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작지만 꼭 마음에 드는 집이다.

게으른 내가 움직이기 좋은 적절한 동선.

집을 고를 때 욕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100프로는 아니지만 65정도 마음에 들었다.

더 작은 집도, 더 큰집도 싫다. 지금이 딱 좋다.

욕실의 적합도 100프로는 아니지만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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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초대했다. 큰형도.

한참 더울 여름이었는데, 에이콘이 아직 안 들어와서 더웠다.

이삿짐은 아직 정리가 덜 끝났고, 싱크대에는 사용하지 않은 그릇들을 쌓아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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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초대 된 가족은 오자마자 집을 휘휘 둘러 보며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왜 아직 정리도 다 안 했냐, 설거지는 왜 잔뜩 쌓아뒀냐, 에어컨도 없이 사냐.

뭐, 그러려니. 눈으로 보면서 박스 하나 날라줬나? 잔뜩 쌓아둔 그릇 하나 씻어줬나?

뭐, 그러려니. 남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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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는 쉽다. 아무런 책임도 부담도 없다.

무조건 네가 잘못한 것을 내가 말해주는 거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왔어서 그냥 그게 당연한 거였다.

가족들에게 칭찬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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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설거지도 되게 못한다? 너는 왜 맨날 아프냐?

너는 왜렇게 멍청하냐? 너는 왜 그렇게 소심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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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들었던 말이다. 나는 뭐든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쓸모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다.

주로 혼자 집에 있었고,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갔다 와서

혼자 밥을 차려 먹었다. 그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는 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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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비해 조금 이른 직장생활을 했던 편이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샀던 건 점퍼였다.

나는 한 번도 따뜻한 점퍼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막내니까 물려 입어야 되는 게 당연시.

나는 옷을 사 달라 그런 기억이 없다.

추웠던 이유는 먼저 태어난 것들이 입고 빨고를 수 없이 반복하며

점퍼의 털이나 솜이 다 빠져버린 옷만 입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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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때였나?

엄마가 작은 식당을 하나 차렸다.

아빠가 말하길, 너는 학교 끝나면 집으로 가지 말고

엄마 식당 가서 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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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만 그랬다. 오직 나한테만.

이유는, 너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으니까 그거라도 해라.

공부도 못하고 몸도 약했으니까.

아이러니 하게도 머리도 나쁘고 몸도 약한 애가

학교 수업 마치고 가서 일은 잘 하겠는가? 싶었지만

그냥 시키니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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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나란 존재는 그랬다.

어디서 종놈을 하나 데려 왔는데, 일도 못하고 머리도 나쁜 놈을 데려와서는

그 종놈이 밥 한 그릇 먹는 것도 아까운 놈.

약하게 태어난 게 내 잘못인지, 나는 머리가 나쁘고 싶어서 나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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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이 됐을 때, 나는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훌쩍 독립을 해버렸다. 오랜 시간 받은 미움만큼, 나 또한 가족이 싫었으니까.

그래도 명절 때는 꼬박 꼬박 찾아 갔다. 가족 정이 어디 그냥 버려지겠는가?

돈 좀 벌면 유세도 좀 떨고 나 잘 살고 있다는 신호도 보내며 용돈도 제법 드리곤 했다.

그게 이유였을까? 지금 이곳으로 이사하던 날.

형과 엄마의 끊임 없는 잔소리가 시작 되면서 조금 어색하게 들렸던 말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돈을 맡겨라'

뭐가 그러니까지? 돈은 왜 맡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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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상한 소리를 듣기 힘들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 두 분. 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셨단다.

'그럼 가 이제'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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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름대로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음식을 챙겨 왔다,

삶은 닭, 홍어 무침, 동태 전.

안타깝게도 당시 거식증이 있었던 터라, 한입씩 먹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 참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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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돈 버는 거, 한 달에 딱 생활비 정도만 남기고 엄마한테 다 보내'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저축해서 돈 모으고 아파트도 사고 그래야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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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집이 좋다. 아파트 사고 싶은 생각도 없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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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다 하고 있는데 왜?'

'너는 낭비벽이 심하고 돈 관리도 못하고 막 쓰니까'

'내가 무슨 낭비벽이 있고 돈 관리를 못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해?'

'너 어릴 때 세뱃돈 받으면 오락실 가서 다 오락하고 그렇게 다 썼잖아.'

'어릴 때 오락실 가서 내가 이상한 거라고?'

'너 집에 가보니까 침대랑 냉장고랑 세탁기도 다 새로 사고, 막 아무거나 사고 그러니까'

'전에 오피스텔에 있었으니까 냉장고랑 세탁기 따로 필요 없었던 거고, 침대는 싼 거 산 건데 그게 왜?'

'돈 있다고 그렇게 막 쓰잖아. 저금도 하고 해야지.'

'엄마. 나도 저금할 줄 알아. 적금도 넣고 다 해.'

'어?'

'끊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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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닫아 둔 음식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내다 버렸다.

엄마가 생각하는 지금의 내 이미지는 아마, 도박도 하고 유흥주점 가서 돈 뿌리고

쓸데없는 물건 사다 집에 쟁여놓고 그런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나는 그냥 모자란 애고 이상한 애다. 가족에게 나란 존재는 항상 그랬다는 걸

이제 조금 알게 됐는데, 그 조금도 너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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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셔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 쓰레기가 될 것 같다. 거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