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넘어가면서 공기가 바뀌어 이젠 보일러도 틀 지 고민하는 날씨이다. 매미 이야기를 하기엔 늦은 감이 있지만 오늘은 술도 마셨고 컴퓨터 게임도 재미없는 날이라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누군가는 매미 소리에 귀를 아파했지만, 나는 매미 소리가 쨍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정겹게 느껴졌다. 매미 떼가 세상 떠나가라 울기 시작하고 나서야 푸른 나무들의 풍경과 그 소리가 어우러지며 진정으로 여름이 왔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여름에 길을 걷다 보면 '이 나무에 분명 매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귀를 쫑긋 세우고 나무의 줄기를 유심히 살피며 나무 어딘가에서 노래하고 있을 참매미를 찾곤 했다.

여자친구와 뙤약볕을 걷다가 아스팔트 위에 죽어 있는 매미를 보았다. 매미는 뒤집어져 한여름의 그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특유의 세세하게 선이 그어진 배를 드러낸 채 죽어 있었다. 함께 이야기하며 걷던 여자친구는 매미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여자친구는 매미가 싫다고 했다. 그야 징그럽다고 느낄만한 생김새였지만 매미가 싫다는 여자친구와 달리 나는 어딘가 마음이 아프고 불쌍하게 여겨졌다. 매미는 곧 수십 마리의 개미들에 둘러싸여 대순환의 일부가 될 운명이었다. 나는 여자친구의 말에 뜻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말은 나의 마음 한 켠에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맴돌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또 다시 뙤약볕을 걷다가 매미 소리를 듣고 나무에 앉아 있을 매미를 찾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나는 어릴 적 매미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 때는 최고 높이가 5층인 주공 아파트에 살았다. 봄 여름엔 계란 후라이를 닮은 개망초나 보랏빛 제비 꽃들을 꺾거나 민들레 줄기의 유백색 액체를 구경하고, 혹은 왕사마귀나 여치, 운이 좋으면 고추잠자리 따위의 곤충들을 채집하며 노는 것이 최고의 오락이었다. 가을엔 아파트 뒤의 언덕에 올라가 낙엽 썰매를, 겨울엔 눈썰매를 타던 동네였다. 지금처럼 저마다 핸드폰도 없었고, 그저 친구들이 창 밖에서 '아무개야 놀자!'하고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나가서 닭싸움과 얼음땡, 사방치기 등을 하고 놀던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 날, 머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주방 창문의 방충망에 매미가 날아 앉았다. 그리고는 나무에 앉은 것처럼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은 자리를 잡고 울어대니 하여간 집 안 전체에 매미 소리가 울려댔다. 그것은 어린 나에겐 신기한 일이었는데 매 년 그 일이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게, '작년에 왔던 매미가 또 왔구나. 정말 반갑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매 년 찾아오는 매미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 땐 매미 성충의 수명이 2-3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매미가 또 창문에서 울어댈 때면 작년에 왔던 매미가 올해도 용하게 찾아와 울어댄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반갑고 기특할 수가 없었다. 혹여나 너무 가까이 가면 놀라서 그만 도망칠까봐 조심스레 주방 창문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 누나 동생과 서서 매미가 끝까지 우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친구들과 잠자리, 매미 등을 잡아도 항상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모여서 한 마리씩 차례로 놓아 주었다. 오랜 시간 채집 통에 잡혀 있던 탓에 놓아줘도 잘 날아가지 못하는 곤충들을 보면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그 때 일을 떠올리고 나서야 매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나무가 있으면 항상 매미를 찾는 습관이 생긴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여자친구의 말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이유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중한 추억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