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있었다.

타지역의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을
생전 타본적 없는 버스를 타고 만난, 어색하게 웃던, 같은 처지의 한 사람이
낮선 환경에 호기심이 맞닿았던건지, 난파선에서 만난 동향 사람과 같은 심정이었던건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녀석이 있었다.

우리 둘은 참 많이 달랐더랬다.
하지만, 그 생각을 15년 넘게 못하고 지낼 정도로
우린 친하게 지냈고,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우린 학교에서 반도, 과도 달랐고, 대학교도 다른곳으로 갔다.
그래서 항상 붙어다니진 못했지만, 시간이 날때면
만나려고 노력했고, 같은 취미를 공유함으로서
우리는 이 사이가 오래도록 지속될 것 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철없고 생각없던 고등학생 시절
조금 성숙했다고 자평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별반 다를것이 없던 대학교 시절
서툴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던 직장인 초년 시절
상황과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참 다르구나...'

그러면서 이 관계를 지속하면 할수록
내게 와닿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관계를 지키고 싶었다.
수많은 시간과 추억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 '오랜 친구'라는 타이틀 자체가 목적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추억이라는 아교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불편함, 불쾌함이 아교를 갉아먹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이 관계에 지쳐버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좋은 편한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안하게되고,
만나지 않게 되고,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고
결국엔 멀어지게 되었다.

그도 어느 순간엔 알았을게다.
하지만 그는 나를 탓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나를 붙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때는 역시 무심한 녀석이라며 혼자서 매도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나를 알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그가 억울했는지, 멀어지는 이유를 궁금해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리고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 때는 이것이 나를 위한 행동이라고 자위하며,
나의 비겁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생각을들 더러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도망친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행하는 불편과 불쾌에 대해 항변하지도 않고,
그에게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도망쳤을 뿐이다.

내가 아는 그는 바뀔 사람이아니야.
이게 나를 위한 길이야
라는 비열한 자기합리화를 통해

지금에 와서 이 수치스러운 내 행동을 곱씹는 이유는
그저 한가지다.

네가 먼저 보낸 생일 축하한다는 그 연락 한마디에
내 졸렬함과, 구차함이 오늘에 와서는 더욱더 비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너에게 느꼇던 불편함과 불쾌함을 구차하게 이야기하고 싶지않다고,
결국 나는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라고,
진실로 느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