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기일의 기록.

"... 피고는 이하 다음과 같은 죄를 저질렀다.

첫째, 국가 전복을 모의하고 내란을 음모한 죄

둘째, 반국민의 정서를 퍼트리고 적국의 이익에 동조한 죄

셋째, 무고한 이를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한 죄

이에 재판부는 피고의 최후 변론을 듣고서 형을 확정하려고 한다. 피고는 할 말이 있는가? "


"당신들은 파리를 죽인 인간을 처벌할 것인가?"

"당신이 죽인 것은 사람이다. 파리와 사람은 같지 않다."

"파리와 사람이 왜 다른가?"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파리와 다르게 존귀한 존재이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을 한번만 더 하여 재판부를 모욕한다면 최후변론의 기회를 박탈하겠다."

"내가 죽인것은 파리와 같다. 그저 내 앞에 있었기에 죽인것이다. 그냥 내 길 앞에 있었기에 죽인것이다. 내개 가고자 하는 길 앞에 그가 서있었고, 나는 그래서 죽인것이다. 나 역시도 파리와 같다. 당신들이 걷는 길에 부딛혔기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피고는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당신들은 나를 죽이고서 나에게 미안해 할것인가? 그 대답과 같다."

"... 피고의 최후변론을 종료하겠다."


"주문. 피고는 죄질이 매우 불량함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않고 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서 사형에 처한다."



끝내 나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눈앞에 앵앵대던 파리였다.

나 역시도 저들에게 눈앞의 파리였으며

그가 죽이려던 적국의 소년도 그에게 파리였겠지.

그저 죽고 죽이는 우리는 서로에게 파리일 뿐이다.

다른 이념과 다른 신념과 다른 믿음 아래 서로를 죽이는 파리떼일 뿐이다.

구역질이 난다. 거짓된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아래 억류를

마침내 벗어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