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대략 100인치 정도의 큰 터치스크린이 내 앞에 있다. 나는 크기를 알 수 없는 새하얀 공간에 서 있었고 오로지 스크린만 보였다.
거기엔 세계지도가 있었는데 특이한건 수백개의 크고 작은 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점들마다 제각기 시분초 단위로 다른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것은 몇 분 밖에 안 남아서 실시간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또 어떤 것은 수 천 시간씩 지나가버린 점들도 있다.
손을 가져다 점을 클릭해보니 작은 창이 옆에 뜨더니 대략적인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이름, 얼굴, 나이와 성별, 직업, 어떤 장소, 마지막으로 사인이었다.
여러 차례 다양한 점들을 누르다 보니 시사에 관심이 없어도 알만한 유명인사도 있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조차도 있었다.
혹시 몰라서 몇 일 전에 플로리다에서 피습당해 죽은 미국 하원의장이 생각나 그 지역에 찍힌 점을 클릭해보니 역시나 그 사람이 뜬다.
세계대전의 시작이니 뭐니 하면서 여러 번 보도되어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었는데 전부 일치했다.
그리고 점과 연결된 타이머는 그가 죽은지 얼마나 흘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점들의 크기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점의 크기가 클 수록 무언가에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한발짝 물러나 지도 전체를 바라보았다.
마카로 콕 찍은 듯한 작은 점들 빼고 그보다 큰 점들도 빼고 가장 큰 점만 보니까 7개가 있었다.
이 7개의 점들은 1개를 제외하곤 현재 죽은걸 알 수 있었고 지도 전체에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까 살펴본 플로리다를 보니 중간 크기의 점이었다.
그 때 내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작게 인사했다.
"안녕?"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려했지만 그의 손길에 제지당했다.
"나를 보지 않는게 정신건강에 좋을걸?"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채 그저 눈동자만 그를 향했지만 볼 수 있을리가 없었다.
"넌 누구지?"
나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는 듯한 숨소리가 들리다 이내 멈췄다.
"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대충 게임마스터, GM이라고 생각하렴."
성별조차 알 수없게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섞인 그의 말에 의심을 하며 다른 질문을 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살펴보니까 이 지도가 어떤 걸 보여주는지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했다.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어떤 일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찍혔는지 그리고 모든 타이어가 기준 시간을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그는 작은 웃음과 함께 대답을 들려주었다.
"감이 오잖아. 이건 세계멸망의 지도야. 여기 보여주는 모든 인물이 죽는다면 그대로 끝이야."
어차피 나는 죽어서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는데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가 내가 죽어서 여기에 있다는 것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때 갑자기 검은 장갑을 낀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화면 전체를 보려고 물러나 있었음에도 검은 정장의 팔이 멈추지 않고 쭉 늘어났다.
그의 손가락은 대한민국의 서울에 찍힌 작은 점을 클릭했고 나의 정보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건 하나의 게임이야. 이 게임에서 승리한다면 넌 다시 살아날 수 있고 세계멸망도 막을 수 있어."
나는 순간적으로 집에서 그녀와 식사를 하다가 큰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며 죽었다는 걸 생각해냈고 나의 눈동자는 폭격이라는 글자로 향했다. 그의 손은 다시 내 뒤로 거둬져 갔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네가 삶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면 그저 가만히 있으면 돼. 그래도 나는 상관없지만 조금 실망하겠지."
나는 그의 말에 새로운 의문이 들어 질문을 하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는데 뭘 어쩌란거지? 게임이라면 룰과 진행방법을 알려줘야지."
그는 손으로 내등을 살짝 치고는 대답을 해주었다.
"안그래도 설명하려고 했는데 성미가 급하구나? 일단 아무 점이나 길게 터치해 봐."
나는 곧장 그의 말에 따라 일본 도쿄에 찍힌 점을 지긋이 눌렀다. 그러자 새로운 창이 뜨면서 놀랄만한 문구가 나타났다.
-이 지점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수락/취소
얼른 도쿄에 찍힌 점의 시간을 확인해보니 대략 80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미 죽은지 한참 된 인물이 있는 지점으로 가는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걸 수락하면 너는 이 사람이 죽기 24시간 전으로 도쿄 한복판에 무작위로 이동할거야. 너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사람을 살리면 돼."
"나는 일본어도 모르고 가진 것도 없는데 무슨 수로 이 사람을 살리란 거야?"
"공평한 게임을 위해 너에게 3가지 특전을 줄거야. 첫번째는 이 인물과 어느 정도 연관된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것."
"뭐? 그게 가능해?"
그는 내말을 무시한다는 듯이 바로 말을 이어갔다.
"두번째는 네가 들어간 사람의 기억과 인격, 능력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이건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갑자기 사람이 말도 못하고 행동이 급변한다면 많은 제약이 걸리고 심지어는 헛고생하는 경우도 있을텐데 이 특전이라면 어느 정도 할만해진다.
"세번째는 포인트에 따른 재도전 기회가 있다는 것."
이 특전이 뜻하는건 각 인물들 마다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거고 재도전을 해도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재도전을 위한 포인트는 사람을 살리면 얻을 수 있는거지?"
"물론이지. 기왕이면 작은 점들로 포인트 벌이를 하는걸 추천해 비교적 쉬운 편이거든. 그리고 게임적응을 위해 3번의 재도전이 가능한 포인트를 줄거야."
지도 상단에 북극점이 있는 곳에 300이라고 적힌 숫자가 나타났다.
"작은 점은 30점, 중간점은 50점, 큰점은 100점이야."
나는 일단 도쿄로 향하는 창을 취소시키곤 수백개의 점을 보았다. 이 많은 것을 하려면 적어도 1년이상 재도전까지 생각하면 몇년이 걸릴지 가늠이 안됐다.
"게임의 승리 조건이 뭐지? 이 모든 점을 없애야 하나? 아니면 가장 큰 점 7개를 없애야 하나?"
GM이라고 부르는 자는 천천히 멀어지면서 대답했다.
"두 가지 다야. 가장 큰 점 7개를 지우려고 하다보면 그 외의 점을 지울 수 밖에 없을테니 결국 모든 점이 사라질거야."
"그만큼 어렵게 설계된 것인가? 만약 포인트도 없고 클리어 할 곳도 없어서 진행이 막히게 되면 어떻게 되지?"
이제 제법 멀어졌는지 서서히 고개도 돌아가고 그의 대답도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아직 말해줄 순 없어.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레 정보나 팁이 풀릴거야. 네가 직접 해금시켜. 그리고 슬슬 뒤돌아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만하길 바란다. 잘못하면 네가 죽을지도 몰라."
그가 어떤 모습인지 한 번 알아보려던 나의 시도는 물건너갔으니 서울에 찍힌 나의 점을 다시 꾹 눌러보았다.
-시나리오 클리어 10개 혹은 1000점 필요.
승리보상에 나의 부활도 있는데 나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게 궁금해서 눌러보니 해금을 시켜야 하는걸 알았다.
"아 그러고 보니 멸망의 주적이 누구지?"
더이상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었다. 조심스레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제 웹소설에서나 보던 회빙환게임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