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오신 분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보상으로 무엇이든 소원을 한가지 이루어드리죠."

누구도 도달한 적이 없던 탑 100층의 중앙. 동화 속 요정처럼 생긴 난생 처음보는 생물이 말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수많은 동료들과 연인을 잃었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마저 져버렸다.

그토록 갈망했던 목표였건만, 홀로 도착한 이곳에서 마음에는 허무함만이 가득했다.


"소원?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치른 대가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알기나 해? 한가지 소원 따위로 될 것 같아?"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내 떠오른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유치한 발상이었다.

"내 소원은 네놈이 내 소원을 천가지 들어주는거야."

"네, 알겠습니다."

"뭐?"

"앞으로 천가지 소원을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았다.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고, 인류를 억압하던 탑의 존재도 없애버렸다.

늙지 않는 신체, 무한한 힘과 지혜를 얻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그때, 그 녀석이 찾아와서 속삭였다.

"앞으로 850개의 소원을 추가로 비실 수 있습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삶이 아니다.

어떠한 노력도, 의지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원하는 것을 이야기만 하면 되는 인생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850개의 소원은 필요없어. 대신 마지막 소원 몇가지만 들어줘."

"네, 무엇이든 말씀해주세요."

"앞으로 이 우주 어디에서든 소원의 개수를 늘려달라는 소원은 들어주지마."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들어줄 때 너무 말도 안되는 것은 들어주지 마. 이를테면 '그 소원은 제 힘을 뛰어넘는 소원이라서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같은 적당한 한계점을 두도록 해."

"네, 또 다른 소원이 있으신가요?"

"음, 그리고 소원을 빌기 위해 탑을 오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어. 그냥 온세상에 흩어진 신비한 구슬을 일곱개 모으면 소원을 빌 수 있게 해줘."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 소원이야. 너를 만난 이후의 내 기억은 모두 없애주고, 탑 100층에 도착했을 때로 나를 다시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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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신 분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보상으로 무엇이든 소원을 한가지 이루어드리죠."

누구도 도달한 적이 없던 탑 100층의 중앙. 동화 속 요정처럼 생긴 난생 처음보는 생물이 말했다.

"소원?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치른 대가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알기나 해? 한가지 소원 따위로 될 것 같아?"

나는 잠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내 소원은 네놈이 내 소원을 천가지 이뤄주는거야."

"죄송합니다만 소원은 한가지 밖에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하핫, 역시 그렇지? 그럼 나를 전지전능한 우주신으로 만들어줘."

"죄송합니다. 그 소원은 제 능력을 뛰어넘어서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하긴 그런가..."

잠시 탑 밖을 바라봤다. 100층까지 오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동료들을 다시 살려줘. 그게 내 소원이야."

"네, 알겠습니다."

눈부신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자리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동료들과 그녀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모든 것을 얻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