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질 않는다. 언젠가부터 쉽게 써내려가던 글은 막혀 앞으로 도무지 나갈 생각이 없다.
한 문장 한 문장 거침없이 써내려 가던 때도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도통 단 한 구절 사이에도 글이 제대로 쓰이징 않는다.

쓰고싶은 것들을 죄다 써버려서 그런지 글도 전부 비슷한것 같다. 이 전의 것들을 보면 스스로가 쓴것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것들도 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얻는것은 연륜이 아닌 번뇌뿐이다.

글을 되돌아보면 간혹 예전 기억이 되살아난다. 시라는 것은 일종의 편지로, 그것을 쓰던 당시의 기분을 되살린다. 대개 아련한 것이나, 그렇지 않고 잊고 싶던 것들도, 분명 나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아름답다. 힘들던 시절에는 이상하게도 글이 잘 써진다.

삶이 안락해진 탓일까, 쥐려는 것을 포기한 탓인가, 원인도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한다. 글쓰는 것을 사랑했었는데, 어쩐지 요새는 글 쓰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비평문이니 논설문이니 하는 것들 따위야 언제든 쓰노라마는, 조금이라도 감정이 섞이려고 하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의 쓴 글을 보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 투성이다. 제대로된 감정도 보이지 않고 표현도 전혀 정갈하지 않으며, 어딘가 기워붙인것만 같은 모양새다. 백개가 넘는 시를 써댔으니 그럴만 하다 애써 외면한다만, 할줄 아는 재주가 사라져 간다는 것은 서글프다 못해 애통한 일이다.

초라해진다. 보잘것 없는 약간의 재주를 가지고 그저 즐겁게 써대던 글들이 나이 들며 빛바래 가는 모습이, 비루해져가는 나를 닮은듯 해 견딜 수가 없다. 표현은 생각이 안나고, 어휘는 줄어들어가며, 바쁘다는 핑계로 책조차 읽은지 오래되었다.

독백조차 나는 솔직하지 못하다. 이처럼 써내려가는 글을 쓸때도 끝없이 고치고 수정하며 토해내는 글들에 진심이 담길 수 있는건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점을 계속 찾고 고친다.

이상한 일이다. 참으로 그런 일이나, 대개 흔한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