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댓비가 쥐죽은듯 천천히 옷깃을 적시던 어느 날에 신은 내게 실패했음을 고할 것이다.


여름에 찾아오는 고독이라는 감정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고독이란 말의 의미보다 더 얕은 잿빛이 만연하게 뿌려진 상태인 듯 합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오전 5시 반 경에 눈을 감고, 제 걸음을 다 한 2시 반에 눈을 뜨면

내 삶은 태양의 성공에 눈을 감고, 그의 몰락에 눈을 뜹니다.

그 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라기보다는, 그저 갑작스럽게 빨래물이 하나 없는 세탁기 속에 들어가 뚜껑을 닫아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던 날이었을 뿐입니다.

거적데기라 부를만한하게 보풀이 잔뜩 일어난 피그먼트 반팔을 입고, 추리닝 반바지를 입은 채
회색 빛 비추는 그 통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니, 들어가기 전에 작은 캡슐세제를 하나 챙겨들었습니다.

당신께 작은 질문을 하나 드려보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친 자들도 많겠지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고양이를 세탁기에 돌렸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순간 느껴지는 역함은 고양이가 느낄 고통도, 인간의 잔혹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주 최선의 편안함의 자유

누구도 알지 못했다면 비난받지 않았을, 아니 비난받는다해도 상관 없겠지요

그 미친듯한 목적없는 환락의 추구와 짙은 바다에 빠진듯한 한계상황 속에 빠진 존재

당신은 이런 편안한 자유와 편안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저 즉자적 존재입니다. 지금 내 입안에 차오르는 거품들과 너무나도 밝은 밖에 비해 옅은 한줄기의 빛 밖에 비추지 않는 이 공간 속에서

당신은 이런 내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나는 이제 이 상태로 밖을 나설 것입니다. 해는 매일마다 찾아오는 몰락조차 뽐내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채, 제 처절하고 비굴하고 역겨운 행태를 보이며 느끼는 기쁨도 허락받지 못한 채 비구름에게 밀려납니다.

내 옷을 젖는 것은 당신의 울음입니까

아니면 그저 물놀이장에서 뿌리는 물 마냥 즐거움의 증표입니까

당신은 대자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은 한없이 펼쳐진 세계 속 지옥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나는 당신에게 그저-바라보인-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