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나의 군생활 말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군생활은 gop 상황병으로 끝맺음했다



상황병은 컴퓨터로 cctv를 보거나 , 부대일지를 정리, 부대물자 관리, 전투인력이 휴가를 갔을 때 근무를 대신 서주는 게 주요 임무이며

바쁠 때는 엄청 바쁘지만 , 간부들의 터치가 없다면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보직이었다.



항상 그렇듯 야간상황병 근무에 투입되고 , 상황일지를 보고 있던 중 눈에 띄게"아간사격"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며칠 전 소초장님이 야간사격을 한다는 말이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거기다가 인솔간부가 소초장님이며 부소초장님은 근무를 하고 난 뒤 취침시간대라,

나에게 있어서 간부들의 터치가 없는









똑똑똑

정도일병장님~!













찢어진 눈이 더 찢어진 채 웃으며 상훈이가 상황실에 들어와 말했다 이건 분명 무슨 꿍꿍히가 있다.



상훈이는 나랑 2개월 차 후임으로 이때당시 나와 같은 병장이었다.

우리는 이등병 때부터 항상 붙어 다녀 힘들 때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였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마음속 평화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바빠"



나는 최대한 컴퓨터화면에 모니터를 고정한 채 자판을 두드리며

바쁜 척을 했다.



소초장님이 정도일병장님이랑 같이 취사장청소 하라고 했습니다.



"상훈아 미안한데 혼자 하면 안 되냐?"

“내가 이 짬 먹고 해야 해?”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보는 나였지만 상훈이도 질 수 없다는 듯,



원래 10명이서 하는 겁니다.



"지금 막사에 너랑 나 둘 밖에 없어 나머지 인원들 다 야간사격 갔는데 너는 왜 안 갔어"

갑자기 마음속의 안화가 깨질 거 같은 위기가 느껴지자 나는 나대로 상훈이를 쏘아붙였다.



만약, 저까지 갔으면 정도일병장님 혼자서 취사장 청소 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저번에 사격 갔다 왔습니다.



가불기가 걸린 나는 취사장청소를 해야만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취사장청소는 상훈이가 리드를 도 맡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초는 청소구역이 각각 정해져 있어

한 번도 취사장청소를 해보지 않은 나는 어디를 ,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10명이서 하던 청소를 2명이 나눠서 할려니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그러다가 상황실에 전화라도 울리면 나는 달려가서

"통신보안 11 소초 상황병 병장 정도일입니다. 지금 제가 바빠서 그러는데 나중에 전화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이 말을 반복했다.

원래 평소 야간에는 전화도 잘 오지 않아, 사람의 목소리가 그립다는 이유로 다른 소초에

장난전화를 자주 하는 나였지만 그날은 업보를 돌려받은 것인지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이렇게 상황실에 들락날락 거릴 때마다 상훈이는 맘에 안 든다는 듯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영차-



영차-







이 짓을 대략 두 시간 정도 하니 청소한 티가 제법 나기시작했다.







“나머지는 혼자서 할 수 있지? 나 밀린 상황업무 좀 봐야 해”

상훈이는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한마디 하였다.



“아닙니다 이제 짬통 버리러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데? “



“여기 언덕 밑 쭈욱 ~ 내려가면 짬통 버리는 곳 나옵니다.

거기에 멧돼지도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막사 근처에 음식물 짬통을 버리면 좋겠지만, 그럴 경우

멧돼지들이 막사 위로 올라올 수 있기에

최대한 진지에서 멀리 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들은 나갈 채비를 마치고, 막사 앞에서 짬통의 무게를 가늠해보고 있었다.

30명 정도가 먹고 남은 음식물쓰레기가 모이니 그거대로 상당히 무거웠다.

그래도 성인남자 2명 이서는 충분히 들 수 있는 무게인지라

각각 한쪽씩 손잡이를 잡고 이동했다.







달빛하나 없는 어두운 밤

언덕을 내려내려 가

중턱정도 내려가니 그나마 눈이 적응 시가 되었다





터벅





터벅





그때

적막한 밤에 적나라하게

상훈이의 목소리가 귀에 꽂힌다.



“아까 솔직히 말해보십시오.

청소 일부러 하기 싫어서 상황실 들락날락한 거 아닙니까?“



”상훈아 너 인격모독 및 폭언 듣고 싶냐?

갑자기 뜬금없이 그 이야기를 왜 하는데

진짜로 바빴다니까?“







“아휴 평소에 뭐 하는지 보면 맨날 틀어박혀서 컴퓨터로 체스랑 피카추배구만 하는 사람이

바쁘다는 단어를 논합니까?“



”상훈아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건 아주 위험해“



“그럼 나도 까놓고 말해서

소초장님이 청소 너 혼자 시킨 거 아니야?

이게 말이 되는 소리라 생각해?

나는 근무를 서는데 나도 취사장 청소를 도와라는 게 말이야? 방귀야?“





우리는 짬통을 내리고 진지하게 대화했다.



”군대는 원래 말이 안 되는 걸 하는 걸 군대인 겁니다 “



얼씨구 완전 참군인 납셨어 그런 군대 많이 하세요 상훈 씨 그럼 “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빈정거리는 투로 비아냥거렸다.



“아 됐고 일단 남은 대화는

짬통이나 마저 버리고 하자”



“요 바로 밑입니다.”



짬통을 버리려고 서 있던 도중

숲 너머 어둠 속에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별거 아니겠지란 듯 생각하고 둘이 짬통을 들어 부 울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12개의 눈이 튀어나왔다.



멧돼지였다.



이제까지 cctv로만 멧돼지를 봐왔지

실제로 보니 말도 안되게 컸다.

사이즈는 집체만 한 사이즈,

거기다가

대부분의 멧돼지들은 가족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개체수도 너무 많았다

내 시야에 빈틈없이 멧돼지들로 꽉 찬 걸 본 순간,







나와 상훈이는 달빛이 비치치 않는 산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도망가자!’

이건 계획에 없던 거다.





우린 누구랄 것도 없이 짬통을 멧돼지인지 우리한테 던진 건지 모른 채 팽개 치고는

숨이 찰 때까지 뜀박질을 해 막사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달리는 우리는 혹시라도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내려올 때도 오래 걸렸던 언덕이었지만, 뛰어서 올라갈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뛰어야 한다.

뛰지 않으면 진짜 죽을 수도 있기에



계속 뛰어올라가니

막사에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이 불빛이 그리웠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는 헉헉 대며 화광이 이끄는 곳으로 박차를 가했다.





도착한 뒤, 우리는 막사 앞 거울을 보고

너나 나나 할거 없이 동시에 말했다.



“씻자”

“좀 씻어야겠습니다”



상황실을 비우면 안 됐지만,
온몸에 땀과 김치국물을 뒤집어쓴 채 근무를 설 수가 없었다.







（쏴아아 아아）

（쏴아아 아아）



뜨거운 물로 좀 지지니 얼었던 마음이 좀 풀어져서 그런가

멋쩍은 듯 나는 상훈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상훈아 머리에 김치 묻은 거 뭐였냐?

병장 달았다고 머리에 치장을 해?“



”저 원래 아껴먹는 거 좋아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좀 있다 먹으려고 킵 해놓은 거입니다. “


우리는 서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뜨거운 여름날
우리들 나름대로의 야간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