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도 사랑하는 공원, 덕진.



기대했던 행복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음식의 마지막 한 입을 완벽하게 숟가락에 얹어 입에 가져갔건만, 손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뜨리는 상황이나
두고두고 아껴둔 청포도 사탕을 찾았더니 다른 사람이 먹어버린 경우 등 말이다.
기대감이 실망이 되고 억울함 허탈감이 되는 감정이란 말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글 올라왔길래 들어왔더니 이게 뭔 개소리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 허탈한 상태란 것이다.

세상에 덕진공원이 또 공사란다.
2018년 즈음 공익으로 훈련소에 가고자 군휴학계를 낼 즘 시작해, 2021-2년 즘 코로나를 걸쳐 돌아올 때 까지 못 끝내던 긴 공사를 마쳐놓고 또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작년 11월부터 5월까지 공사란다.
덕분에 거점에서 열심히 자원캐고 교배하는 팰들의 먹이와 건강을 관리하는 중책 ‘시간 부르주아 담당’을 제쳐두고, 덕진의 풍경이 그리워 버스타고 20분이나 달려온 나는 멍청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화가 난다.
정읍은 예산이 남으면 멀쩡한 보도블럭을 갈아 끼우던데, 전주는 예산이 남으면 덕진공원에 땜빵치는건가 하는 헛생각마저 드는 참이다.

무릇 덕진의 봄이란 연꽃이 한가득 피는 한여름, 8월 즈음을 지칭하는 말일 테다. 이 시점의 덕진공원은 분명히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다. 발을 들이자마자 공원을 꽉 채워버린 연꽃향이 우리를 반기고, 공원을 다 채워버릴 듯 펼쳐진 연잎의 청판 위 제멋대로 피어난 선분홍빛의 향연이란 시각 후각을 모두 홀려 그 다음 해에도, 다른 계절에도 그 곳을 다시 찾게 만든다.

그런데 공원의 전부인 호수가 공사로 물이 다 빠졌다. 포경을 하지 않은 음경의 포피를 벗겨낸 듯, 숨겨진 속내를 모두 드러내고 말았다. 덕분에 호숫가의 1등석인 돌의자에 앉아 잔잔한 물흐름이나 보려던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음경같다는 것이다.
하물며 덕진의 봄은 바로 옆 전북대학교의 개강이 있다. 학우들과의 첫 만남과 어색한 이야기, 공강 사이의 심심함을 떼우려고 같이 공원을 돌던 날, 소위 인싸 학우의 말 한 두마디가 가슴을 설레게 하던 밤들. 2016년 3월의 덕진은 내게 꽤나 아름다운 곳이었건만, 올해의 새내기들이 바라볼 덕진의 첫 인상은 이토록 잔인하게 부숴져버렸다. 첫 인상이 이토록 망가졌으니, 덕진의 진짜 봄인 8월이 온다 해도 공원을 향하는 발걸음이 줄어들 것이란 안 보고도 뻔한 일이다. 안타깝다.

실망감을 제쳐두고 보는 풍경은 제법 새롭긴 하다. 누가 이 풍경을 보고 호수라고 생각하겠는가. 물이 다 빠진 호수는 논 같기도 하고 갯벌 같기도 하다. 어릴 적 매 주 할아버지댁의 농삿일을 도우러 가족을 데리고 가시던 계화면 생각도 나고, 새만금으로 빛이 바랜 옛 변산의 풍경 같기도 하다. 오리가 살던 곳엔 까치가 먹이를 찾는다. 물새는 가고 뭍새만 남았다. 나름은 흥미로운 모습일테지만, 늬르죽죽한 흙탕물들과 드문드문 낀 검붉은 기름띠를 보는 기분이란 결국 새로운 그림을 보는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만다.

계속 투덜거렸지만 결국 좋은 일로 돌아올 것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덕진공원의 사례만 보고 평가하는 전주란, 속도가 느려터져서 그렇지 결과물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이번 공사의 경우도 덕진의 봄이 오기 전에만 해결 되면 될 일이긴 하니, 명시된 5월까지의 공사기간도 납득할 만 하다. 5월이 11월이 되고 명년 4월이 되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냥 내가 오늘 억울해서 적는 글이다. 역할을 내팽개친 대가로 팰이 두 마리 골골대는 꼴까지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약이야 만들면 그만이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