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가 넘어가는 밤
물기가 가득 찬 맥주잔에는 흰 소주만 얕게 떠 있을 뿐이다.

절망이라는 기억은 알코올이 들어갈수록
쾌락이 되어갈 뿐이었다

한 모금 한 모금이 홀짝여질수록
독하게 향기로운 것이

화장실에 피워놓은 향초처럼
닳으면 닳을수록 그 본연의 구릿함이 올라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냉장고에는 아직도 다 먹지 못한
엄마 손길이 가득 찬 마른반찬과 장조림

상에 올라간 적이 언제인가
항상 끓여대 다 그을려버린 양은냄비는
이미 그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나에게 스스로 줄 연민은 필요 없었다
그저 나 스스로를 꿰어줄 떡밥이 필요했을 뿐

도파민이 흘러나올수록
뇌에서 피가 흐른다

더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만둘 수 없는 이십 대 후반의 삶
다 헐어버린 전공책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자격증 문제집

아래에서 본 하늘은 저렇게 밝구나
내 맥주잔에 살짝 앉아
내 말벗이라도 되어주렴
그럼 잡아먹지는
잡아 먹히지는 않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