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3화）



31 번 모기는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는 말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그렇다고 진한 혈향을 견뎌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혈향을 잊기 위해 31 번 모기는 다시 한번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이번에는 비행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작은 몸뚱이는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31 번 모기는 균형을 잡기 위해 왼쪽 날개를 파닥거렸지만 결국 오른쪽 머리를 바닥에 들이받고 말았다.

찡—! 하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통증을 참고 허공을 향해 도약하는 순간 31 번 모기는 문득 깨달았다.

머릿속에 찡—! 하는 소리가 울리는 동안 혈향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31 번 모기는 유레카를 외치며 날개짓을 시작했고,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꿍—! 하는 머리 울리는 소리와 함께 31 번 모기는 또다시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 * *

“얘 지금 자해하는 거 아닌가요?”

상혁의 물음에 박사과정 선배인 상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글쎄….”

잠시 생각을 하던 상미가 상혁 곁에 바짝 붙으며 말을 이었다.

“너 지난 학기에 동물행동학 들었니?”

“아니요. 수업 시간이 곤충생태학이랑 겹쳐서 못 들었어요.”

“그랬구나. 아무튼 그 수업 들으면 자해에 대해 배우는데, 동물이 자해를 하는 목적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대. 하나는 인간에게 보내는 신호야. 그러니까 사육되는 동물이 자신의 관리자와 나누는 일종의 대화인 셈이지.”

“그건 저도 들어 본 거 같아요. 자해를 하면 인간이 무언가를 해주기 때문에, 그걸 보상 개념으로 이해한다고 들은 거 같아요.”

“맞아.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잊기 위함이래.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자해로 인한 통증보다 크다고 판단을 하면 자해를 한다고 하더라.”

“그런 이론이 있었나요?”

상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해 행위는 지능이 높은 고등 동물들에서만 관찰이 된다는 거야.”

상혁은 손가락으로 배양기 안의 31 번 모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얘는 지금 자해를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군요.”

상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 내가 보기에는 얘 지금 자해하는 게 맞아 보이거든.”

“흠…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잠시 후 상혁이 배양기 옆에 준비해 둔 손바닥 크기의 투명 원통형 용기를 집어 들자 상미는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냐 그건? 혹시… 흡혈 덮개?”

“네….”

“너 지금 몸에 흡혈 실험을 하려고?”

원통형 용기를 뒤집어 피부에 덮고 그 안에서 모기가 사람의 피를 직접 흡혈할 수 있게 진행하는 실험을 말한다.

상혁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네… 교수님이 하라고 하셔서….”

“하하—! 까라면 까야지, 뭐.”

상미는 상혁의 겨드랑이 쪽으로 고개를 숙였고, 이내 킁킁—! 하며 냄새를 맡는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 이래서 실험 제대로 되겠어?”

상혁은 당황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제, 제가 뭐요?”

“땀 냄새가 나고 그래야 실험이 되지. 지금 아무런 냄새도 없잖아.”

“아… 땀 냄새가 나야 하나요…?”

“당연하지. 목욕재계 하고 흡혈 실험했다고 하면, 교수님이 아마 다시 하라고 그럴 걸?”

“헐… 정말이요?”

상혁의 망연자실한 표정에 상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 갑자기 정문에 마약 떡볶기가 당기네. 상혁아, 이참에 네가 가서 떡볶이랑 순대 1인 분씩 좀 사와라.”

“지금 정문까지 다녀오라고요?”

“응, 순대 식으면 맛없는 거 알지? 한 20분 정도 뛰어갔다 오면 땀도 적당히 나고 딱일 것 같은데?”

* * *

다음날.

인간의 진한 땀 냄새는 또다른 종류의 욕망을 유발했다.

혈향이 흡혈 갈증을 쉬지 않고 자극했다면, 땀 냄새는 31 번 모기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욕망을 깨웠고, 그 욕망은 또다른 목소리가 되어 그의 머릿속에 쉬지 않고 외치기 시작했다.

- 저기 보이는 파란색 혈관, 그곳에 주둥이를 꽂아.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모두 이루어질 거야.

- 뭐? 이 관문만 통과한다면 큰 선물을 받을 거라고? 아하하—! 모기에게 흡혈보다 더 큰 선물은 없어. 선물이라니, 하하—! 너 도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 그래, 방금 봤지? 저기 푸르스름한 혈관. 바로 지금이야. 저기에 주둥이를 꽂으라고.

- 너 혹시 진심으로 선물을 기대하고 있는 거였어? 한심하긴, 그것 역시 네가 만들어 낸 목소리일 뿐이라고. 지금 내 목소리처럼 말이야.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당장 피를 빨아. 너도 알고 있잖아.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거.

- 지금 피를 빨지 않는다면 잠시 후에 너는 배가 고파서 죽을 지도 몰라. 네가 죽는데 그깟 선물이 무슨 소용이지? 넌 살아야 해. 살고 싶다면 뭘 해야 하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

- 자, 길게 생각할 것 없어. 너는 피를 빨게끔 창조된 존재야. 지금 이 고통을 참는다고 앞으로 달라지는 건 없어.

- 그래, 그렇지. 지금 너도 모르게 혈관을 보고 있잖아. 그게 바로 네 본능이야. 그래, 지금 바로 움직이는 거야. 당장!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표면에 앉은 31 번 모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인다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자신이 본능을 따라 혈관 위에 주둥이를 꽂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단 한발자국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지금 움직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 *

생물학과 박태중 교수 연구실.

“움직임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박 교수의 물음에 상혁이 입을 열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흡혈 덮개에 앉아서 꼼짝도 안 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상혁의 복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그럼 지금 벗어 봐.”

박 교수의 말에 상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연구실에 모인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네? 여, 여기서요?”

“그래, 인마. 웃통 좀 벗는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놀래? 당장 벗어.”

상혁이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상의를 탈의하자, 그의 명치 부분에 손바닥만한 투명 원통형 용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박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혁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복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흠… 정말이네. 꼼짝도 안 하는데? 혹시 죽은 거 아니야?”

“죽은 건 아닙니다.”

“그래? 확인했어?”

“네, 자세히 보면 가끔식 머리를 움직이는 게 보이거든요.”

박 교수는 고개를 들어 상혁을 올려보며 말했다.

“뭐? 모기 머리 움직이는 게 보인다고?”

“아… 그게… 그러니까…….”

상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상미를 슬쩍 바라보았고, 박 교수는 다시 상혁 복부에 붙어있는 투명 용기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투명 용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하긴… 죽었으면 이렇게 거꾸로 붙어 있을 수가 없겠구나. 흠….”

박 교수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상혁은 벗었던 상의를 입으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저희 내일 어룡천으로 샘플 채집 나가는데, 얘는 거기서 방사해주고 오면 안 될까요?”

상혁의 말에 박 교수는 오른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 지금 이렇게 재미있는 개체를 찾았는데 방사해 준다고?”

“네… 요 며칠 계속 지켜봤는데 좀… 불쌍해서요….”

박 교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마! 헛소리 하지 말고, 지금 상태 보니까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죽기 전에 난자 샘플 확보하자.”

박 교수는 테이블 맡은편에 앉아있는 포닥에게 시선을 옮겨 말을 이었다.

“정 박사가 예전에 모기 난자로 복제 실험한 경험이 있다고 했던가?”

“네, 교수님.”

“그럼 오늘 얘 난자 추출해서 복제 시작해 봐.”

“네, 알겠습니다.”

박 교수는 시선을 옮겨 상혁을 향해 말했다.

“정 박사가 난자 추출하면, 너는 바로 샘플 떠서 DNA 분석 맡기고.”

“네, 그런데 DNA 분석은 18S rDNA만 하면 될까요?”

박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얘 흰줄숲모기인 거 다 아는데 18S는 해서 뭐하게?”

“아, 그럼… 어떤 분석… 말씀하시는 건가요…?”

“전부 다 분석해. 염기 쌍이 0.25 기가 정도 되니까 비용이랑 시간이 좀 들어서 그렇지, 일단 전체 유전 정보만 확보하면 나중에 재미있는 연구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박 교수는 다시 시선을 옮겨 정 박사를 향해 말했다.

“복제 성공률은 얼마나 돼? 그리고 통계 자료까지 뽑아 낼 수 있는 실험을 좀 하고 싶은데, 충분한 복제 개체 수 확보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그건 수정 안 된 난자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른데, 일단 난자 추출만 제대로 되면 복제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조건만 잘 맞아 떨어지면 한 달 안에 1000만 마리까지 복제할 수도 있습니다.”

박 교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호오…. 한 달 안에 1000만 마리라…….”

* * *

31 번 모기는 차가운 유리판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고정되었고, 이내 거대한 현미경 렌즈가 그의 복부 앞에서 멈추었다.

더듬이와 여섯 개의 다리는 모두 가위에 잘려져 나간 상태였고, 머리와 몸통은 투명 테이프에 짓눌려 옴짝달싹 할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머리를 덮고 있는 테이프에서 나온 찐득찐득한 물질이 주둥이를 틀어막고 있어 31 번 모기는 옅은 숨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 번 모기는 차라리 지금이 좋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혈향이나 땀냄새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 견뎌냈구나. 축하한다. 약속한 대로 너에게 큰 선물을 줄 것이다.

- 그 큰 선물이라는 건 무엇입니까?

31 번 모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이 머릿속으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그의 물음에 목소리가 답했다.

- 내가 말한 선물은 바로 너의 기억이다. 네가 경험한 모든 기억을 너에게 줄 것이다.

경험한 기억을 자신에게 주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으려는 순간, 예리한 칼날이 31 번 모기의 배를 갈랐고, 그의 머릿속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로 가득차고 말았다.

그리고 비명 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가느다란 집게가 그의 뱃속을 헤집고 들어와 알집을 떼어냈다.

총 273개의 난자가 들어있는 알집이 떼어지는 순간, 31 번 모기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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