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삶의여백을 들여다보는 중이라고
여백이 많이도 커서 놀랐다고
그 여백이 사람의 빈자리여서 더 놀랐다고
담백한 수묵화의 여백은
여백 자체로 아름답기도 했는데
사랑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으로 바뀌어 간다지만
액자에 걸어둔 나의 그림은
모든 것이 급하게 지워진 흔적만 남아 바람만 몰아치는데
다시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세월은 그런 것
사랑도 그런 것
사람도 그런 것
애쓰지 말라고
힘쓰지 말라고
혹 몰라 우리의 인생은 나무 일지도
그래 나무의 인생을 흉내 내는 것일지도 몰라
쏟아지는 눈발 몸이 어는 찬바람에 살아도
먼 먼바다 건너온 따스한 봄바람 기다리며 살고
움트는 새순에 꽃잎 활짝 피워 하올하올 꽃비 흩날리는 봄밤을 기다리고
푸르름은 온 산
온 들에 깔리다 사방에 초록 초록을 뿌려놓고
나비와 벌과 새와 꽃들과 청춘을 노래하고 노래하고
아낀 살점 흙으로 돌려보내고
언 땅 깊은 뿌리에 맑은 수액 감추어 두고서 또다시 찾아올 꽃바람을 꿈꾸는 겨울밤
이런 나무의 일생을 조금이라도
더듬고 가늠할 수 있다면 외로운 밤하늘에 시린 별들도 따스한 눈으로 쳐다볼 것을
난들
누군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눈물과 한숨
웃음이 섞여 일어나는 인생의 전모를 알아낼 수 없다지만
가는 것에 이유 없고
오는 것에 이유 없다고
저녁놀 받으며 은빛 백발로
은은히
생을 마감하는 억새를 바라보며 이제는 수긍하고 말하리라
지난날 내 앞에 펼쳐졌던
사람과 사랑은 그토록 아름다웠더라고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 세계는 꽃 피어 났더라고 그래서 더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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