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 20대 초반, 위에 15살 차이나는 언니 하나 있음（늦둥이）. 남들은 늦둥이라고 하면 사랑받고 자랐겠구나~ 했지만 나 태어났을땐 부모님이 장사하느라 바빠서 가족여행같은건 꿈도 못꿈. 아빠는 나 어릴때（유치원~초등학생쯤） 내가 말 걸어도 거의 무시.

어릴 때부터 타고나길 소심하고 유약한 것도 있었으나 아빠가 술을 굉장히 많이 마셨고, 한 번 마시면 굉장히 폭력적이고（실제로 때리진 X）, 소리지르고, 엄마한테 폭언을 하고, 내가 애라서 당연히 못하는 것들을 가지고 화냈음. 가장 무서웠던 건 무뚝뚝하던 아빠가 술마시고 오면 좀 부드러워져서 좋다가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폭발적으로 화를 내서 그게 제일 힘들었음.

그럼 이게 어린 시절로 끝났나? 아님. 중학교 가서는 아빠가 술먹고 나한테 화풀이하는걸 구해준 언니가 아빠한테 씨12발년 소리를 듣고 못참고 똑같이 왜 이 씨12발놈아! 하고 소리지른 적 외에도 많았고, 고등학교 때는 아빠가 술에 엄청 취해서 들어와서 나한테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랑 갈라지지 않을거라고 해놓고, 조금 이따 엄마가 퇴근하자 뜬금없이 엄마한테 화를 내고 욕하고 시비걸더니 이혼하자고 함. 이때 우리 아빠가 진짜 이상해졌구나 싶어서 무서웠음.

나는 언어에 재능이 있고 게임 그래픽 쪽에 흥미가 있었음. 부모님이 하시는 식당이 잘돼서 고등학교도 그쪽 기숙사로 갔고, 대학도 유학가서 2년째 다니는중. 그럼에도 나는 평생 내가 집에 없는동안 아빠가 술마시고 엄마한테 해코지 할까봐 두려웠음.（언니는 결혼해서 분가함） 유학 와서도 늘 그림으로 칭찬받았는데도 내 스스로는 늘 불안하고 힘들었음. 엄마가 아빠랑 단둘이 남겨져서 정서적으로도 힘들고 식당 일하시느라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나만 거기 가있다는 사실이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작년 여름에 공황발작도 온 적 있음.

그래서 올해 사실 휴학을 결심하고 집에 왔으나... 코로나때문에 싸강을 들을 수 있게 됨. 미국에선 달마다 생활비만 200씩 들었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안 드니까... 맘 같아선 그래도 휴학하고싶고 엄마도 내가 울고불고하면 시켜야 주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가 없단걸 알아서 집에서 지내며 싸강 듣는 중. 이제 문제는 집에서 지내니까 자꾸 아빠랑 부딪힌다는거.

정작 아빠는 이제 생활이 안정적이어서 술 마시고도 꽤나 유해짐. 나는 막내라는 의무감으로 평생을 하하호호 애교부리기도 하며 지내왔기에 아빠는 나를 좋아하고, 내가 이런 상처가 있단걸 모름. 엄마는 암. 오늘도 아빠가 술먹고 들어와서 술좀 그만 마시면 안되냐 했더니 '너 빨리 너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아빠가 농담했는데, 내가 뜬금없이 거기서 울음이 터짐.

왜냐면, 내가 미국 살면서 깨달은건데, 나는 살면서 한번도 집을 안식처로 여긴 적이 없더라. 어릴 땐 집에 이런저런 사정이 안좋아서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하는 애들 흔하잖아.. 나도 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생활하면서 정말 궁지에 몰리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음. 다 그만두면 이제 어디로 도망가지? 하고 생각했더니 머릿속이 하얘짐. 죽음이나 증발밖에 떠오르지 않더라. 한국에 떡하니 집과 가족이 있는데도... 그래서 아빠가 너네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농담했는데 뜬금없이 울음이 터지고, 그 이유를 아빠한테 설명했음.

' 나는 옛날에 아빠가 술먹고 이러이러한 짓을 해서 정말 무섭고 힘들었다. 아빠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빠와 딸의 정이 있으니 다시 아빠랑 잘 지내보려고 이렇게 용기내서 술 끊거나 줄여달라고 하는거다.' 이런 얘기를 함. 그런데 우리 아빠는 그거 다 옛날 얘기 아니냐, 내가 언제 그랬냐, 그래서 그게 니가 극복해야 할 문제지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냐? 왜 잘 지내는데 옛날 얘기를 하냐, 이런 얘기를 해서 내가 못참고 대들어서 대판 싸움.

좀 지나서 내가 그냥 자포자기하고 아빠한테 갑자기 화내서 죄송하다고, 옛날 일을 내가 쌓아두고 있어서 그랬다고 했음. 그랬더니 아빠가 한 말이 그냥.. 내 가슴에 박힘. '봐라, 너는 할아버지 묘 한번 가본 적이 있냐? 내가 매년 가서 성묘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빠（가족묘임）, 나는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너랑 내 사이에 괜히 아빠와 딸의 정 어쩌구 하지 말고, 어짜피 우리 죽으면 이거 다 니꺼니까 그냥 있어라. 니가 석사를 따든 박사를 따든 부모는 상관없고, 니가 그때돼서 부모를 찾아도 나는 답 안한다. 아빠는 프로라서 니가 머리가 크든 말든 그냥 우리 막내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나도 효 측면에서 너네한테 할말이 많다. 내 인생도 힘들고 억울했다. 너는 뭐가 그리 힘들다고 뜬금없이 나한테 와서 빽 하고 우냐. 너도 똑똑해서 알지 않냐' 이런 말을 함.

나는 늦둥이로 크면서 가족들 사이에서도 고립감을 굉장히 크게 느꼈고,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애초에 아빠는 성묘할때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음. 가족들이 나만 모르는 얘기를 하고, 나만 모르는 추억은 수두룩빽빽이 쌓여있고, 여행 사진도 많은데 내가 태어난 후에는 부모님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끼리 뭘 하는건 몇 년에 한 번, 당일치기정도.. 그것도 내가 떼써서 가는듯해서 어린 나이에 자괴감이 참 많이 들었음. 그런데 아빠가 저런 얘기를 해서 나는 정신이 멍해짐. 아빠랑 잘 지내고 속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내가 너무 어렸음. '애초에 왜 내가 평생 괜찮은척 한거지? 진짜 괜찮은줄 알고 있잖아?' 이런 생각이 들면서 멍해짐.

그래서 이제 아빠를 그냥 신경쓰지 말아야겠다 싶음. 홧김에 다짐하는건 아니고... 차분하게 이런 생각이 드네. 나는 아빠를 그래도 사랑해서 노력했는데.

나도 쓸데없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긴 했고, 이미 내 스스로 극복할 단계를 지난 것 같아 정신과도 갈 예정임. 하지만 혹시나 나처럼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면.. 조언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게 좋을까?

아빠 일화 그냥 몇개만 적어봄...

- 아빠 라면에 물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아빠 도와주겠답시고 스프 까서 넣어주려다가 조금 식탁에 흘림. 아빠는 그 자리에서 욕하면서 아침상 엎고 나감. 나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임.

- 나 거실에서 컴퓨터로 숙제하는데 술먹고 들어와서 노래부르다가, 내가 관심을 안주자 욕하면서 효자손 집어던짐. 내 바로 옆 물건에 튕긴 후 맞음. 중학생 때.

- 엄마한테 그냥 그냥... 매일 욕과 소리지르기는 예사였음. 한 번은 밖으로 나갔는데 멀리서 아빠가 엄마를 파이프로 내려치려다가 참음. 아빠엄마는 내가 본걸 모름. 초등학교 쯤.

- 뭐때문인지는 기억 안나지만, 별거 아닌걸로 엄마한테 화를 내다가 상을 뒤집고, 나가면서 문에 주먹을 박음. 농담같이 문에 주먹자국이 남은 그 집에서 그 이후 5년정도 살다 이사함.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그 외에도 많았는데, 그동안은 이정도 힘듦은 누구나 겪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뒤돌아보니까 의외로 이런 일들이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는데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줬더라.


세줄요약
1. 아빠가 술만 마시면 감정적으로 불안해지고 폭력적임
2. 내가 평생 그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데, 아빠는 모름
3. 용기내어 말했으나, 아빠는 기억도 못하고 자기도 힘들었으며 그건 니 문제라고 화냄.
결론 : 이제 평생 아빠를 가족으로써 존중하고 잘 지내보려던 걸 그만두려고 함. 이래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