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거면 그냥 끝내자. 잘있어. 성격 좀 죽이고"

그 사람은 그렇게 가버리고 나는 멍하니 시계를 쳐다본다.

'벌써 저렇게까지 시간이 됐네. 저녁은 뭘 먹지?'

떠나간 사람은 떠나가라고 그래. 뭐 누구든지 다시 만나겠지.

일어나서 저벅저벅 밖으로 나가보니, 웬걸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세차게 달려나가다보니 어느 식당 앞 처마 밑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 다다랐다.

다행히도 내가 서있을 자리 한 군데는 있어서 잠자코 서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 이...!"란 소리가 뒤쪽에서 들리는 것이다. 돌아보니 키도 크고 나이도 있어보이는 여자가 우산으로 자기 발을 콕콕 찌르는 것이다.

'내가 발을 밟았나?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 여자가 죽을 듯이 혹은 죽일 듯이 나를 내려보자 어쨌든 나는 고개 숙여 사과의 말씀을 올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 이 새끼가!"

찰싹.

이렇게까지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내 고개가 그 여자의 손바닥과 함께 휙 돌아간다. 내 몸은 처마 밖으로 내팽개쳐지고 바닥에 철퍼덕하고 떨어진다.
얼떨떨해하면서 욕이나 실컷 내뱉으려고 돌아보니 그 여자가 이미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우산이 있으면서 왜 여기 서있고 지랄이야?!'

나는 멍청해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로 그대로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짜증나. 너무 짜증나! 배나 채우고 집에 가서 씻고 바로 자자.'

"아줌마, 여기 돼지 하나요!"

시끌벅적한 가게 안에서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아줌마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음식 나르기 바쁘다.

나는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분노를 무진장 실은 채 고성을 질러댔다.

"아줌마!!! 여기 돼지 하나!!!"

갑자기 가게 안이 조용해지고 모두들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주인인 듯한 아줌마가 터벅터벅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한 마디한다.

"나가. 당신같은 인간한텐 안 팔아.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손님이 갑인줄 알아?!"

나는 또 멍청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번엔 도저히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제가 욕을 했나요? 그냥 안 들리시는 것 같아서 크게 말한 것 뿐인데 나가라니요?"

그러자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고 뒤쪽 주방에서 직원 2명이 나에게 다가온다.

"손님. 안 나가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하...이 XX! 진짜!" 나는 책상 옆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도망치듯 식당 밖으로 나왔다.

'오늘 진짜 미쳤네. 이런 날은 빨리 집에 가야 돼.'

약 5분을 더 걸어서 나의 안락한 집으로 직행으로 데려다주는 버스가 오는, 드디어 사람 하나 없는 정류장에 이르렀다.

'드디어 개미 새끼 하나 없네. 꼴보기 싫어. 죄다 꼴보기 싫어.'

그렇게 궁상맞게 비 속의 정류장에서 홀로 서서 기다리다보니 드디어 버스가 왔다. 버스 문이 열리고 올라타니 버스기사가 뭔가 이상하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큰 게 급하신가? 왜 저러지'

버스 안을 둘러보니 이 여름 날에 패딩을 입고 회색 모자를 눌러쓴 채 앉아있는 덩치는 작지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남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나는 순간 내려야되나 생각했지만 그냥 앉았다. 비도 오고 우산도 없는데 어떻게 또 기다려.

그렇게 앉아서 가고 있는데 버스기사가 갑자기 길을 벗어나서 달리기 시작한다.

'뭐야? 뭐야, 이게!' 그 때 내 앞에 있던 남자가 운전석 쪽으로 달려가 버스기사를 두들겨패기 시작한다. 그 때 기사가 뭐라고 소리치면서 버스 뒷문을 재빨리 연다.

"아가씨! 도망ㅊ...!"

퍽!

그 남자가 묵직한 주먹을 크게 휘두르더니 기사는 그대로 엎어져버린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그 남자는 나를 돌아보고 터벅터벅 걸어온다.

"야. 버스 몰줄아냐? 킥킥"

당연히 못 몬다. 이 미친 인간은 도대체 뭘까? 버스 납치라니 도대체 오늘 왜 이러지?

"짱구 굴릴 필요없어. 심심한데 짧게 설명해줄게. 난 이 사회에 불만이 졸라게 많아. 그래서 버스로 나만 졸졸 쫓아다니는 경찰서 한 번 들이받으려고 그랬어~ 근데 저 새끼가 방향을 틀어버리더니 이상한 데로 가려고 하네? 킥킥"

"저...살려 주시면..."

"미쳤어? 내가 살인마로 보여?"

그 남자는 갑자기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주먹을 들어올린다.

"힉...!"

그러더니 또 화가 식었는지 내려버린다. 웃는다. 갑자기 또 웃어재낀다.

"야! 키킥. 재밌는 생각이 났다. 너 일어나서 운적석에 앉아"

"네...?"

"내가 사회부적응자라 그런지 불만이 좀 많아~ 그러니까 네가 그냥 몰고 다 쓸어버려. 차든 사람이든. 킥킥"

"미..친..."

"뭐? 하기 싫어? 그러면 그냥 죽을래? 여기서?"

앉았다. 운적석에 털썩 주저앉는다.

"저 진짜 이거...이렇게 안 돼요...전..."

"레버 내리고 밟아! 처내리고 밟으라고! XX!"

나는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채 처 내리고 처 밟는다. 버스가 처 나가기 시작한다.

종점에 가까운 곳이라 지금은 사람이 없지만 조만간 나온다. 반드시 차든 사람이든 지나간다. 위험하다. 위험해.

"킥킥! 잘모네, 잘몰아!" 남자는 신이 나서 방방 뛰더니 박수까지 친다.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신이 나서 방방 뛰고 박수까지 치는 그 모습이 내 이성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항상 사람들은 날 조롱해왔다. 날 가지고 논다. 날 바보 취급한다.




그래. 진짜 바보처럼 굴어줄까?

나는 버스를 미친듯이 뒤흔들기 시작했다.

"야...이 미친x아! 뭐해! 차라리 사람을 박아! 그렇게 하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훗. 도망? 이젠 도망따윈 치지 않는다. 필사즉생. 죽고자 하면 산다!

그렇게 나는 어느 건물로 버스를 완전히 파괴적으로 들이박아버린다!

쾅! 쨍그랑!

남자는 버스 앞 유리창으로 튕겨져 나가 하늘로 날았는지, 건물 잔해 속으로 기어들어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어찌됐든 살아있다. 이렇게 숨을 쉬니까.

"하...사람 바보 취급하고 말이야!"

나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처럼 당당히 일어나 두 손바닥을 탁탁 털고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크게 외친다!

"사람 바보 취급하지 말란 말이야!!"

그 근처에 있던 떠돌이 개들이 큰 울부짖음을 듣고 후다닥 도망쳐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