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소환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나?”

“네?”

“마법에서의 소환의 정의 말일세, 친구.”

적막이 흐른다. 지긋한 허연 수염 위로 어느새 검버섯이 필 나이, 노교수는 점심 후 산책이랍시고 자주 부려먹던 제자를 끌고 나왔다.

절경을 알고 있다면서 포탈을 열더니 보이는 풍경이라곤 황량한 바위 뿐이 아닌가.

하루종일 업무는 제한테 미뤄놓은 채 마법책에 코를 박고 하루를 보내는 게 전부인 양반이 이번엔 또 무슨 생각을 하나 싶어 머리를 긁는 제자를 두고, 교수는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돌, 그 무거운 죽음들 만이 둘러싼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교수는 뒤를 돌아보곤 묻는 것이다.

“그 정도는 새내기때 가르칠텐데, 대답이 늦는구로.”

공기가 반은 섞인 노쇠한 목소리가 끌끌거린다. 뜬금없이 마법의 기초를 물어보는 교수의 의중이 무엇인가. 생각이 많아지다 말로 한 대 맞은 제자가 곧으면서도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흔히 소환이라 함은 보다 범용적인 뜻을 가졌으나, 마법의 기초란 단어의 뜻을 명확히 하여 발현에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이기에, 강의에서는 딱 한 가지의 뜻으로 가르칩니다.”

“그것은?”

“마법에서의 소환이란, ‘마나를 가진 것을 불러오는 것’ 을 의미합니다.”

“그래, 잘 아는구만.”

교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햇볕이 따가울 시간일 법 한데, 태산같은 바위들이 둘러싼 지형이 그늘을 그렸다. 눈이 따가울 일은 없을 터였다.

“정확히는 마나를 가진 것이 어디 있는지 추적해, 그것과 나의 마나를 공명하게 만드는 것이지. 공명에 응해 마나가 연결되면 불러오는 게고.”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교수님 전공 중 하나잖습니까.”

“그렇지. 치매라도 왔나 싶었는고?”

낮잠이 황금 같은 시간대에 사람을 잡아두고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끌고 오더니, 이야기마저 질질 끈다. 제자의 좁아지는 미간이 교수의 망토를 쳐다본다.
저런 앙상한 몸이라면 번쩍 들어다 다시 책 앞에다 꽂아두면 편할텐데, 저런 몸에서 어디서 한 나라의 대지를 뒤엎을 정도의 마나가 나오나 싶다.

“복습 시험이라도 치르려고 불러오신 겁니까?”

“복습 시험?” 교수의 입꼬리가 잠시 올라왔다 내려온다.

“시험 따위가 아니지, 적어도 그보단 더 재미있을 이야기일세, 소환 마법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역소환 마법도 있겠지? 마나가 연결된 대상의 위치로, 나를 이동시키는 마법 말일세.”

제자가 다소 텅 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곤증이 몰려온다.

“이 ‘역’이란 단어는 참 미묘한 단어일세, 마법에서야 실수를 막기 위해 소환의 방향에 대한 역으로 가르치지만,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발동의 방향이 달라지니 말일세.”

“발동의 방향 말입니까?“

“그래, 발동의 방향 말일세,”

어느새 노교수의 눈은 제자를 향하고 있다.

“자네는 여태까지 배운 마법에서의 단어의 정의를 다르게 사용해 본 적이 있는가?”

진지한 눈빛에 사로잡혔다. 제자는 잠시 당황하다가, 이리 저리 눈을 굴려보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무슨 말씀이신지도 잘 모르겠군요. 애초에 걸리면 퇴학사유 중 하나지 않습니까.”

“그런 규칙도 있었나? 그럼 난 이미 수 천번은 퇴학 당했겠군.
맞네, 지금의 마법이란 하나의 약속과도 같은 게야. 이런 마법은 이런 용도로만 사용하자고, 모든 세력의 마법사들이 모여 ‘약속’ 을 했지. 그 수 많은 피를 보고 나서야 말이야.”

모래가 쟈근쟈근 밟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느리게 모래 소리를 내던 교수의 걸음은 서로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멈췄다.

“그 중에서도 ‘약속’ 이전 가장 많은 피를 흘리게 한 것이 이 ‘소환 마법’ 일세.”

점점 흥미로워지는 이야기에 제자의 태도는 바뀐지 오래였다. 노교수의 나이가 무색한 맑은 눈은, 자신을 고르게 했던 제자의 눈빛에 속으로 웃음지었다.

“... 금지된 것들을 소환했던 일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도 포함되지. 100년 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던 삼두룡, 발걸음 한 번에 국가 하나를 지도에서 없애버리던 자이언트 오거, 인간 역사에 최흉으로 남아있는, 마왕을 자칭하던 광인 리프레인 등이 있었네. 감히 숫자로 셀 수 없던 희생이 따랐다고 전해지지.”

“... 허나 오늘 할 이야기는 그것 만은 아닐세.”

주변을 둘러싼 바위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앉았다.

“그것들은 소환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네. 소환 대상으로서 금지 마법에 포함되었을 뿐이지.
허나 그 외에 소환 마법에는, 사용이 금지된 정의도 존재하네.”

“금지된 정의..입니까?”

제자는 알 수 없는 섬뜩함이 조금씩 옷을 타고 기어오름을 느꼈다. 금지된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은 마법사에겐 형용할 수 없는 호기심이자, 돌이킬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속으로, 이 자는 눈 앞에 있는 나를 빠뜨리려고 하고 있다.
온 몸의 마나가 느끼고 있었다.

“꽤나 긴장했군, 여기서 그만 두고 들어갈텐가? 티타임은 이미 꽤 지나서 말이네.”

“...”

갈등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오래 믿고 배우기로 한 스승이 자신을 빠뜨리려 하는 곳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리라.

잠시간의 적막이 이어진 후. 교수는 다시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전의 금지 대상으로 돌아가지. 삼두룡, 자이언트 오거, 광인 리프레인. 그 외에 소환이 금지된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네. 맞춰볼텐가?”

“... 잘 모르겠습니다.”

“좋네, 예시를 들어주도록 하지. 자네는 개 한마리가 눈 앞에 있다면, 이를 생물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렇습니다.”

“그 개가 죽어 사체가 되었다면, 그것을 생물이라 부를 수 있나?”

“...? 아니오,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생물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 마법에서의 단어의 정의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자, ‘약속’이라고 했지. 소환 마법의 현재 정의인 ‘마나를 가진 것을 불러오는 것’ 은,
그 이전 정의였던 ‘생물을 불러오는 것’ 을 금지하기 위해 새로 정해진 정의일세.”

“생물을 불러오는 것..?”

“들었을 땐 무슨 차이인가 싶지? 생물이라면 응당 마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일세, 공명하기 쉬운가, 어려운가의 차이일 뿐이지.”

“...”

“하지만 그 사소한 언어의 차이와 ‘역의 정의의 강제’ 가 가린 커다란 함정이 있었던 걸세.
‘생물을 불러오는 것’ 이라는 정의의 문제는, 역소환 마법에서 발생하네.”

“....아...아아.....”


“‘생물을 불러오는 것’ 의 역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 죽은...”



“아니, 아니, ... 이상합니다. 뭔가 이상해요! 그게 가능키나 한 겁니까? 소환에는 필연적으로 마나의 공명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건 교수님이시지 않습니까?! 죽은 것들에 어떻게 마나가 있고, 어떻게 공명한단 말입니까?”

“그렇네, 기존의 정의로는 납득할 수 없지. 거기에 줄 수 있는 답은, ‘약속’ 이전의 역소환 마법이 지금의 마법과 발동 방식이 달랐다 일세.

“달랐다.. 입니까?”

“이전의 역소환 마법도 마나를 이용해 위치를 추적하는 법 까지는 같았네, 자네의 말대로 시체는 마나가 없어.”

“...”

“자네는 시체에, 마나가 아닌 생명력을 공명시켜본 적이 있나? 그 미치광이 같은 짓을 한게야, 자기 수명을 통째로 바쳐서 시체에 강제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단 말일세!”

“맙소사..”

“소환을 요청한 쪽은 이미 마법이 발동 되어있으니 마나가 남아 있고, 강제로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니 소환을 요청받은 시체도 생명력을 바친 자의 마나가 생겨, 강제로 공명을 발생시켜 죽은 자를 불러낸 것일세, 목숨을 바치는 미친 짓거리로 말이야!”

“그렇다면 그게...”

“...살아 움직였네, 마치 죽은 적이 없던 것처럼 말일세. 그렇게 광인 리프레인의 시체를 찾아 부활시켰던 미치광이가 있었고, 세상의 반 이상이 사라졌다가 복구되었네.”

“...”

“그 녀석의 손짓 한 번에 대지가 사라지던 광경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구만.”

“... 믿기지가 않는군요..”

“그 후로 ‘약속’ 하게 된거야. 소환 마법은 이후로 단어의 정의가 바뀌었고, 기존 소환 마법에서의 ‘역’의 사용법은 철저하게 함구되었지. 아무도 그런 미친 짓을 하지 못하게 말일세.”

“...머리 속이 망가진 기분입니다.. 그럼..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게 좋지 않습니까? 제게 왜 그런 얘기를..?”

생전 처음보는 표정의 제자의 물음에, 긴 시간 진지하게 이야기를 잇던 교수의 수염이 양 옆으로 당겨졌다. 앙상한 두 손이 제자의 양 팔을 잡다가, 이윽고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만 했을꼬, 소환 마법은 중대한 이야기니 아마 알게 모르게 퍼졌을게다. 그 중에 흑심을 품는 미치광이가 한 명이라도 나타난다면 세계가 다시 흔들릴게지.”

“...”

“그 때 어떻게 해야 될 지는, 다음에 얘기해보도록 합세, 시간이 늦었군. 오후 강의 지각인게야. 오후 업무도 힘내게.”


포탈이 두 개 열렸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넋이 나가 있었지만, 정신차릴 시간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산더미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래동화 라도 들려주면 좋게 봐줄줄 알았는갑지 영감탱이.
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자료를 찡그리며 살폈다.

오후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