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중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방법은 일시적으로 그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회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예를들어 한 장비를 두 거래처에서 수리한 상황에서 해당 장비에 긴급상황이 터졌고, 하필 사고가 터진게 빨간날 이었고, 둘 중 가까운 거래처 담당자는 상갓집에 가 있었고, 중요한 부분이라 당장 고쳐야 하는 상황에서, 상급자가 길길이 날뛰며 잘잘못을 따지고 원론적으로 화를 내고 있길래 '일시적 회피'를 위해 자리를 옮겼으나 그 언성이 너무 높아 모든 내용을 다 듣게됐다면? 피하지 못한 상황은 상황대로, 피하려고했던 절박함은 비겁함이 되어 두배의 충격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나도 별로 알고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상황 파악을 하게 현장으로 나가려는 의견까지 좀 있어봐봐 자네가 현장 뭘 안다고 그래 라며 묵살당하고 나면 다시금 탕비실로 향해 머리를 쥐어박고 싸대기를 올려치고 분을 삭히고 있다가 상급자와 통화중이지 않은 거래처 담당자에게 현장 상황을 전화로 전해듣고 파악을 끝내고 나면 광대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만큼 마음속에 채찍질을 가하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기어나가 어느정도 상황 파악이 되어 이제는 거절당하지 않을 두번째 "현장 확인 하겠습니다"를 간신히 내뱉고 그 상황을 탈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서는 홀로 현장까지 가는 운전중에는 울며 불며 악을쓰며 자책하다가도 또 양쪽 담당자의, 현장의 당직 직원의, 간만에 신년인사차 연락온 지인의 전화를 받을때는 또 말짱한 사람처럼 통화를 하다보면 이것이 조울증의 영역인지 사회력과 연기력의 콤비네이션인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쯤되면 현장 당직자와 대면이 5분정도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휴일출근이라 대충 눌러쓴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쓰고 붉게 물들고 일그러진 얼굴과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쌩 쑈를 하며 도착한 현장에는 보통 내가 유선통화상으로 조언을 받아 해결되는 일이 대다수라 맥이 풀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풀린 맥은 보고전화를 올렸을 때 아까의 그 길길이 날뛰던 대표의 순수한 웃음톤의 잘했어 세글자에 한 번 더 풀렸고, 하루에 두번 연달아 맥이 풀리고 신년 해돋이를 보고 느지막히 돌아오는 여행객들의 교통량에 치여 평소보다도 훨씬 늦은 시간에 간신히 퇴근한 나는 그렇게 신년 신정 저녁식사를 기점으로 '하루에 마시는 술의 양이 소주 두병을 초과하지 말 것'이란 첫번째 규칙을 완전히 깨버렸다. 삼재의 마지막 해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