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에 다가서고 있다. 뒷산에 올라가면 모든 것이 한눈에 보이는 내 고향을 다시 올 수 없겠다고 떠올린 날이 십 년도 훨씬 지났는데, 나는 서른 즈음에 다시 고향을 지난다. 선잠 덕분에 맑아진 눈으로 커튼을 여니 넓은 논과 투박한 밭들이 이방인을 경계하듯 나를 훔쳐보며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강경에 내리기 위해 일어난 사람들의 자리에 9월의 햇살이 스며든다. 평일 오후의 남행 호남선 기차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강경에 내리는 사람은 분류가 쉽다. 고향 친구를 보러 오는 대학생, 가끔 부모를 보러오는 직장인, 무언가를 보고 휴식을 취하러 오는 사람, 그 외. 나는 ‘외’에 해당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은 ‘외’를 더 분류하지 않는다. 세상의 구성요소에 해당하지 않아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이름 없는 모임을 만든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고 알려고 하지 않지만 세상은 그 사람들을 ‘외’라고 칭한다. 머리를 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둥실 떠 있는 구름 그 위를 상상하였다. 그곳에 올라가면 어떤 사람이 무슨 표정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차는 서서히 느려지자 사람들을 흘리고 다시 남쪽으로 출발하였다.

내가 살았던 건물에는 가까운 곳에 학교들이 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상업고등학교가 가까운 거리를 두고 어느 부근에 몰려 있다. 햇살이 비처럼 내리는 오후에도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나의 귀에 닿기 전에 대부분 사그라진다. 대신 나는 그들의 투박한 손과 발과 그곳에서 끊임없이 흩날리는 먼지를 맡는다. 선생과 학생들은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오늘 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천벌을 가진 듯 살아간다. 그들은 아마존의 밀림 한가운데에서 태어났어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늘 강경으로 왔을 것이다. 나는 세상 이곳저곳에 불규칙적으로 그러나 한 방향으로 찍힌 그들의 건조한 발자국을 손끝으로 느껴본 적이 많았다. 사회와 기관이 유일무이한 신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신에게 등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5년간 몸담았던 기관이 나를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찍었고 나는 그 낙인을 마지막으로 뒤돌아선 것이다. 그때 느껴지는 쾌감과 두려움은 내가 어느 곳을 가든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작 내가 찾은 곳은 살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고향이었다. 결국 나는 이곳으로 올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았다.

발밑으로 스러져 가는 선생과 학생들의 비명을 밟으며 나는 어릴 적에 자주 올랐던 뒷산으로 갔다. 사실 ‘산’이라고 칭하기 애매한 높이의 뒷산을 강경의 사람들은 옥녀봉이라고 불렀다. 지상에서 목욕을 하던 옥황상제의 딸 중 한 명이 이곳의 절경에 심취해 하늘로 늦게 올라갔는데, 급하게 옷을 입는 바람에 한쪽 가슴을 드러낸 채 올라갔고 그 모습을 본 옥황상제가 다시 내쫓아 이곳에 버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옥녀가 하늘의 세계에서 제외된 순간을 상상해본다. 오히려 이곳의 절경을 평생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그것은 옥녀에게 소외와 동시에 해방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설화는 옥녀가 슬픔에 잠겨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는데 그것은 소외의 작용이 더욱 컸다는 의미이다. 옥녀는 왜 '외'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짐작건대 두려웠을 것이다. 옥녀는 나와 같은 ‘외’에 속하였지만 그 소속이 나와 옥녀에게 작용한 결과는 정반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이것이 꽤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옥녀가 강경으로 돌아온 나의 표정을 보았다면 어떻게 묘사하였을까. 나는 진정으로 옥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옥녀봉의 계단 입구에 도착하였다. 평생을 땅바닥에 묶여 살았던 나에게 위로 길게 뻗은 계단은 그 자체가 구름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느껴졌다. 다시 한번 강경 전역을 내려다보겠다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강경이 모두 보이는 곳에 올라 내가 올라왔던 길을 찾으며 눈을 돌리는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상대는 자신이 누군지 한참 동안 알려주지 않으며 나를 골리다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였다. 젊을 적 경주에 자리를 잡게 된 나의 옛 친구였다.

그가 나에게 한 이야기는 간단하였다. 뭐하냐는 질문이었고 나는 이보다 더 일반적일 수 없는 질문에 예상을 빗나가는 대답을 하며 나름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나는 지금 ‘외’라고. 너는 나를 그리려는 백지 위에 어떤 붓칠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약 삼십 분동안 서로의 십 년을 담아냈다. 나는 통화를 하는 중에만 담배를 다섯 대를 넘게 피워댔고 내 앞에 외롭게 서 있는 작은 소나무는 나와 친구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가끔 솔잎을 천천히 흔들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한 여자를 이야기하였다. 가족과 서울의 동물원에 놀러 갔는데 그 여자를 보았다고 한다. 친구는 직원이 물개의 몸무게를 재기 위해 먹이로 유도하는 장면을 얼핏 보았는데, 그 직원이 나와 예전에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나와 그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기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짐과 오늘의 회상은 십 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와 만나기 전에 그녀는 나에게 분홍색 립밤을 사준 적이 있었다. 내가 입술이 트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을 적에 그녀는 립밤을 구입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입술에 바르고는 나에게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그저 괜찮다고 말하자 나에게도 좋을 것 같다며 자기가 발랐던 립밤을 건넸고 나는 내 입술 위에 그녀의 입술을 발랐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같은 향을 공유하게 되었다. 흔들리는 솔잎은 그 립밤의 향을 바람에 태워 내 주변에 흩뿌렸다. 내 기억 속 어느 구석에서 오래전에 증발하였겠지만 아마 그녀의 살결과 비슷한 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냐?”
나의 대답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는지 불만 섞인 말을 하였고 나는 적당히 말을 돌렸다.

세상에 깔린 어둠은 시골의 구석까지 곳곳이 스며들었다. 낮이 아쉬웠던 사람들은 집집마다 불을 켜기 시작하였지만 내가 내려가는 계단까지는 닿지 않았다. 예전부터 자주 즐기던 캔맥주 몇 개와 안주거리를 사들고 여인숙으로 갔다. 세탁을 언제 하였는지 감이 오지 않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는 내일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친구와 한 대화를 생각하였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는 그녀를 생각하였다. 심장은 시골 저녁의 고요와 가라앉은 공기에 젖었고 나의 시야를 서울 어느 곳에 있을 그녀에게 던져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녀가 결혼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이혼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나와 같은 '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가 나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면 내가 해야할 말은 내 이름 세 글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알아듣든 아니든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그녀가 스무 살 때의 얼굴이 기억이 났다.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눈과 코와 입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만들어진 기억은 나에게 어떤 생동감을 주었다. 그녀를 만난다면 먼저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녀의 눈은 나와 매우 닮았었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고 나는 그 시선에서 포근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아직도 그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나는 남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일어나 좁은 전신거울로 나를 보았다. 나의 스무 살때는 회상하기 매우 어려웠지만 아마 거울 속에 비친 지금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나는 내일 그녀를 만나러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사랑을 되찾기 위한 발버둥이나 구차한 아쉬움이 아니다. 오히려 여가에 가깝다. 나를 위한 어떤 명찰도 부가 설명도 없지만 여전히 가을을 준비하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몇 조각이 남은 과자를 한쪽으로 치운 후 깜빡거리는 형광등을 껐다. 눈을 감고 누워야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꿈을 꾸었다는 것은 잠을 깊게 자지 못 하였다는 말이라는데, 덕분에 나는 꿈속에서 그녀를 선명하게 보았다. 특히 얼굴을 매우 뚜렷하게 보았다. 하지만 잠에서 깬 이후 바람에 모래가 쓸려가듯 몇 초 동안 빠르게 잊혔고 다시 추상적인 단어들만 손에 남았다. 나는 방금 한 말도 기억 못하는 바보처럼 눈을 두세 번 꿈뻑이고는 서울의 센트럴시티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꽤 들어차 있었지만 들리는 것은 엔진의 규칙적인 소음뿐이었다. 나는 목에 힘을 뺀 채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뒤로 움직이다가 시야를 벗어났고 멈춰있는 것은 나와 햇빛뿐이었다. 햇빛을 반사하며 떠다니는 먼지는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부양하고 있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먼지가 아닌 무언가 들이마신 것처럼 잠에 빠져 있었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번 구체화하고픈 마음에 그 무언가를 깊게 들이마셨다.

사람들이 이미 버스의 가운데에 줄을 지어 서 있을 즈음 눈을 떴다. 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발걸음 소리는 겹치고 겹쳐 하나의 긴 음을 만들었고 나는 지휘자처럼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사람이 많고 적은 것은 둘째치고 모두가 침묵하였다. 나는 이 침묵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다. 눈앞에 있는 수많은 침묵을 구별하다 보면 그들의 몸에서 나와 어딘가와 연결된 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실이 끊어지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나의 배꼽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긴 음에 나의 발걸음을 욱여넣으며 며칠간 지낼 모텔을 찾아갔다. 해는 아직 지지 않았지만 건물들은 어둠이 더욱 어울렸다. 다 낡아가는 간판에는 모기인지 날파리인지 모를 덩어리가 거미줄과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아마 간판에 불이 켜져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골목길을 지나칠 때 나는 땅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몇 명의 노숙자를 보았다.

골목 입구는 더럽다고 생각하였던 도로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지저분하였고 역겨운 악취도 느껴졌다. 골목을 따라 시선을 잡아끄니 길은 어딘가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람조차 골목을 비켜 갔고 햇빛도 들지 않았다. 또한 노숙자들의 눈동자는 어떤 것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마치 다른 시대의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온종일 건조한 고독이 실체화되어 내리는 곳이고 노숙자들은 아무 저항 없이 온몸을 내주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름대로 차려입은 내가 골목 입구에 서서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니 노숙자 몇 명이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마 '외'들이 소리소문없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면 여기일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썩은 냄새와 사시사철 걸쳐 입는 거적때기와 찢어진 신문지 몇 장 밖에 없지만 본질적으로 나와 다를 것이 없다. 각자의 철학, 역경, 분노, 억울함, 체념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외'로 처리된 이들이다. 정류장에서 바쁘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골목에서 나의 인생을 토로할 생각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그들도 스스로 '외'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장 가까운 노숙자에게 다가갔다. 역겨운 냄새가 더 심해졌지만 나는 몸을 낮춰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건 뭐예요?”
나는 그의 옆에 놓인 쇳덩이 같은 것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어라 중얼거렸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나라의 언어를 들은 느낌이었다.
“네?”
내가 못 알아들었다는 식으로 말을 하자 그는 성질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몇 달을 방치해 놓아 썩어버린 음식물 냄새가 진동하였고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화를 낸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옆에 놓인 쇳덩이 같은 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또한 그런 것이 옆에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다만 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조금은 들뜬 기분, 조금은 어색한 태도로 그에게 다가갔고 나는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아마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과 그가 나를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 나는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노숙자에게 갔다. 똑같이 눈높이를 맞추고 말을 걸었다.
“여기는 좀 춥죠?”
그는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아마 자신을 아는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골목에 있는 사람은 서로를 알 수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골목으로 온 것이다. 해는 건물의 그림자에 막혀서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그들에게 적합한 장소이고 이곳을 발견하였을 때 그들은 각기 제 방법으로 기뻐했을 것이다. 이곳은 고독을 씹어 먹고 분노를 배설하는 사람들의 안식처이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과거 어딘가에 두고 온 것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약한 신음을 내었다.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전에는 어디에 계셨었어요?”
그는 이 골목에서 홀로 태어나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땅에 붙은 시선으로 대답하였다. 숙명을 묵인하는 시대를 이들보다 초연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이렇다 할 대답은 듣지 못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싶었다. ‘외’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육성으로 듣고 싶었다. 육성으로 듣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감각을 동원해서라도 알고 싶었다. 나 또한 ‘외’지만 그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의 문제다. 사람 인（人）은 사람 두 명이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이라는데 이들의 사람 인은 과연 어떨지, ‘외’로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나도 이곳에 올 수밖에 없는지 의문이었고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두려움으로 발현하였다. 나는 스스로 ‘외’라고 자칭하면서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서울까지 왔다. 옥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였다.

나는 더 걸어가서 신문지 위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질문하였다.
“옆에 있는 건 뭐예요?”
누워 있는 사람은 자기 머리 위에 있는 검은색 형체를 보지도 않고 말하였다.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없는 거야.”
“언제부터 없었나요?”
“네가 오기 일주일 전부터.”
“왜 없어졌나요?”
“이런 것에 이유 따지며 살지 마. 그런 게 어딨어.”
나는 다시 한번 검은색 형체를 보았다. 죽어버린 강아지였다. 몸집은 아주 작았다. 시체 위에는 파리 몇 마리와 수십 마리의 구더기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골목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의 여러 진원지 중 하나임을 확신하였다. 하수구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었다.
“키우던 개였나요?”
“난 아무것도 키우지 않아. 그냥 같이 있었을 뿐이야.”
“오늘은 뭘 하셨나요?”
“오늘은 무릎이 아팠어. 다친 것도 아니고 쑤시는 것도 아닌데 왜 아픈지 잘 모르겠단 말이야. 오전에는 그걸 생각해야 했어.”
그는 자신의 오른쪽 무릎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오후는요?”
“나에게 오는 것을 생각하고 있지.”
“여기로요? 여긴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아요.”
“개가 한 마리 있으면 좋겠네… 넌 왜 여길 온 거야?”
그는 매번 중얼거리는 듯이 대답하다가 나에게 물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요. 그 사람하고 연락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 사람을 보러 왔어요.”
“어디 있는데?”
“동물원에서 일하고 있다는데… 그것밖에 모르겠네요.”
“동물원 이름이라도 알아야지.”
“물개가 있는 곳일 거예요.”
“그럼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딘지 알고 계세요?”
“몇 군데 되지 않을 거야. 알려줄까?”
“네.”
“그럼 내 부탁을 들어줘.”
“뭔데요?”
“개를 한 마리 구해줘. 이것과 비슷한 개로.”
그는 ‘이것’이라고 말하면서 손짓은 물론 눈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시체를 보았다. 파리와 구더기는 그새 더 불어났고 어떻게 생겼었는지 무슨 종이었는지 무늬는 어땠는지조차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시체를 얼마간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무 썩어서 알 수가 없어요. 어떻게 비슷한 개요?”
“내가 같이 가줄게.”
물개가 있는 동물원이 한두 군데는 아니겠지만 찾는 것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선뜻 도움을 자처하는 모습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다른 노숙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을 찾는다는 나의 도움은 그의 역린을 건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주변에 있을 존재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를 세상이 생각하는 노숙자의 틀 안에 끼워 넣을 수 없었다.

그는 며칠을 누워 있던 사람처럼 어깨와 허리와 다리를 힘을 주어 비틀더니 내 옆에 나란히 섰다. 나보다 키가 조금 작았으며 오랫동안 먹지 못하였는지 팔다리가 가늘었다. 나뭇가지가 하나씩 움직이듯 그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와 함께 골목을 빠져나오자 나는 그제서야 시간을 인지하였다. 해는 다 저물어가고 있었고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피부를 타고 흘렀다. 그가 어디서 개를 찾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지만 그는 그곳이 어디인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머뭇거리지 않고 나아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것과 비슷한 개가 있는 곳이지. 내가 말했잖아?”
“애견샵이요?”
“애… 뭐?”
그는 ‘애견샵’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처럼 말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최대한 많이 듣고 싶은 마음에 애견샵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였다.
“한자와 영어를 합친 단어예요. 사랑 애 그리고 개 견, 샵은 영어로 뭘 파는 곳이고요.”
“사랑을 파는 곳을 말하는 거야?”
“정확히는 사랑을 매개할 것을 파는 것이죠. 사랑은 개를 사고 당신이 주면 되고요.”
“그래?”
그는 땅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며 말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애견샵으로 안내하였다. 수십 개의 철창 속에 진열된 작은 개들은 모두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조금 살피며 말하였다.
“어때요? 비슷한 개가 있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개를 본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내가 오기 전부터 죽어있었다고 했잖아요.”
“이 개들을 사면 나에게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안 그럴 것이 뻔하잖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그에게 약간 화를 내었다.
“그건 당신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렸죠. 그걸 나에게 물으면 안 돼요. 설마 돈 때문에 그래요?”
“난 개한테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시간만 낭비했어. 따라와.”
“네. 그런데 제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서울은 이미 밤이 되었고 흐린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들을 대신해 건물들은 가지각색의 화려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나는 빛에 떠밀려가듯이 가는 곳마다 빛들과 멀어지고 있었다. 어둡고 좁은 길목을 지나고 아스팔트가 끝나자 흙길을 따라 걸었다. 나는 혹시 서울을 벗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어디를 가는 거예요?”
“도살장. 아마 거기에 있을 거야.”
“애견샵하고 뭐가 다른 건데요? 혹시 개를 훔치게요?”
“훔치는 게 아니야. 그건 내가 가진다는 소리잖아. 사람들은 뭘 가지려 할 때 의사를 물어보지 않아. 못 가질 것 같으면 세뇌를 시켜서라도 가지려고 하잖아. 난 아무것도 키우지 않아.”
“만약 개가 당신에게 오지 않으면요?”
“애견샵의 개가 원하는 것은 철창에서 벗어나는 거야. 철창 밖의 세상이면 어디든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곧 죽을 개는 목숨을 원해. 그러면 나에게 가끔 오겠지. 그거면 돼.”
아마 그는 사람도 이와 같이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파도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 파도가 얼마나 거세든 얼마나 차갑든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그 파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는 않는다. 또한 그는 이것을 다룰 줄 안다. 저녁부터 밤까지 우리는 대화를 하는 도중에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생각인지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있듯이 멈추지 않고 걸었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조금씩 주저하며 걸었다. 나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였다.
“이제 조용히 해.”
그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주머니에서 긴 철사를 꺼냈다. 그의 왼쪽 손가락은 5개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철사를 좌우로 구부리며 순식간에 열쇠를 만들었다. 분명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것이 어떤 자물쇠에 맞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의 신중한 눈빛에 질문을 포기하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여기 있어. 개를 던지면 네가 받아.”
그는 철제 대문 사이에 귀를 몇 초간 대고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를 붙잡고 물어봤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비슷한 개를 어떻게 찾아요?”
그는 내 말을 무시한 채 2m 정도 되어 보이는 담장을 바라보며 뒷걸음을 몇 번 하더니 벽의 중간중간을 밟고 담장을 완벽히 뛰어넘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그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담장 너머로 착지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이제 나는 담장 위를 바라보며 그의 행동들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아마 도살장 안에서도 그의 행동은 잘 훈련된 자객처럼 완전무결할 것이다. 20초 정도 되는 시간이 지나자 지저분하고 작은 개 한 마리가 담장 위로 솟아오르더니 정확히 나의 품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그도 담장을 뛰어넘었다. 그는 나에게 던져진 개를 신경도 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작은 개는 나의 품에서 숨만 헐떡이는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방금 무엇을 훔친 것인지 생각하였다. 그 생각은 냄새나는 골목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어졌다.

도살장까지 몇 분을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골목길로 돌아가는 길은 어쩐지 더 짧아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를 듣고 싶었다.
“당신은 어쩌다 이곳으로 온 거예요?”
“아마 네가 온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정리해고 당했어요. 나름대로 충성을 바쳤다고 생각했는데.”
“충성 같은 소리하네.”
그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였다. 그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신은요?”
“정리해고는 아니지만 짤린 건 똑같아.”
“왜요?”
앞만 보고 걷던 그는 나를 잠깐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 품에 있는 작은 개도 이유가 궁금했는지 때 묻은 귀를 잠깐 움직였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어. 비도 오고 술을 마시고 있었거든. 그런데 시비가 붙었어. 이유는 나도 모르겠네. 잘 넘어가고 싶었는데 그 새끼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팼는데 불구가 됐어. 그걸로 빵에 들어가고 회사에서도 나오게 됐지.”
“그게 여기 온 이유는 아니잖아요.”
“맞아. 문제는 빵에 있을 때였어. 사람들이 같잖은 군대놀이를 하더라고. 그게 마음에 안 들었지. 왜들 그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은 건지, 원. 그래서 마찰이 있었어. 거기서 별 지랄을 하다가 좀 다쳤지. 내가 성한 몸은 아니야. 눈도 한 짝 안 보이고, 이거 봐, 손가락.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그의 눈을 많이 보았다고 생각하였지만 아마 그런 척만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펼친 왼손을 보았다. 중지와 약지 부분이 비어있었다.
“생각해보면 난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 수도 있어. 사실 회사에서도 모두 날 투명 인간 취급했거든. 처음 본 사람들이 나에게 형식적인 말을 거는 것이 싫었어. 그런 것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지만 배우질 못하고 내 맘대로 살았지."
그는 도살장에서 충분히 멀어졌는지 걷는 속도를 낮추며 천천히 이야기하였다. 나는 그와 같은 ‘외’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달랐다. 나는 ‘외’에서 벗어나려고 적당한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그는 아니다. 길가에 있는 가로등이 그의 얼굴을 순간 비추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멈춰있을 그의 왼눈을 보았다. 분명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이 없나요?”
“그 사람이 나에게 오는 걸로 충분해. 가까이 두고 싶다고 나에게 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오고 싶으면 오겠지.”
“이 개처럼요?”
“그래.”

나와 그는 어느새 골목에 도착하였다. 깊은 밤이 흩뿌린 어둠은 길가를 가득 메웠고 골목 입구는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른 노숙자들은 깨어 있는 것인지 자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항상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개를 내려놔.”
땅에 발을 붙인 개는 처음 본 골목이 어색했는지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신문지 위에 올라가 누웠다.
“수고했어.”
“그럼 이제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사람을 찾아 달라고 했었지?”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나에게 말하였다.
“내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는 못해.”
“내일 가도 돼요.”
“두세 군데로 추려지는데, 그곳을 전부 같이 가주라고? 이름은 알려줄게.”
“어디요?”
“행복동물원, 푸른꿈동물원, 햇살동물원. 여기서 제일 가까운 푸른꿈동물원은 택시를 타면 3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할 거야. 먼저 가서 그 근처에 있든지 해.”
내가 할 것은 그곳에 가서 하루를 묵는 것이다. 그도 나에게 떠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은 이제 뭘 할 건가요?”
“무릎이 왜 아픈지 모르겠어. 그걸 생각해야 해.”
“아까 잘 뛰어다녔잖아요. 별것 아닐 거예요. 그리고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하지. 나에게 오는 것도 구했으니.”
“그런 것 말고요. 이제 어떻게 살 거냐고요. 계속 여기서 지내게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대신 나를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어두운 골목이 더욱 어두워지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간섭을 경계하는 동시에 나와의 거리도 경계하는 눈빛이다. 그와 나는 같은 처지지만 행동들이 달랐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문득 나는 여기의 사람들과 입고 있는 옷조차 다른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나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지는 못하였다. 정말 그는 여기에 계속 있을 생각인가? 있는 듯 없는 듯 팔자 좋게 자고 있는 개를 보았다. 개는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한 번씩 골목길에 들러 그의 옆을 지키다가 다시 움직일 것이다.
"알겠어요. 갈게요."
그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처음 그를 보았을 때처럼 옆으로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숙자들과 골목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를 뒤로 하고 도로로 향하였다. 여전히 등 뒤에 누워 있을 그를 상상하였다. 그리고 그가 알려준 동물원의 이름을 상기하였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간 곳에 그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와의 재회를 상상하였다. 무슨 말을 해도 어색하겠지만 서로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추상적인 그녀의 얼굴을 나름대로 구체화하려는 찰나에 뒤통수에 차가운 충격이 느껴졌다. 충격은 금방 뜨거워질 즈음에 다시 한번 느껴졌다. 누군가 쇳덩이 같은 것으로 나를 내려친 것이 틀림없다.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몸에 힘이 빠진 나머지 앞으로 고꾸라졌다. 흐릿해진 나의 시야에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 그가 누구여도 상관없으니 발목이라도 잡아야 했다. 그리고 나의 머리에 다시 충격이 가해졌다. 끊임없이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피는 끈적한 만큼 따뜻하였다. 누군가 나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였지만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휴대폰과 지갑을 빼가고 나를 옮겨 어딘가에 내려놓았다. 살집이 없는 메마른 팔이었다. 그는 나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과 바꾸어 입었다. 나의 눈앞에는 지저분한 거적때기와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알 수 없는 소음에 잠이 깬 개는 네 발로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개는 고개를 돌리더니 그를 따라 떠나갔다. 조용한 골목은 발걸음 소리만 잠시 들렸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굳을 새도 없이 골목의 어둠과 끊임없이 섞였다. 달빛도 보이지 않았고 졸음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