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대나무가 언제 죽는지 알고 계십니까

저는 지난 겨울 제 모친이 홀로 거리를 노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 쌓인 가로등 아래에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제 머리맡에 지어진 작은 멍울을 만지작 거렸습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권고사직을 요구받았다는 모친의 말에
이참에 나는 한번 쉬어보라 말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지치도록 살아왔으니
이제는 집에서 쉬며 다시 일할 체력을 보충하라고

하지만 모친께서 말하기를
만약 대나무에 천정을 막히면
옆으로 뻗어날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한 겨울에 들리는 대나무 이야기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하여 돌아보기 어려웠죠
앙상한 나무에 비할 데 없이 제 푸른 빛 뽐내가는 대나무라니
나는 배움이 적었던 모친을 살짝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당신에게 근로자라는 단어가 무슨 빛깔을 가졌을지 모르니

당신은 그 길로 매일마다 하루마다 근무 시간을 줄여대는 한의원장에게서 어쩔수 없다며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철 지난 드라마를 돌려보는 당신의 모습에 어쩌면 의문만 가득했습니다.
밥 한톨 제대로 씹어먹을 시간이 주어졌는데 당신은 여전히 라면에 밥 조차 말아먹지 않는걸
오히려 김치 하나 말아먹지 않고 잔뜩 매운 라면에 캡사이신만 무진장 뿌려대고 있던 걸

당신은 그 상태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내가 대학으로 떠나던 길, 10년이 넘어 다 늘어난 반팔티와 동생의 프로축구팀 유니폼 바지로 나를 배웅하던 당신의 얼굴에는 돌아가신 외조부의 얼굴이 비췄습니다. 아무리 부모자식간의 관계라도 하늘과 땅에 살아가는 존재가 어련히 같을 수 있었을까요

삶이 잠깐 목졸린듯한 순간에 나는 돌아가는 차 문조차 제대로 닫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몇번을 돌아봤는지 모릅니다

그 이후로 나는 여전히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줄 알았습니다
지난 3년간 나는 당신에게 특별히 도와주지 않아도 홀로 돈을 벌어가며 자라나는 죽순이 되고 싶었습니다.

뻗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제 멈춤을 놓치지 않는 청춘을 구가했습니다

빛나는 푸른 막대기 같이 제 목줄기에 싱싱한 줄기 자국을 남긴 채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 당신이 아직도 불쌍해보이던 지경에

나는 쨍한 여름 날
느닷없이 드리워지는 머리 맡의 멍울에
나는 시곗바늘이 지나는지도 모르게
뻐끔뻐끔 뻐끔뻐끔 입을 옴싹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도, 도망가지 못한 테야
너도, 이제야 깨달은 테야
어두운 방안에 울려퍼지는 고독함에
저물어가지 않는 시곗바늘을 양잿물을 담궈
혓바늘 사이를 살짝 찢었습니다

겉껍질을 벗겨버린 대나무는 제 속을 드러낸 순간
안경 벗은 장님처럼
쉭 쉭 소리를 내며 땅을 긁고는
내가 끌어올린 몸의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고꾸라지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