개수대 안의 물이 서서히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집중, 집중.’

레이나는 스스로 되뇌며 손가락을 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물이 천천히 레이나의 손을 따라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 점차 빨라지더니 어느새 조그만 소용돌이가 되었다.

레이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그녀의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손질된 채소를 개수대 안으로 던져넣었다. 채소들은 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끔히 씻겨 나갔고, 물방울이 반짝 맺힌 상태로 튀어올라 그릇 안으로 하나씩 톡톡 떨어졌다.

‘거의 다왔어.’

레이나는 심호흡하며 시트러스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시트러스가 둥실둥실 바구니 위로 떠 올랐다. 레이나가 손을 움켜쥐자 주황빛 과즙이 상쾌한 소리를 내며 채소 위로 흩뿌려졌다. 레이나는 샐러드 위로 소금과 고소한 기름을 더했다. 어느새 그릇 위엔 상큼한 냄새가 가득한 샐러드가 담겨있었다.

‘뭔가 부족해.’

레이나는 빠르게 주방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에 견과류가 담긴 통이 들어왔다. 그녀는 견과류를 꺼내 손바닥 위로 가져갔다. 주저할 것도 없이, 그녀는 다른 손을 들어 작은 불씨를 만들어 냈다. 자그마한 불꽃은 그녀의 손가락 끝에 맺히더니, 따듯한 열기를 내뿜었다.

‘너무 강하면 안돼... 조심스럽게...’

레이나는 숨을 고르며 불꽃을 조절했다. 불씨가 표면에 스치자, 견과류는 이따금씩 튀는 소리를 내며 고소한 향을 퍼뜨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견과류가 은은한 황금빛이 돌 때까지 구워냈다. 견과류가 완벽하게 익자, 레이나는 견과류를 샐러드 위에 가볍게 뿌렸다.

‘이제 됐어.’

레이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톰! 다 됐어요!”

레이나는 뒤를 돌아 톰을 불렀다. 그러나 톰은 이미 그녀가 요리하는 모습을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그였지만 적지 않게 놀란 듯했다. 그는 눈썹을 잔뜩 위로 올리고, 아랫입술에 한껏 힘을 주고 있었다.

“놀랄 노자군.”

톰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껏 본 그의 모습 중에 눈이 가장 커져있었다.

“내가 마법은 잘 모르지만, 요리에 이렇게 정교한 마법을 쓰는 사람은 처음보네. 그것도 여러 가지 마법을.”

레이나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톰에게 다가가 맛보라며 샐러드를 건네주며 말했다.

“제 아버지께서 간단한 생활 마법들을 가끔 알려주셨거든요.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톰은 ‘간단한’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간단해 보이지만 마법을 쓰지 못하는 그가 보기에도 매우 정교하고 섬세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자네 아버지도 보통 분은 아니시겠군.”

톰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레이나의 샐러드를 한입 가득 넣었다. 그 순간 그는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레이나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언가 잘못됐나?’

레이나는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톰을 바라보았다. 톰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레이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레이나는 실수한 게 있는지 되짚어보려고 했으나, 톰은 잔뜩 성이난 표정으로 샐러드를 한 입 더 집어넣었다.

“어... 괜찮으세요, 톰?”

레이나가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톰이 잔뜩 짜증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건... 정말이지...”

레이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으로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맛이 괜찮군.”

톰이 또다시 입에 샐러드를 털어 넣으며 묵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난 맛있는 걸 먹으면 화가 나.”

톰이 태연하게 말했다. 레이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톰은 남은 샐러드를 그릇째 입에 털어 넣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섰다.

“최근 먹어본 채소 요리 중에 최고야.”

톰은 무심하게 말하고 다시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편, 불타는 모루는 흥겨운 가락이 온통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제는 앉아 있는 사람 보다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 가운데, 실바렌 상인들은 슬픈 초록색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한껏 흥이 오른 여관에서 외딴 섬같이 우울한 그들의 테이블에 토비가 불쑥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실바렌 분들은 오랜만에 뵙네요. 어느 숲에서 오셨나요?”

토비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면서 테이블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역시나 그의 생각대로 스튜 안의 야채 건더기 정도를 제외하면, 음식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저, 저희는 엘란티르 북쪽에 있는 작은 숲에서 왔어요.”

토비의 인사에 한 실바렌 여성이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눈을 살짝 피하고 있었고, 얼굴엔 붉은 기운이 돌고 있었다.

토비는 그녀의 대답을 들으면서 뒤에 서 있던 그림즈비에게 수신호를 했다. 그림즈비는 토비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못마땅한지 구시렁거리면서도 주방안으로 들어가서 샐러드를 가지고 나왔다.

“엘란티르 북쪽이라면 붉은 연꽃 연못이 있는 곳이겠네요?”

실바렌 여성은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붉은 연꽃 연못을 아세요? 거기가 저희 고향이에요.”

”와! 제가 약초방에서 일했거든요. 붉은 연꽃 연못에서 나는 연꽃들은 귀한 재료라서 잘 기억하고 있어요. 예전에 그걸 몰래 먹었다가 사장님한테 엄청 혼났거든요.“

토비가 씩 웃으며 유쾌하게 대답하자, 그녀의 얼굴에도 옅은 웃음이 피어났다. 어느새 그녀는 조금 경계심이 풀려 보였다. 그녀의 표정을 본 토비는 뒤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식이 잘 입에 안맞으시죠? 제가 알기론 실바렌 분들은 고기를 안드신다고 들었어요.”

실바렌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타이밍 좋게 그림즈비가 샐러드를 한아름 들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토비가 나지막이 ‘타이밍 좋았어요, 그림즈비.’라고 말하자 그림즈비는 눈썹을 꿈틀대며 토비를 쏘아보았다.

“저희가 특별히 준비한 샐러드에요. 고기는 안들어있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토비의 말에 어두웠던 실바렌 상인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듯했다. 실바렌 상인들은 조심스럽게 샐러드를 입에 가져갔다. 그들의 표정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실바렌 여성도 눈을 피하며 수줍게 말했다.

“저. 정말 맛있어요.”

그때였다. 술이 잔뜩 취한 상인 한명이 테이블을 보더니 비틀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딸국- 이런 메뉴도 있었어, 작은 친구?”

그는 그림즈비가 들고있던 샐러드를 보며 맛봐도 되는지 물었다. 토비가 끄덕이자 그는 샐러드를 맨손으로 한 움큼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이건 전에 없던 맛이야! 술이 확 깨는 구만! 이거 더 없어?”

그가 호들갑스럽게 큰소리로 외치자 갑작스럽게 인파가 몰려들었다. 음식은 고기 요리가 최고라던 한 모그림 상인도 마지못해 샐러드를 맛보더니 ‘이걸 먹으면 술 다섯 통은 더 먹을 수 있겠군!’이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실바렌 상인들도 처음에는 몰린 인파에 당황했지만, 하나둘 얼굴에 웃음이 번져갔다.

잠시 뒤, 토비는 머쓱한 표정으로 주방에 들어왔다. 그가 쭈뼛거리며 레이나와 톰을 바라보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처다보았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요.”

토비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은 레이나의 샐러드가 대성공이라는 거에요. 상인분들이 아주 만족하셨어요.”

토비의 말에 레이나는 밝은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톰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말? 걱정했는데 진짜 다행이다.”

“그런데 나쁜 소식이란 건 뭔가?”

토비가 잠시 뜸을 들였다.

“모든 테이블에서 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했어요. 한 마흔개 정도...”

레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토비를 처다보았다. 그녀가 들고 있던 숟가락은 천천히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마.. 마흔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