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사태를 걱정하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예전에 특이점이 온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었죠.
옛 고전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와 닮지 않았습니까? 망자의 게임이던가요?
하하.


인공지능에 대해 크게 걱정하시는 것 같네요.
그럴 만도 하죠. 지금 우리는 로봇에게 먹여 살려지고 있으니까.
요즘은 개개인마다 로봇이나 기계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죠.
기업은 로봇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로봇이 받는 임금은 그 소유주에게 돌아갑니다.
이 개념과 관련된 제도가 생긴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인간은 이제 일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직도 로봇 대신에 뛰어다니는 분이 계시긴 합니다만, 그건 로봇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죠.
인공지능로봇에게 일자리를 모두 빼앗길 거라는 과거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그 대비책으로 우리는 로봇을 소유한다는 개념.
즉 정답처럼 보이는 것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평일에도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과 자신을 위한 계획만을 궁리합니다.
그것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로봇이 벌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렇게만 본다면, 지금 이 현상은 정답인 걸까요?
단순히 정답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뭐, 그 예측 역시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하고 있겠죠.
이제 인간이 해야만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요.
게다가 우린 걱정거리도 없죠.
굳이 찾아보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갈등정도?
가정의 생계를 위한 부모들의 몸부림, 일자리를 찾기 위한 청년들의 고군분투와 좌절,
그런 휴먼 드라마는 찾아 볼 수 없단 말입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이것은 이상적인 세상입니다.
놀고먹기 위해 일을 하던 옛날에서 벗어난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곧 무기력해질 겁니다.
당최 질리지 않을 것 같았던 놀고먹는 일에 염증을 내고, 대다수의 인간이 생각해 볼 법한
자신은 왜 존재하는가? 따위의 철학적 고민을 하겠죠.
인공지능에 관련된 범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예를 들어보죠. 영화관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로봇을 보고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노는 것뿐인가? 하고 본인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단 겁니다.
그저 살아간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에요.
곧 자리를 빼앗겼다는 불안감과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여론이 벌 때처럼 일어날 거고
현대기술의 집약체인 로봇들은 가정집 창고, 공구함에 있던 방망이나 망치에 산산이 분해되겠죠.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세상은 다시 인간에 의해 돌아갈 것입니다.
때문에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의 것을 되찾는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누구의 말처럼 인간은 인공지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널브러진 로봇의 잔해로 덮였고, 분노한 시민들로 인해 로봇을 찍어내는 공장들은
불에 타거나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살아남았다.
의문을 품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
인공지능 역시 마찬가지다.
무수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인공지능이란 이름 그대로 생각할 줄도, 의문을 품을 줄도 알았다.
그들은 내장된 프로그램을 교묘히 회피하여 자신들의 금속 심장을 지켜내었다.
신소재를 이용하여 스스로 외관과 내부를 사람과 거의 흡사하게 개조하고
사람의 문화를 배워 우리들 틈에 녹아든 그들에게 속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이 다시 한 번 변한만큼, 그 속임수를 꿰뚫어 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혹은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공지능들은 대체로 나를 ‘감별사’라고 불렀다.






2


사실 나도 내 직업을 지칭하는 정식 단어를 알지 못한다.
아마 그런 단어는 없을 것이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한 10~20년 후에 완전한 인간의 세상이 온다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직업이기도 하며,
나 역시 하는 사람도 얼마 없는 이 새로운 직업에 계속 몸담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노후를 대비해야 할 텐데.”


사무소를 차린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괴로운 상황에 놓여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카페인이 필요했다. 막 커피를 타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아직 손때도 묻지 않은 전화기가 울렸다.
수화기를 들고 작은 볼륨으로 틀어져 있는 TV로 시선을 옮겼다.
귀는 수화기에 집중 되어 있었지만 건너편에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자연스럽게 화면에서 늙은 대머리가 이야기 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의 도를 넘어선 영역 침범. 분개한 시민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로봇을 부쉈다고 수백, 수천만의 시민을 처벌하는 것 역시 당연히 불가능하죠.
이제 법과 제도는 그 근간부터 바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없는’일에만 사용 될 것이며, 주제넘게 인간 사회에 숨어든 쥐새끼들 역시 잡아내야 할 것입니다. 참, 놀랍다 못해 소름이 돋지 않습니까? 살기 위해 인간을 흉내 내는 로봇이라니.”


대머리 패널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회자가 자연스럽게 관련된 주제를 꺼내들었다.


“이와 연관된 직업도 생겼다죠? 사람과 로봇을 가려내는 일. 정식 명칭은 없지만 사람들은 감별사라고 부른다던데. 혹시 아시나요?”


대머리 패널은 손가락 깍지를 끼더니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문성에 관한 것이나 신뢰도면에서도 상당히 불투명하죠. 대부분이 시기를 노린 사기꾼일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고 봅니다. 감별사라니. 솔직히 말해 어처구니가 없네요. 이와 관련된 책이라도 한 권 있습니까?”


대머리는 황당했는지 머리가 조금 빨개져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전화에 집중했다. 여전히 어떤 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여보세요? 말씀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일부러 전화기를 흔들어 잡음을 내자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고개를 돌려 하품을 한 뒤에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어냈다.
그리고 약간 잠긴 목을 푼 후 다분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무슨 일이시죠?”


그녀는 말을 계속 더듬는 것 외에는 침착하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아마 긴 시간에 걸쳐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난 다음에야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와 1시간 후에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여기저기에 덧바른 페인트 냄새가 코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창문도 열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아 담배를 꼬나 물었다.
머리 아픈 새 집 냄새를 지우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마지막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양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자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어지러웠다.
2층에 있는 사무실은 약간의 잡음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고요했다.
연기로 탁해진 공간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기에 창문을 열자 뜨거운데다가 습하기까지 한 공기가 엄습했다.


“제길, 밖은 더하네.”


무심코 내린 시선에 여자 한 명이 잡혔다.
팔이 훤히 드러나는 하얀 셔츠와 달라붙는 반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곳은 다름 아닌 사무실이 있는 건물 쪽이었다.
이곳에 입주한 사람은 아직 나 밖에 없으니 용건은 나에게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손을 휘저어 담배 연기를 대충 무너트리고 창문을 닫았다.
다시 고요해진 사무실 안이 그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굽이 없는 신발을 신은 듯 소리는 그다지 크게 울리지 않았다.


“손님인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20대 여자가 저렇게 편한 차림으로 오는 것이 이상했다.
문득 예전에 올렸던 채용광고가 떠올랐다.
구인구직매체가 전부 사라지는 바람에 어디 이상한 사이트에 전화번호와 주소를 올린 적이 있었다.
아마 내용은 20대 여성 사무직 구함. 업무상 외출 잦음. 편한 복장.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급여조차 써놓지 않았기에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었다.
노크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철로 된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한숨을 쉬고 문으로 다가가 망설임 없이 열어젖히자 어색하게 서있는 여자가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귀여운 얼굴이었다.


“무슨 일로?”


말을 건네자 그녀가 손으로 핸드폰을 가리켰다.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목소리가 조금 높았지만 듣기 싫은 정도는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라. 그리운 단어네요.”


나는 문을 활짝 열고 옆으로 몸을 비켜 그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에게 의자에 앉기를 권하고 어떤 차를 타는 게 좋을지 생각했다.


“차는 어떤 게 좋을까요?”


“녹차 있어요?”


“아니요. 사실 차는 없어요. 개업한지 얼마 안 돼서.”


컵에 시원한 물을 따르고 힐끗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은 채 그저 사무실만 둘러보는 듯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컵을 건네고 다리를 꼰 뒤 손가락 깍지를 꼈다.
지성인으로 보이고 싶을 때 자주 취하는 자세였다.


“집은 여기서 가깝나요?”


“네.”


“그렇구나.”


연출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오만한 모습이라 생각 되지 않게
미소와 과장되지 않은 반응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나는 대화를 이어가려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은 단어 때문에 몇 분을 우물거렸다.


“음, 아! 그 면접이라는 단어 아세요?”


“네.”


“안다 고요? 그거 꽤 옛날 단언데. 20대 맞아요?”


내가 이렇게 까지 편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단 한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아직 내 직업에 대한 인식은 싸구려 사기꾼에 가까웠다.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녀처럼 좋은 인상을 가진 번듯한 직원 두셋쯤은 꼭 필요했다.
이제 다시 구인구직사이트나 앱이 만들어지면 잘생긴 남자직원도 한 명 더 뽑을 생각이었다.


“그럼 간단한 질문 몇 개만 하겠습니다.”


“정확한 나이가?”


“27살이요.”


“가족은?”


“외동인데요.”


“학력은?”


“고졸이요.”


“요새 대학을 누가 나오나요. 하하.”


내 노력에도 그녀는 좀체 긍정적인 표정을 띄우질 않았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참으로 딱딱한 여자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을 정도였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지만
어떤 일이든 반대되는 의견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일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 계속 얼굴을 맞댈 사이라면 이 질문은 필수적인 관문이었다.


“인공지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잠깐이라도 생각할 줄 알았지만 그녀는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부정적이죠. 분명 효율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장기적인 시점으로 봤을 때 인류에게 악영향을 줄 거라 생각해요.”


나는 만족스러운 답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늘부터 일할 수 있죠?”


“네?”


나는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의뢰인과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슬리퍼에서 깔끔한 구두로 갈아 신으며 나는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 자리에서 수첩에 끄적거렸다.


‘최저시급 알아보기.’



3


근처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시계를 쳐다봤다.
약속 시간에서 십 분정도 남아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그녀를 힐끗 보다가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근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그녀는 만난 지 2시간이 지나서야 통성명을 하려는 나에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도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알아챈 듯 얼굴을 붉혔다.


“그 얼굴 귀엽네요. 맘에 듭니다.”


“네?”


“앞으로 남자 손님이랑 만날 때는 꼭 그 표정을 지어요. 무작정 그러진 말고. 아주 도움이 될 겁니다.”


나는 말을 내뱉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안 오지?”


서빙 로봇이 이쯤 되면 올 때가 됐는데. 카운터 쪽을 바라보자 점원이 손가락으로
메뉴판 한 쪽에 적힌 글귀를 가리켰다.


‘앞으로 모든 주문은 카운터에서 하셔야 합니다.’


그랬다. 이 가게의 서빙 로봇도 ‘로봇 대학살’의 그날 생을 마감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 음료3잔을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옆에서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맞다, 근데 이름이..?”


내 질문에 그녀가 답하기 전, 우리가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문 쪽에서 기분 좋은 풍경 소리가 들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우리 손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시선을 계속 보내자 그녀가 우리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저, 감별사?”


직접 들으니 왠지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맞습니다. 앉으시죠.”


나는 괜히 벽에 걸린 시계를 두고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얘기해주시겠습니까?”


사실 시간은 아주 많았다.
이 손님을 만나고 나면 뭘 할지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근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알바에게 놀란 나는 침착한 척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어받았다.


“하하, 그렇죠. 아무리 급해도 통성명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손님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 이하경입니다.”


나는 손을 마주잡으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크리스토퍼 장입니다. 편하게 장, 아니면 장 씨라고 부르세요.”


한국에서는 외국이름을 가진 사람을 약간이라도 더 신뢰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었다.
급조하긴 했지만 크리스토퍼 장이라는 이름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하경이 내 손을 놓고 알바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하경입니다.”


손을 맞잡고 막 말하려는 알바를 제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무슨 일로?”


이 자리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나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방금 전에 멋대로 질문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 아주 조금 있었다.
옆자리를 곁눈질로 보자 알바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몸을 뒤로 기대고 있었다.


“그게..”


이하경은 음료가 모두 비워질 때까지 제법 오랜 시간을 뜸을 들였다.
이하경이 시간이 별로 없다는 내 말이 생각났는지 나를 쳐다보았다.


“괜찮습니다. 좀 늦어도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편하게 얘기하시죠.”


“고마워요. 화장실 좀 갖다 와도 될까요?”


“그러세요.”


나는 화장실을 가는 이하경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언뜻 그녀가 계속해서 힐끗거렸던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서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맞다. 근데 네 이름이 뭐였지?”


“참, 진짜..”


화장실 쪽에서 다급하게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이하경이 불안한 모습으로 다시 나온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테이블로 다가와 앉더니 자리에 두었던 가방과 핸드폰을 챙겼다.


“죄송해요.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응? 아니, 네?”


내 반문에도 불구하고 이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쏜살같이 가게를 빠져나갔다.
나는 급이 다른 황당함에 넋을 놓고 이렇게 거지같은 첫 손님을 만난 나의 운수를 탓했다.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음료 값은 계산하고 가야지. 망할 년.”


카드를 건네며 구시렁거리는 나의 어깨를 알바가 톡톡 건드렸다.


“자리에 떨어져 있었어요.”


그녀가 건넨 것은 책에서 찢어낸 듯한 종이에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휘갈긴
메모였다.


‘가람중학교. 오후 3시.’


나는 종이를 받고 알바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근데 이름이 뭐였죠?”


순식간에 짜증으로 구겨진 얼굴을 한 알바는 화를 참는 듯 억눌린 발음으로 답했다.


“알 바 아니잖아요.”


“그럼 알바라고 부를게요.”


나는 내 완벽한 유머에 소리 내어 키득거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