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타버린 향초의 끝을 손으로 짓이긴다

언젠간 다 타버릴 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제 아무리 맘에 드는 향초라 한들 끝까지 태우지 못하고 언젠간 구석에 처박힐 뿐일 거라고

사람을 안 만난 지 오래된 주말,
갑작스레 방이 너무 텁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가라앉은 기운을 풀어줄 방도가 있을까 하여 자주가는 꽃 집을 들어가니 새하얗고 커다란 향초를 팔고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네 번, 다섯 번 들렀던 가게였다
별일이 없으면 가고, 주인이 바쁠 때면 그냥 꽃만 구경하고 나와도 충분히 행복했던 그곳

주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그 향초는 은은한 제라늄 향기가 났다. 붉은빛 하얀빛 살짝 섞인 향인지라 어느새 내 마음을 뺏겨 자주 불을 붙혀주는 날이 많아졌다

싱그러운 꽃 냄새가 내 방을 채울 때면 언제는 창문을 열기 싫을 정도로 방이 묵직하게 눌렀다. 그저 향에 취해서인지 꽃향기 퍼지는 동산에 누워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버려 해야하는 일을 다 못 끝낸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날 불꽃이 향초가 녹은 바닥 언저리에 닿을 때에는 향보다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더 태울 수 있는데, 아직 더 견딜 수 있었는데 그 눌러붙은 연기가 점점 하늘을 향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두려울 정도로 무섭게 향초가 사그라들어 방 안에 커튼의 빛만이 새어 들어오면, 가라앉아 방을 채웠던 향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너무 황홀했던 그 향기, 그들은 한번 솟아오르곤
그대로 멀리멀리 아득해진다


다 타버린 향초의 끝을 손으로 짓이긴다. 손에 검댕이 아무리 묻는다 한들 상관없다. 막 불이 붙어있었다는 둥 제 온기를 아직 못 잃었는데도 그래도 짓이겨야 한다.

그 후로도 나는 꽃집을 간다. 그 횟수를 줄인다 한들 멈출 순 없었던 것 같다. 작은 꽃 한두 개들을 사서 화분에 심으면 불 피우듯 피어나는 꽃들 사이에 붉은 제라늄이 보인다. 나는 잠깐 화분을 들어 그 붉은 잎들 사이에 코를 박아본다. 아무리 얼굴을 가까이 대도, 잎을 살짝 뜯어 진물을 내도 그때의 추억은 전혀 올라오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