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이 창조한 아주 특별한 캐릭터가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맨 처음에 쓴 소설의 주인공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지어낸 가짜 썰의 인물일수도 있고, 혹은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무의식이 만들어 낸 무언가일 수도 있을 거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건 몇 년 전부터（세 본 적이 없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 5년 이하） 잊을 만하면 내 꿈에 나타나서 내게 먹을 것을 요구하는 괴생물체이다.

모습은 거대한 갈색 두꺼비.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는 잘 모르지만 못생겼으니 두꺼비일 거라고 생각한다. 펑퍼짐 하고 옆으로 죽 늘어져 있고. 크기는 대략 좌우랑 상하 길이는 1.5m, 높이는 1m정도. 아무튼 처음 보면 놀랄 수밖에 없게 생겼다.

첫 만남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분명 만난 순간 나는 당황하면서도 꿈에서 매번 일기를 적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생생우동인데 일어나면 일기 내용은 흐릿해져서 전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2번 정도는 개꿈이라고 생각해서 꿈에서 깨어나서 다시 적지도 않았고,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오늘 내가 꾼 꿈의 기억에 의존하는 셈이다.

기억나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내가 보자마자 공포에 떨면서 당황했던 것과 두꺼비가 내게 “먹을 것 줘…”라며 말했던 것. 난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내 방의 공책을 뒤졌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썼던 소설의 습작을 5장 정도 두꺼비에게 건넸다. 내가 왜 그것을 두꺼비가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두꺼비는 예상대로 그것을 잘 먹었다.

몇 번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두세 번 정도 두꺼비가 더 왔었다. 만나는 말이 늘수록 느낌은 ‘무서워!’ 보다는 ‘또 왔어요?’ 같은 느낌이 되어 내가 쓴 습작들을 먹을 것으로 드리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오늘 꾼 꿈에서 나온 것은 두꺼비가 아니라 제법 사람처럼 생긴 인물이었다.

모습은 흔히들 저승사자라고 하는 부류와 같은 모습이었다. 검은 옷과 검은 삿갓 그리고 하얀 피부까지 누가 봐도 저승사자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근데 난 그 모습을 처음 보고 두렵지는 않고 ‘두꺼비씨가 또 왔네’ 라는 태평한 생각이나 했다.

실제로 저승사자==두꺼비였다. 난 오늘 꿈에서 저승사자가 지금까지는 두꺼비의 모습으로 왔지만, 아마 일정한 수치를 도달하면서（내가 준 종이들을 일정량 이상 먹었거나, 내가 두꺼비에 갖는 친밀도가 올랐거나） 모습이 바뀐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 날도 저승사자는 먹을 것을 요구했다. 난 역시 방으로 들어가 종이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평소처럼 저승사자를 만난 것에 관한 ‘일기’를 쓰고, 저승사자에게 가장 맛있는 종이를 드리기 위해 ‘고르기’를 들어갔다. 이번에는 공책이 아닌, 미적교과서를 꺼내 뒤적였다. 그렇게 뒤적이고 있는데 저승사자가 갑자기 내 옆으로 왔다. 오늘 고르기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왜 이렇게 늦어?”
“저승사자씨는 어떤 종류의 종이가 제일 먹기 좋아요?”
“아무래도 글씨가 난잡한 쪽이 좋지. 페이지가 꽉 차있으면 또 좋고.”
“제 글씨가 또 난잡하기로는 최고죠.”

그래서 교과서 중 문제가 많이 실려 있는 페이지를 유심해서 보았다. 듬성듬성 풀지 않은 문제들도 많고 글씨는 엉망진창. 내 대학 생활 1년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너 이지 난이도 문제도 다 풀지 않은 거야?”
“네? 이거 꽤 어려운 문제들이예요.”
“책 위에 이지라고 써 있는데?”
“…어흠, 커흠, 흠흠….”
“헛기침하지 말고, 정신 차려.”

저승사자에게 충고 받았다. 하하…. 평소 두꺼비의 모습이 저승사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라면 궁금할 만한 것을 물어봤다.

“저 앞으로 살 날 많이 남았어요?”
“신경 안 써도 돼.”
“다행이네요.”

난 내 맘대로 （신경 안 써도 돼）==（네가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거야）로 해석했다. 그 뒤로도 계속 저승사자가 잔소리를 해서 방에서 나가라고 했고, 될 대로 대란 식으로 문제 페이지 아무데나 찢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편지도 함께 동봉했다.

「저승사자씨에게,
비록 제가 지금은 멍청하고 한심해 보이지만
나중엔 훌륭한 게임개발자가 되어
저승사자님에게 당당해질 수 있게 될게요.
꼭 지켜봐 주세요.」

난 대체 저승사자에게 무엇을 변명하고 있었던 걸까. 꿈에서 깨어나고 나니 ‘난잡한 글씨에 가득 찬 페이지가 좋다’라는 말은 내 습작 이야기였다. 그런데 습작을 주지 않은 이유는 없어서였다. 일 년 동안 내가 습작을 쓰는 양은 현저하게 줄었다. 저승사자에게 줄 게 있을 리도 만무하지. 그래도 저승사자는 내 글을 읽어주는（먹는 거지만）제 1호 독자였는데, 일어나고 보니 너무 막 대하고 응석만 부렸다.

다음에 다시 찾아오면 그땐 습작을 잔뜩 먹여 드릴 것이다. 운이 좋아서 출간 기회라도 생기면 한 권을 통째로 드려야지. 다음에 만날 때까지 글도 열심히 쓰고, 편지에 쓴 내용도 이룰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3줄요약

몇 년 전부터 종이먹은 괴물=저승사자가 내 꿈에 나타남

오늘 꿈에서는 괴물이 아닌 사람모습으로 나타나서 내게 충고하고 감

나도 저승사자에게 편지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