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는 돌아왔다.
글이란걸 애초에 생각을 안 하고 적는 성격이기에 지금 적어내리는 모든 것이 곧 흑역사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돌아오고 말았다.
글이란 그런 것 같다.

당연히 목적을 정하고 적는 글이 아니다. 충분히 재미없는 글이고 없을 글 쪼가리다. 뒤로가기는 항상 여러분을 향해 열려있다.

최근은 뭐랄까. 좀 위험한 것 같다.
사람을 본 게 어느 전인지, 그러니까 어느정도 일상적인 대화를 할 만한 사람을 본 게 언제적인지 모르겠다. 비교적 근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외로움이란 상대적이기에 먼 기간 역시 찹쌀떡처럼 늘어난다. 찹쌀떡인지 고무줄인지 조차 모르지만, 나는 일단 지금 외로운 사람이니 찹쌀떡이 판정승을 할 노릇이겠다. 외롭다.

사람 앞에 들이 밀 얼굴이 없다. 아무 것도 되지 않는 하루는 가고, 불행하게도 얼굴거죽도 얇다. 되고 싶은 것은 커녕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짚어야 할 지 조차 모르겠다. 앞다리는 낭떠러지다. 뒷다리는 없다. 겁쟁이만 남았고 길도 없다. 쪼그리고 앉아 있다보면 하루가 간다.

사람들은 하루 나를 앞서나가고 나는 늪에 빠진다. 생을 열심히는 살지 못했어도 사실 수박 겉핥기 정도는 살지 않았나 싶었는데, 돌아보면 나는 어느샌가부터 무능 그 자체였다. 그렇게도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고갤 젓던 시간으로 다가가고 있다. 늪은 숨이 막힐지언정 아늑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유튜브에서 멋진 사람에게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 영상을 봤다. 뤼트 휠릿, 그는 너무나 멋진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팀의 전설이자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나는 영상을 보다 그 사람과 나를 겹쳐보이고 싶어서, 내가 그 질문을 받는다는 망상에 빠진다. 돌아가고 싶은 때라, 어느 때를 생각하다가 생각을 멈췄다.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잘났기 때문이었다면 이딴 글은 오늘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테다. 순수하게 단어 그대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었다. 우울은 생의 한 복판에 피어나는 싹이다. 어느 순간부터 머리 속에 피어나 인생에 노이즈를 만든다. 기억 어딘가, 그러니까 지금도 기억나는 어느 만 5-6세 시절부터, 내 인생 한 퉁이엔 항상 노이즈가 껴있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 초록병은 항상 쌓이고, 내 기억 속 갈색 박스에 놓인다. 말싸움을 주고받다보면 험한 말이 오가고, 감정이 오가며 잠자던 노이즈를 흔들어놓는다.

노이즈는 어느날 옛날 텔레비전처럼 흑백 줄무늬가 지직거린다. 기억은 변조되고 소리는 가린다. 그 날에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노이즈만 남는다. 어린 나는 심야시간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노이즈를 구경하는 꼬마가 된다. 나는 추억도 없고 기쁜 일도 없다. 다만 전자파를 맞는 멍청이가 된다. 노이즈는 삶을 따라오고 기억을 밟는다. 겨우살이처럼,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사람을 기생수로 만든다.

변명이다. 다들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되도 않는 이유를 대가며 방에서 갇힌건 변명에 불과할테다. 어쨌든 멈춰버린 것은 내 잘못이며, 갈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맞건만, 멍청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멍청이다. 멍청이 로봇이다.

동아줄이 하나 필요하다. 이지경까지 와놓고 또 도움을 구하는 꼴은 너무나도 추한 모습이지만 이대로면 빠져버릴 것 같다. 늪은 이미 무릎을 적셨다. 삶이란 미련이고 죽음은 해방이란걸 아는데도, 생에 맺은 연에 약해 떠나지 못하는 멍청함이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다만 기적은 이기적이요 탄생은 매몰의 시작일지라도 결국 맺은 연을 매듭짓는건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 길로 가자고 손이라도 뻗어줬으면 좋겠다. 외로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