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비교는 내 일평생을 괴롭혀왔다. 보통은 또래의 친구들이나 항렬이 같은 친척들과 비교당하는게 대다수겠지만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명문대 출신의 부모님, 학생운동을 넘어 사회운동까지 하신 부모님, 사업이든 공직이든 각자 분야에서 대성을 이루신 부모님과 비교를 당해왔다. 수년간 지금 회사의 대표직을 수행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 분야에서 입지전적이던 인물의 독립, 그로인해 따라온 인맥과 거래처,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결단력과 추진력, 모든것이 완벽했음에도 여유를 찾아 떠난 전 대표의 자리란 사실 가시가 잔뜩 돋힌 시한폭탄과도 같았어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지척에서 마치 강력한 세열수류탄이 터지기 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를 향한 기대들은 가끔 대상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용기를 북돋곤 하는데 그 용기는 거침없는 행보를 응원하며 등떠밀기도 하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면 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다. 외갓집에 얹혀살던 어렸을 적 옆집 학습지 선생님이 나를 보자기에 업고있던 할머니에게 인사치레로 건넨 '영재' 한단어에 시작된 사교육 지옥이 그랬고 부모님의 학벌로 촌지를 요구하던 국민학교 담임선생을 거쳐 진지하게 의대 진학을 권유하던 고3 담임선생님까지 학업에 대한 압박을 친구들과 동네 공터 오락실 피씨방 노래방으로 끝내는 야자 끝나고 나홀로 깡소주의 품으로 도망쳤음에도 어렸을 적 나의 인생은 그 마비의 연속이었다. 그 알 수 없는 기대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그 정점이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였던 것이다. 쏟아지는 기대에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됐던 어린시절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비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를 이룬 사람의 자리에 잠시 앉아 있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바닥에 쳐박힌 후였다.
책임의 여하를 막론하고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들은 비교였다. 전 대표가 복귀하고 나는 그의 수행비서 비슷한 보직으로 복귀했을 때 나보다 항상 한발자국 앞에 굳건히 서서 나아가고 있는 전 대표의 면전에서는 그 누구도 대놓고 내색을 할수는 없었겠으나, 그와 함께 지나친 뒤에선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그 상황을 바로잡아가는 모든 과정이 나에대한 부정이라 느꼈다. 더 잔인한 사실은 그는 전적으로 나빠진 상황의 복구에 대한 생각 뿐이었고, 나에대한 지지도 은퇴 전과 같이 여전했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에는 대단히 많은 자책과 자학, 심지어 낮은수준의 자해가 필요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이제는 기대가 아닌 마취제의 역할로써 술을 찾았다. 실무자들과의 갈등 후에는 '내 주제에'가 머리속 가득 달라붙은 정도였으나, 의욕적으로 대표에게 의견을 냈을 때는 통과가 되어 실행이 되었음에도 머리속엔 아까 그 '내 주제에'가 자기 뒤에 '나대지 마'를 붙여 하루종일 나를 괴롭게 만들며 간신히 간신히 쥐어 짠 의욕이 거세당하고 마는 것이다. 거세를 당한것이 의욕인지 뇌의 전두엽인지 실제 생식기관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그 뭔지 모르겠는게 거세당한 날은 아무리 술을 들이부어도 취기는 커녕 술냄새도 쏘주의 쓴맛도 맵고 달달한 갈비찜의 맛도 느끼지 못하고 어느 순간 의식을 잃었다가 알람소리를 듣고 깨어나는게 그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