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에 물을 채운다
아마 500ml 라면이랑 큰 차이는 없다
불을 가장 강하게 틀어놓고
비 오던 어젯밤 편의점에서 사 온 소형 레토르트 떡볶이 소스를 물에 붓는다

빨간빛이 퍼지고
조금씩 거품이 터져나가면 때가 된 거겠지

냉장고에 둬서 다 말라버린 떡을 꺼내
냄비에 그대로 붓는다

언제부터 떡볶이가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냥 갑작스럽게 비 오는 날 첨벙거리는 발자국을 보다
물 웅덩이 튀기며 날아다니는 차를 보다가
그냥 그렇게 떡볶이가 눈앞에 놓인다

소스는 팔팔 끓고
나무 주걱이 바닥에 긁혀 제 죽는소리를 내면
죽일세라 더 쌔게 볶는다

사실 언제부터 떡볶이가 볶는 음식이 된 걸까
요즘은 볶는다기보다 떡탕이나 떡찌개가 아닌가
나는 그 원래의 옛 떡볶이가 그리워졌던 건지
이 다 벽지 다 불어 터진 단칸방에서 이 짓거리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죽을 좋아했다
그 시절 감기 걸렸을 때
우리 엄마는 죽이라도 먹고 자라며 항상 누워있는 나를 깨워 입에 미음이라도 먹이곤 했는데
나는 그 쌀죽의 간장향마저도 좋아했다
아프면 좋아하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이제는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많이 먹다 보니 탈이 난 건가 싶다

떡볶이가 다 눌어서 국물의 질감조차 남지 않는다
이제야 먹을만하겠지
다 불어 터진 떡을 소스를 입에 한가득 묻힌 채
냄비를 버너에 그대로 올려놓고 먹는다

과거의 추억이란 게 신기해서
입에 담을수록 맛있어지는 게
진짜 맛있는 건지 추억보정인 건지 모를 따름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해서 항상 혼자 먹곤 했다
누구랑 함께하는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데
떡볶이만큼은 혼자 먹어도 충분했다

양은 냄비에 가득 찼던 떡을 다 먹어치우니
이제 남은 게 없었다

바닥의 소스를 다 긁어먹고
잠시 목을 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