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심령 추리소설 '레퀴엠' 2편 계속됩니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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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의 문（cafe.daum.net/blacknovel）

작가 : 나디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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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올들어 첫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윤우는 두터운 파카와 모자, 그리고 목도리를 챙겼다.
주방으로가서 방금전 타놓은 뜨거운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윤우는 가방을 둘러멨다.
얼마전 철원을 다녀온 후로 이주일정도의 시간을 오로지 자신이 5년째 매달려온 일에 대한 연구일지를 쓰는데 소요한 윤우였다.
언제나처럼 일지에 써야할 내용은 매년 똑같은 것들 뿐이었다.
꿈이라면야 늘 다람쥐 챗바퀴 돌듯하는 일지에 마침표를 찍는 일인데..
비록 이주일이었지만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새하얀 모습에 몸은 이미 낙동강에 가있었다. 그동안은 중간에 금강의 하구부근에도 들르고는 했으나 몇 년사이에 수많은 개발로 인하여 얼마 남지 않은 저수지며 호수등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금강은 거치지 않고 바로 낙동강으로 향하고는 한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윤우는 마지막으로 소형 녹음기의 배터리를 확인하고는 집을 나섰다. 정말로 눈이 오려는지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모르는 바람가득 배어있는 시리도록 차가운 감촉에서 겨울냄새가 난다.
겨울이라!
겨울과 백조는 어찌나 그렇게도 닮아있는지..
새하얀 모습하며 고고한 듯 메마른 차가운 자태하며 모든 것이 꼭 빼어닮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이토록 시리도록 만드는 것 까지 ...
지금쯤이면 이미 낙동강의 찰랑거리는 물에 힘겨운 몸을 내려놓고 그 청초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 저마다 손질을 하고 있겠지?
생각만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지 윤우는 푹 눌러쓴 털모자와 꽁꽁 싸맨 목도리속의 눈속 가득 새하얀 미소를 지어낸다.

'리리리.......리리리리.....'

핸즈프리에 전화기를 올려놓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폴더창에 '운동회'란 글자가 떠오른다. 어릴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회의 별명이었다.
유난히도 그 별명을 싫어하는지라 몰래 입력시킨 이름이었다.
하루에도 몇십번씩 볼 수 있는 글자였지만 볼때마다 웃음이 나는 것은 왜일까?
또 창가에 붙어 커피를 빼마시며 전화를 하는 것이겠지?
운전중인지라 가볍게 손을 올려 폴더를 열었다.

"왜? 넌 커피만 마시면 내가 보고싶냐?
너 커피 조금만 마셔!"

"미친.......너 지금 어디가는 중이야?
고새를 못참고 또 어디를 가는거야?"

항상 내뱉는 듯 따져대는 동회의 말투는 귓속 깊이 박혀 정다움을 느끼게 한다.

"한 5일정도 걸릴거야...
낙동강에 가고 있어. 거기갔다가 혹시 주남 저수지까지 들르게 되면 더 늦어질지 몰라.
알지? 전화하면 안되는거..
내가 먼저 할게.. 나 운전중이거든?"

"자..잠깐! 이자식이 또 저 할말만 하고 끊으려구..
전화좀 자주하라구...
궁금해 미칠거 같단 말이야.
그리고 너 이번에 돌아오면 너 무슨짓하고 다니는지
꼭 추궁할테니까... 이번엔 각오 단단히 해 ..
듣고 있지?
야! 정윤우!"

계속되는 동회의 다그침에 윤우는 전화기의 종료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5）
동회는 퇴근후 정해진 일과처럼 꼭 윤우의 집에 들러 윤우 어머님의 끼니를 확인하고는 했다. 벌써 3일째 윤우의 어머니는 입에 제대로된 음식을 대지 않고 누워만 계셨다.
시체는 부검후 인양되고 내일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장례후엔 화장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동회는 어머님 대신 윤우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윤우의 방으로 들어섰다.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고 동회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다.
왜 자신이 윤우의 짐들을 정리해야하는지.. 왜 여기에는 윤우가 없는지..
감정이 메마른 듯 아무것도 느낄수가 없었다.
하지만 윤우의 방에 들어선 순간 알 수 없는 기분이 울컥 치밀어오른다.
방안에는 윤우가 어머님과 함께 찍은사진이 그리고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었다.
따뜻한 성격의 윤우는 사진을 너무 좋아해서 사진을 찍을때마다 항상 액자에넣어 여기저기 놓여있는 선반에 올려놓고는 했다.
그것들을 보고있자니 참아왔던 무언가가 눈가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진을 품에 꼭 안아보고 주체할수 없는 감정에 북받혀 동회는 그대로 바닥으로 스러졌다.

'윤우야...........윤우야........
헉...........윤..우......야...........
이새끼야! ...........윤우야...........'

사진을 품에 안고 손으로 새어나오는 울음을 막고 동회는 온몸으로 울었다.
소리라도 지를수 있으면 좋으련만 새어나갈수 없는 소리는 온몸을 통해서 밖으로 배출되었다. 바닥에 스러져 몸을 뒤틀며 가슴을 쥐어짜던 동회가 그대로 온몸을 쫙펴고 대자로 누워버렸다.
품에 안았던 사진을 들어올려 바라본 동회가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문 동회가 혀를 움직거리며 깊은 숨을 내쉰다.
몸을 움직여 베란다로 나간 동회가 핸드폰을 꺼내 김태수란 이름을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예..... 거기 압니다........지금 가도록 하죠."

올드 팝송이 흘러나오는 웨스턴풍의 까페에 들어선 동회가 주변을 한번 슥 둘러본후 태주를 발견하고 그앞으로 걸어갔다.
역시 동회를 알아본 태수가 자리에서 몸을 반쯤일으켜 인사를 대신한다.

"아직 부검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일이신지.."

간단한 맥주를 주문하는 동회에게 태수가 편안한 자세로 묻는다.

"부검이야 뭐 별로 ....
그보다 제가 부탁드린 것 가지고 오셨습니까?
확인해볼것이 있습니다.
윤우는 절대로 자살같은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

또다시 아무렇게나 걸쳐입은 점퍼의 안주머니에서 몇장의 사진을 꺼내든 태수는 그것을 뒤집은채로 동회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여전히 동회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태수는 뒤로 편안히 기대있던 몸을 일으키며 의자를 바짝 당겨앉는다.

"사실은 저도 어제 현장에서 정윤우씨의 시신을 보고 이것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어제는 미처 말씀을 못드렸습니다만 이 사진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뭔가 엄청난 비밀이라도 이야기를 하는 듯 태수는 목소리의 톤까지 낮추어가며 동회에게 이야기를 건냈다.
그런 태수의 낮은 음성에 동회는 괜시리 온몸에 스물스물한 소름이 돋아났다.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동회가 탁자에 놓여있는 5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한장한장 사진을 넘겨가며 들여다보던 동회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이.......이게.......도대체......."

믿을수 없다는 듯 동회의 입에서는 연신 흐느낌같은 중얼거림이 튀어나왔다.

"놀라셨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도무지.......
이런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사진만 봐도 정윤우씨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부검을 권해드린겁니다."

계속해서 사진을 바라보던 동회가 탁하는 소리가 나도록 사진을 탁자에 던져버리고는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진속의 윤우는 마치 아주아주 즐거운 꿈을 꾸는 듯 입가에 미소까지 드리운채로 누워있었다. 혹시나 사진의 각도가 잘못되어서 사진이 그렇게 보이는가 해서 다른각도의 사진을 찾아서 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5장의 사진속의 윤우는 모두 행복에 겨워 웃고있는 생전의 친구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윤우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소형 녹음기가 놓여있었다.

"많이 놀라셨겠지만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윤우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바로... 질식...
그리고 그 도구는 ......
바로 정윤우씨의 손이었습니다. "

이미 한껏 커져있던 동회의 눈이 이젠 아주 눈동자까지 튀어나올 듯 모든 혈관이 충혈되어 있었다.

"윤우의 손이라니요...?"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질식의 원인은 바로 정윤우씨가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졸랐기 때문입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는지 동회가 움켜쥔 물컵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꾸만 입이 마르는지 흔들리는 컵을 들어 목을 축인 동회는 넋이 나간 듯 했다.

"그게........가능한가요?
자신이 자신의 목을 조른다는게요.
그것도 이렇게 편안한 모습으로..."

한없이 차분해 보였던 동회였지만 역시 상대는 베테랑 형사의 모습이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심하게 동요하는 동회와는 달리 태수는 여전히 침착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그게 가능하지는 않을겁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위험에대해 몸을 방어하는 인간이 자신의 목을 조르다니..
그것도 이렇게 얼굴에 웃음까지 띄며 그런일을 한다는건 여지껏 상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태수의 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던 동회가 무언가 생각난 듯 탁자에 던져버린 사진을 미친 듯이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들고는 태수를 바라봤다.

"이건 뭐죠? 이건 항상 윤우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녹음기 인데..
이게 왜 옆에 있는거죠?"

동회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태수는 팔짱을 끼고 몸을 제끼며 약간은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도 자신이 사람을 제대로 봤다는 만족감에서 오는 미소이리라.

"역시 제 생각대로 날카로운 분이시군요."

다시금 손을 들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태수가 이번에는 윤우의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재생버튼을 눌러준 태수가 동회에게 이어폰을 내밀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정황상 이것을 녹음후 자살......
죽음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저도 들어보았지만 통 알 수 없는 것들이라서.."

동회는 이어폰을 들어 귀에 꽂았다. 무언가 이것저것 복잡하게 섞인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노래인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언어인 것 같기도 한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였다.

'도대체 .............이건...........'








（6）
태수와 헤어진후 다시 윤우의 집을 찾은 동회는 정리하려 꾸려놓았던 짐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윤우가 새에대한 조사를 하며 끄적거린 메모와 자료들로 가득차 있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깔끔한 성격의 윤우는 그런것들을 항상 순서별로 정리해 놓고는 했다.
윤우가 처음 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대학 1학년때의 자료들에는 온갖 종류의 새에대한 것들이 어지럽게 파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한종류의 새에대한 관심으로 좁혀져 있었다.
자료사진의 날짜로 봐서는 2학년 겨울부터인 것 같았다.
대부분 여러 가지 고니에 대한 자료가 전부였지만 그중에서도 백조라고 불리우는 큰고니에 대한 자료는 절대적이었다.


'관련이 있을까?'

너무나 방대한 양이었으므로 동회는 차마 그것들을 모두 펼쳐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문득 얼마전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 .........성공하면 그걸 꼭 너에게 선물할거야.......너의 행복은 내손안에 있다.....
-.......... 낙동강에 가고있어......주남저수지.......

마치 퍼즐맞추기를 하듯 예전 윤우와의 대화중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골라서 떠올린 동회가 그것들의 연관성을 찾기위해 고민한다.

'성공? ..... 행복?......
낙동강.... 주남저수지.... 그리고 그전의 철원....'


다음날 동회는 그간 해오던 프로젝트의 서류를 회사에 넘기고 며칠간의 특별 휴가를 받았다. 회사를 나서자마자 동회는 목을 조이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버리고는 차에 올랐다.
동회는 무작정 낙동강으로 차를 몰았다.
먹지도 쉬지도 않고 내리 3시간을 차를 몰아 낙동강 강가에 도착한 동회가 그제서야 잠시 눈을 감고 피로를 풀었다.
뭔가 단서가 있을까해서 와봤지만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던 동회가 차에서 내렸다. 새해를 갓넘긴 1월의 강바람은 칼날과 같았다.
입에에 코에서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하얀 입김이 동회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황량하게 몸을 움직이는 갈대밭 너머로 하얀 살얼음속에 앉아있는 몇종류의 새들이 보였다.
하지만 도무지 그것들이 무엇인지 동회로서는 알수가 없었다.
윤우는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있지도 않은 고니를 보러온걸까?
하지만 그것이 윤우의 알 수 없는 죽음과 정말 관련이 있는것인가?
새들이 윤우에게 저주라도 내렸단 말인가? 정말 알수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동회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휴... 그래!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거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

코트의 깃을 올려 바람을 막은 동회의 눈앞으로 갑자기 잠이든 듯 조용하기만 하던 새의 무리들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디에 그 많은 새의 무리들이 숨어있었을까 할정도로 새까맣게 하늘을 덮은 그 모습에 순간 동회는 넋을 잃었다.
한참 그 모습에 정신을 빼앗긴 동회의 귀에 아주 동떨어진 기계음이 들려왔다.
민망할정도로 이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그 소리에 동회는 누가 보기라도 할새라 주머니속의 핸드폰을 꺼내 서둘러 소리를 멈추도록 했다.

"여보세요?"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은 동회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하는데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시끄럽게 하늘로 날아오른 새들의 무리가 저만치 날아가 그 소리가 멀어지자 그때서야 동회는 그가 태수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