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날카로운 적색이여. 빨간 물감을 적신 채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따라 허공에 붓칠을 한다. 공간을 잘라낼 만큼 붓끝은 날카롭다. 툭 떨어져 내 손안에 들어오면 좋으련만. 난 한 번도 나의 칼질로 인한 수확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도화지 위 몸부림은 무엇일까. 공허함 내지 성급함. 그래도 기특하다고 할 만한 것은 난 아직도 붓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여러 사람에게 보였던 것은 무의미와 부끄러움의 정열적인 사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단어들을 최근에 인지하였고, 탄식하였다. 그런 탄식 속에서도 무료함이 나를 잡아먹을 때는 하늘이 노릇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붓칠을 이어 나간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붓에 묻은 물감을 튀게 하려고 허공에 세게 손짓을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된 적은 없다. 물감이 이미 굳어버렸다거나 되려 내 얼굴에 빨간 물감이 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저 나뭇잎에 나의 물감이 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상에 매달려 있는 수억개의 나뭇잎 중 어떻게 어느 하나라도 내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손에 힘을 뺀 적이 없다. 결국 나는 오늘도 오만스러운 다행으로 다음 시선을 정한다. 그것을 깨닫는 날이면 풀이 죽어 고개가 축 처진다. 그리고 천천히 30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누워 철골과 시멘트와 발바닥에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려고 애쓰다가 자는 것이 나의 하루다.
요즘은 길에서 마주친 사람의 얼굴을 힘들여 기억하고 집에서 그려보고 있다. 집에 도착할 때면 얼굴의 삼분의 일, 아니 첫인상의 흐린 스케치만 기억나지만 기억하려고 한다면 눈을 감으면서 집까지 걸어가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무심히 지나쳐 온 곳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눈, 의미 없는 말로 가득 채워지다 못해 새어 나오는 입을 막으려는 입술, 누가 보더라도 눈 다음으로 시선이 간 나머지 모두가 아는 비밀이 된 날카로운 턱선, 먼지 하나 없는 하얀 물감으로 천천히 발라낸 목까지. 그리고 항상 나의 붓질이 인공적인 향을 갖고 있지 않기를 바라며 머리카락과 코의 윤곽과 턱의 윤곽을 쓸어내리듯 그렸다. 아마 그 사람과는 조금도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처음 보는 얼굴이므로 어떻게 그려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얼굴이 달라졌다고 해도 당연히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며 내가 가지는 만족감은 이목구비를 형용하는 단어들에 있다. 알지 못하는 눈과 코와 입을 나의 단어들로 치환한 뒤 그리므로 이 또한 내가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내 도화지에 올려진 이는 불쾌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아는 얼굴도 아니고 모르는 얼굴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어둡고 깊은 간극 아래로 꾸준히 뛰어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무엇을 찾는지 모르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움직이고 찾아봐도 이 지독한 게임이 언제 끝나는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깨달은 적이 없다. 마른 하늘에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 물감 묻은 나뭇잎을 원해봤자 그것은 나의 보물이 되지 못한다. 장난감을 갖고 싶어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찡그리는 하루의 연속 속에서 나는 점점 길을 잃고 헤맬 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결론은 나의 눈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눈이 아닌 뒤집힌 눈. 뒤집힌 눈을 갖고 태어났다면 나는 붓을 들지도 않았을 테고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내 멋대로 왜곡해 가련하기 짝이 없는 무의미를 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내 앞에서 흩어지고 분해되어 가는 세상을 구역질 참아가며 바라보느니 내가 본 적 없는 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훨씬 나은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두껍지만 텅 빈 과거 속에서 나를 정의하는 낱말들을 적당히 모아가며 나의 부분적인 존재들을 인식하든, 그런 것들을 왜곡해서（왜곡하지 않아도 피차일반이다） 일그러진 눈과 코와 입을 집으로 갖고 와 또 하나의 왜곡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그런 세상은 끊어져 흩뿌려진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여도 이리저리 막 움직인다. 구역질을 참는 것도 습관이 들기 전에 나는 가끔 어쩔수 없이 초상화를 그린다.
초상화가 쌓여가는 나의 방을 보라. 이건 일종의 부당한 축제다. 볼 것도 없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여기 모였다. 누군가 나의 눈과 코와 입을 삐뚤게 그렸다면 그림 속 나는 다른 초상화를 이해하지 못할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그림들은 바깥으로 향하는 눈을 가질 수밖에 없는 참담한 운명을 가졌고 그려질 때부터 그랬으니 자신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초상화를 그린 나를 바라볼 것이다. 어떤 것도 잡아본 적이 없는 손을 가진 사람은 이런 축제를 개최할 자격이 생긴다. 몇 명은 몇 명을 바라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이 참극 사이에서 나는 영원한 보물찾기에 시간을 아깝지 않게 쓸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나의 칼질로 인한 온당한 수확을 해본 적이 없다. 수많은 초상화는 이 축제를 망치려는 주정뱅이의 고함이고 나름대로 나의 불완전한 과거와 합당한 고뇌가 묻어있다. 세상을 인식하려는 나의 허름한 손짓은 역설적으로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어 마침내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 이 부당함을 품에 꼬옥 안고 방구석에서 내일을 생각하노라면 필연적으로 이제는 모두 끝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당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나에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받아들인다면 누군가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모든 것을 끝낼 준비가 되었다는 하나의 신호로서 비로소 눈을 뒤집을 것이다.
좁은 방구석에서 시원한 바람을 잡아 간직하려는 듯한 소망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안다. 내가 잡는 순간 시원해지지 않을뿐더러 나는 항상 관망하는 입장을 취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깨고 싶은 마음에 할 수 있는 나의 최적의 행동들이 몇 가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때면 나는 붓을 쥔 엄지손가락의 손톱으로 검지 손톱을 짓누른다. 피부 위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의 발로가 나의 내적인 고함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때는 몇 달 되지 않았다. 그만큼 놀라운 경험이고 중독성이 강한 짓누름이기에 근 몇 달 동안 나의 검지 손톱은 어느 부분이 움푹 파여있는 정도가 되었다. 내가 기꺼이 만들어 낸 괴롭거나 찡그리거나 체념하거나 슬퍼하거나 당황하는 초상화가 많아질수록 나의 검지 손톱은 더욱 깊게 파여갈 뿐이다. 나는 손톱의 골이 깊어질수록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단번에 알 수 있었지만 도무지 이 골이 채워지는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다시 사람의 얼굴을 더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금은 오늘 밖에서 본 한 사람의 얼굴을 되짚어보며 그리워하였다. 햇살이 꽃가루처럼 날리던 2시의 횡단보도 옆 1층 카페에는 사람이 많았다. 제일 싼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사람들의 머릿수보다 정확히 2배나 더 많은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다니거나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자기를 규정하려는 시선들은 바깥으로 뻗쳐있었고 나는 얼굴들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얼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가지각색이지만 나름대로 조화와 규칙이 존재한다. 이 의견에 반대할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현의 차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넓은 모래사장을 가볍게 휩쓸고 지나가는 파도처럼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빠르게 매만져보았다. 나의 눈동자에 올라오다가 시선을 떼자 다시 부드럽게 가라앉는 얼굴들 사이에서 한 사람만이 나의 파도를 온몸으로 버티며 소리 내어 존재를 외치고 있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나는 그 사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알던 눈이었다. 아니, 알지 못했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그의 눈을 따라 그렸다. 하지만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마치 손에 쥐어진 붓을 용도조차 알지 못하는 아기처럼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감각기관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상과 물리적 실체 사이에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상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처음이다. 눈을 감으면 그려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의 대조를 통해 명확히 이건 나의 인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새롭게 드리워지는 어둠에 수십 번의 칼질을 하였다. 어쩌면 이런 과정이 정상적인 현상이고 내가 그동안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생각이 이렇게까지 뻗어나갈 즈음에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거나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인가 확인하기 위해 바라보았을 것이다. 시선을 마주치자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나는 초상화를 보며 가져왔던 몇 가지 질문들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사람은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어설프게 인간을 따라하는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이와 주변의 공기, 소리, 냄새까지 그를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나는 내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는 계단 도중에 만난 사람이다. 계단에 앉아 턱을 괴고 내가 올라온 수많은 계단을 내려다보는 그의 교만한 자세는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묵직하고 중대한 선언이었다.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나의 가냘픈 시선을 과감히 잘라주고 나의 목적 없는 걸음에 부정을 폭로하고 성찰을 소리치는 날카로운 선언. 나는 그를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것이 구원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앞에 앉았다.
내가 그의 앞에서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상투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상투적인 말로 대화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를 보았다는 것은 그도 내가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을 어떻게 떼야 할지 알지 못한 나머지 나는 그 사람의 눈이 예쁘다고 말하였다. 예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눈과 다른 차원의 눈이었고 설령 예쁘다고 느꼈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얘기하였다. 그는 웃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예쁘다고 말한 것은 분명 그 사람에게 혼란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예쁜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것은 칼이었다. 잘 훈련된 용병이 내지른 날카롭고 민첩한 칼의 끝. 안일한 나는 대처하지 못하고 무방비로 급소를 내어주었다. 그의 칼은 내 몸에 구멍을 뚫어주었고 나는 비로소 내 속에서 부서져 떨어지는 굳은 피를 보았다. 그는 나의 아집을 내 눈으로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집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수확이 없는 과거에 끊임없이 얽매인 것은 내가 만든 갑옷이었고, 아니면 갑옷의 빈틈도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만 분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어떻게 예쁜지 알지 못하니 그것은 예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보다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그가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화폭에 소리친 절규와 과거에 쏟아 낸 시간이 몇 걸음 걷다 보면 보게 되는 내 방의 버젓이 존재하는데 그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내가 얼굴을 보면 항상 능숙하게 기억해서 그리진 않는다. 세상에 백 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면 내가 백 개의 단어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였고 나는 자연스레 얼굴들을 분해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얼굴들을 이루고 있는 공통적인 몇 가지 기본요소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또한 내가 전부 알고 있지 못해도 분해하여 날것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잡아내는 것은 조금은 능숙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러한 개인적인 과정들을 일일이 설명하였다. 그는 예상 밖으로 잠자코 듣기만 하였다. 나의 구구절절한 변명들이 그의 이성의 점막에 고루 퍼져 잘 흡수될 수 있도록 설명하였지만 사실 잘 전달이 되었을지는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나름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계단을 오르던 내가 쭈그려 앉아 있는 그보다 몸을 낮추어 간청하였고, 의사에게 정확하고 고유한 진단을 바라는 환자의 마음으로 쓸데없는 것까지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그의 눈을 여전히 그리진 못하겠다. 그가 날 바라봄으로써 내 안에 발현한 것은 굴욕이 만들어 낸 수치였고 그것만은 명확히 기억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붓을 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곧이어 붓을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뒤따랐다. 나는 손톱을 눌렀다. 손톱에 생긴 틈에 나는 그에게서 받은 모멸감을 보관하듯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담았다. 이런 기억으로 사람을 그려본 적이 없는 것에 놀랐지만 그랬다면 나는 표정들에 짓눌려 하나의 얼굴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흰 캔버스에 내린 푸른 새벽은 참 공허하다. 그 안에서 나는 전체를 위해 부분들을 적재적소에 위치시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 위해선 이목구비의 모든 요소가 내 손안에 있어야 하고 그것은 어쩌면 정복의 또 다른 정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단을 곁들인 섬세한 동작 중에 게으름 따위는 문제가 된다. 내 마음이 늘 난리거나 게을러 손짓이 느려진다면 그것은 반복적인 연상이 원인일 수 있다. 나는 그의 눈을 부수려고 힘주어 내려치고 있었다.
그의 외관에 장악되어 섞이고 흐려진 내 시야로 인해 머릿속이 불쾌해지거나 일종의 부당함을 느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미 내가 그의 앞에 온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일 수 있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았다. 내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실체가 내 안에 원래 존재하여 내가 그를 환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환상이 날 압도하며 살고 있었다거나 나는 그 환상을 평행 피하고 다녔다는 말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의미하는 바가 같은 건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사람을 표현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내가 만들어 냈든 내 속에서 기생하여 나를 갉아 먹든 그가 하는 모든 행동과 눈빛과 말들은 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고 그것을 내가 피하려고 했든 아니든 그런 것은 일절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질문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낡은 가로등을 풍문으로만 듣던 거대한 태양으로 착각하여 날아가다가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거미줄에 걸려 죽음에 적셔진 미래만을 기다리는 작은 날벌레가 되었다. 빈틈을 향해 손과 발을 힘차게 움직여봐도 나는 그의 표정에 압도되어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꺼낸 말은 단지 그리려고 했다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뿐이었다. 그를 그리려는 나의 시도는 보기 좋게 수포로 돌아갔고 나는 그만 자리를 뜨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멍청한 대답은 없었을 것이다. 표현하려는 이유가 그리기 위해서라니, 그렇다면 그리려는 이유를 또 물어볼 것이 아닌가. 나는 더 대답할 수 없어 그것이 나의 존재이유라고, 나는 태생적을 그렇다고 이야기 하였다. 예수의 구원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길 자처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줄곧 느껴왔던 수치와 굴욕 속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해 나의 태생을 들먹이고 더 이상의 질문을 사실상 차단하였다. 내가 느낀 두려움은 내 안에서 일어난 것이면 충분하였다. 그런 것이 외부에서 발견되어 나와 마주한다면 그것은 미지의 두려움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두려움일 것이다. 그런 두려움으로 인해 몸이 덜덜 떨리고 집중이 흐려져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어쨌든 나는 다른 사람의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빌려 나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알고리즘 안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가 광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방법론에 대해 오류의 여지를 말해준다면 내 상념의 깊은 곳 어디에서는 반갑게 맞이하겠지만 결국 나는 무표정으로 일관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 집에 가서 다시 검토해보는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는 이것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집요하게 한 번 더 물어보았다면 구역질 끝에 토해내듯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나에게 일갈하였다. 내가 무표정으로 회피해 왔던 모든 고통과 후회 그리고 오류들은 사실 회피한 것이 아니다. 모두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왔고 그 고약한 냄새가 나의 코까지 올라오면 나는 황급히 다른 사람의 얼굴을 그렸던 것일 수 있다. 그의 침묵은 나의 왜곡에 일갈하였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뒤틀린 얼굴을 그려왔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번에도 나의 원죄를 들먹여서라도 그에게 대답해야 할 의무를 느꼈지만 정작 나에게조차 대답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그가 느낀 왜곡과는 한 차원 더 심한 왜곡이 되었다. 왜곡 속 왜곡, 부정 속 부정, 오답 속 오답이다. 그가 꼬집은 나의 방법론 자체도 ‘부정’이었지만 나는 그 부정 속 왜곡이라는 또 다른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랬던 것일까. 나 자신에게 그렇게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아닌 어떤 소설 속 주인공이 저지른 과오라고 생각하며 한층 냉정해졌다. 손톱이 욱신거렸다. 그런 과오는 의도적이었다. 아니, 의도적인 것 이전에 강제적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미 시간 내서 자리에 앉은 이상 모두 보고 올 것이다. 출생의 선택권을 인지하지 못하고 태어난 모든 인간이 어쨌든 살아가는 이상, 잘못되었다는 나의 수많은 얼굴들은 나의 삶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너덜거리는 손톱을 빼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가 한 질문은 사실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중에 긍정적인 구석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 나의 심리적 보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사실 당연한 것이 될 수 없지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나의 침묵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의 침묵이 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나의 오른쪽 검지 손톱은 폭동을 주도하는 성난 사람처럼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난리를 피웠다. 나는 어서 창가를 바라보았다. 들리지 않았던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카페 안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들렸다.
나는 아직도 그가 썩어빠졌다고 생각하는 방법론을 놓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아직 놓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그런 것이 있다면）을 내가 관측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에 초상화를 그려왔던 과거를 놓아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끝내 그가 앉아 있는 계단 앞에 쭈그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은색으로 빛나는 계단에 나의 눈물이 닿자 눈이 부시게 작은 빛이 맴돌았고 나는 그를 올려보았다. 눈물이 눈가에 가득 고이자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보려면 눈물을 닦아야 했다. 물론 나는 카페에서 뻑뻑한 눈으로 그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커피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에게 토로했다. 같이 뒷산에 가자고. 내가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해답을 줄 수 있다면 같이 뒷산에 가자고. 나는 그에게 손바닥을 싹싹 비비듯 이야기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때의 나조차 엄밀한 나였다. 그렇기에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 말을 듣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꺼이 자리를 벗어났고 나는 그와 뒷산에 올랐다. 항상 혼자서 허공에 붓칠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나로서는 옷을 홀딱 벗은 채 남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내가 앉는 자리로 가서 항상 바라보던 나뭇잎을 그에게 가리켰다. 그리고 칼과 같은 붓칠로 허공을 도려내는 이야기, 나뭇잎을 향해 물감을 던지는 이야기, 그것이 내 얼굴에 묻었던 이야기 등 30분을 혼자서 떠들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열변을 토해냈다.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설득을 하는 것인지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이야기하다가 그를 보았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나에게 어떤 짓을 해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손짓을 기다렸다. 그의 숨결이 내 얼굴에 닿자 그는 손가락으로 내 눈과 코와 입과 귀와 턱의 선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나의 세포들은 피부에 느껴지는 수 개의 선들을 따라 하나하나씩 발광아고 찰나 동안 하얀 파도처럼 폭발했다가 조용히 가라앉기를 반복하였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스며든 손가락의 감촉이 매우 독립적이었다는 것이다. 눈을 천천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무는 해는 강가 아래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바람은 서늘했고 나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를 보내고 천천히 30분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바닥에 누워 철골과 시멘트와 발바닥에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려다가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생각났다. 머릿속은 바깥처럼 어느새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가 풍긴 특유의 향을 맡았다. 분명 주기율표에 존재하지 않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을 그만의 향은 아직 내 얼굴에 묻어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눈과 코와 입과 귀와 턱의 선들 위에 고르게 발라져 살살 흩날리는 어떤 기체. 그가 준 이상한 기체가 싫지 않았지만 나는 황급히 손바닥으로 온 얼굴을 벅벅 문질러댔다. 하지만 이상한 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혼란에 빠졌다. 내가 이상한 향을 지워내기 위해 얼굴을 문지른 것이라면 그 향이 사라진 상태의 나의 얼굴을 위해 손을 바쁘게 움직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난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원한 적조차 없었다. 아니, 그것 자체를 인지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얼굴의 부분들은 하나의 객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만질 수도 있었다. 나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깨져서 텅 비어버린 검지 손톱을 보았다. 언제인지 몰라도 검지 손톱 일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 빠진 걸까. 나는 서둘러 아무 얼굴이나 그렸다. 결국 내가 아는 얼굴 중 하나일 테지만, 당장 그렸어야만 했다. 급한 마음에 스케치도 하지 않고 붓부터 들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어떤 표정으로 그려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오른손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듯 우왕좌왕하며 도화지 위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였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니 어디까지 그려야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점차 얼굴의 형상을 갖춰가고 있는 그림을 보며 점점 안도의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손목이 아파오고 덜덜 떨리는 손가락의 통증이 느껴질 때 나는 모든 걸 멈추고 그림을 보았다. 눈의 균형이 맞지 않았고 눈동자는 없었다. 코는 누구에게 얻어맞은 듯 삐뚤어져 있었고 입꼬리는 좌우 균형조차 맞지 않았다. 입꼬리는 좌우 균형조차 맞지 않았다. 입술의 색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귀는 크기가 제멋대로였고 턱의 선은 지렁이처럼 흐물흐물거렸다. 나는 그래도 그만 그렸다. 거기서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은 완성이었고 나는 도화지 속을 가득 채운 부분들의 애처로운 광란의 축제를 천천히 어루만지듯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자화상일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붓의 손잡이에 약간의 피가 얼룩져 있었다. 붓을 잡은 오른손에 힘을 너무 준 탓에 검지 손톱에서 터져 나온 피였다. 손톱이 욱신거렸지만 나는 드디어 그 비합리를 인정하였다. 아마 도화지 속 이 사람은 아픈 곳이 없을 것이다. 표정을 알 수 없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감이 아직 마르지 않아 군데군데 어설프게 빛나는 얼굴을 보며 나는 얼굴을 갖다 대지 않을 수 없었다. 괴상한 색깔의 입술. 나는 그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고 싶었다. 그가 좁은 평면 위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를 꼭 껴안았을 것이다. 그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동시에 찢어버리고 싶었다. 갈기갈기 찢어서 도화지 조각을 내 눈앞에 천천히 흩날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둘 중 무엇도 하지 못하였다.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림 속 초점 없는 눈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른다. 생긴 것은 그때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잊어버렸다. 뒷산에서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그를 보낸 후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초상화와 내가 마지막으로 그렸던 일그러진 얼굴은 내 방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면 가끔 내 등에 수십개의 불필요한 시선이 꽂히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이것들을 없애고 싶은 생각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 수 없는 것 또한 여전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를 만나고 심적으로 압박을 꽤 받았던 것 같다. 그래도 다른 것을 더 물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 때도 있다. 특히 그에 대한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이 만약 초상화를 그린다면 어떤 얼굴을 그릴 것인지, 당신은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자화상이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왜 그때 그 카페에 있었는지. 이제는 묻지 못하기에 나 스스로 답을 추측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삶이 이렇게 되도록 만들어져 왔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미지의 혼란과 격동하는 시선 그리고 분열하는 자아는 그것이 고통스럽든 아니든 나의 자유로운 의지로 일어난 현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들이 원인이 됐든 결과가 됐든 강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은 내 안에 내재한 행동 또는 생각 발현의 생물학적 기제와 지금까지 보고 느껴왔던 환경의 경험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인간 세상에 지독한 환멸을 느낀다. 분명 그의 질문도 그처럼 비밀스러운 것일 테고 나의 부탁도 애처로운 고뇌 속에 뽑아낸 고독하기 그지없는 결과적 행동이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면서 사는 것이 인간이고 세상인 것은 모두가 알 텐데, 그 비좁은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인력을 주고받는 질량들처럼 나의 방 안에서 내가 모르는 사실과 나의 물감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하는 것을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른다. 모르는 누구는 알고 있는 누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고 이것을 하나의 훈장처럼 여기며 끔찍이 아끼고 그에 알맞은 표정을 가꾼다. 그러니까 나의 물감이 질량들을 더욱 은밀하게 감춰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도화지에 이런 나의 사고를 권유한다면 그는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읽히지 않을 얼굴을 들이밀 것이고 나는 그가 앉아 있는 계단보다 한 칸 아래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사람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난센스 아닌가.
나는 고백한다. 견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사이에 주저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반문해 본 적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를 본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나는 몇 살부터 눈을 바깥으로 돌리며 나를 정의하려 했던 걸까. 나는 그것이 내심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답한 적이 없다. 그것이 두려웠을 때도 있었지만 어쩌면 평범한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겠다. 답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시작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구를 찾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지낸 외계문명처럼 나는 내 안에서 그 의문을 찾기 위해 나를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렸던 모든 얼굴들을 한데 모아 짊어지고 뒷산의 큰 바위가 있는 곳에 올랐다. 낡은 가로등에는 밤 사이에 수많은 날파리가 엉겨붙어 죽어있었다. 결코 내 손에 닿지 않았던 그 나뭇잎에는 서서히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약한 바람이 천천히 불고 있었고 햇볕을 물들인 강은 나에게 잔잔한 파동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린 수십 개의 얼굴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에 나는 그림들을 바위 위에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근처 쓰레기통에서 종이 쪼가리를 집어 들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 나의 얼굴들을 모두 태웠다. 타오르는 화염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위로 솟구쳤고 그것은 본능 그 자체에 대한 살기 어린 호소였다. 위로 올라가려는 수많은 잿가루는 나에게서 도망치듯 바람을 타고 강으로 향했고 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오라. 날카로운 적색이여. 담배 연기가 내 몸속으로 흡수됨과 동시에 타오르는 불길을 보니 내 몸 안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를 보며 느낀 실체와 상 사이의 불일치 또한 이제는 나의 가벼운 장애로 여기게 되었다. 불일치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목적과 실체의 본질 사이에는 서로에게 양보할 수 없는 태생적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결국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일까. 눈을 감는다고 어떤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불길은 거세지고 나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천천히 30분 동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