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작성하였던 에세이로 현재에는 와 닿지 않거나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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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의 혈소판


헌혈은 내게 어렵지 않은 선행이며, 맛있는 간식도 제공되고, 건강상태까지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왔다. 그런데 망할 코로나가 발발하면서 감염걱정으로 헌혈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여주에는 헌혈의 집이 따로 없다. 대신 헌혈 버스가 지역을 방문해 헌혈을 진행한다. 그런데 헌혈버스가 방문하는 날은 평일이어서 서울로 출근을 하던 내게는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내가 자주 이용하던 사무실 근처 헌혈의 집은 어느 날 운영을 종료한다는 문자와 함께 문을 닫아 버려 나의 헌혈도 문이 닫히는 듯 했다.

그러던 중 내게 헌혈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일이 생겼다. 바로 아내 친구의 조카가 혈소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침 같은 혈액형이었던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원주’, 또는 퇴근길에 들를 수 있는 ‘대학로’에 위치한 헌혈의 집을 열심히 오가며 헌혈을 했더랬다. 다행히 당시에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혼자 있을 아내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었고, 혈소판은 2주마다 헌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최대한 헌혈을 많이 하려고 어플을 이용해 서둘러 예약을 하고 문진도 미리 하며 절차를 최소화 했다.

참고로 혈소판 헌혈 시에는 어느 정도의 식단조절이 필요하다. 혈소판 헌혈 전에는 밀가루나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채식위주의 식단으로 먹어야 기름이 끼지 않은 깨끗한 혈소판을 추출할 수 있는데, 식단조절이 따로 필요 없는 전혈만 해오던 나는 이런 사실을 아예 몰랐다. 그래서 처음 혈소판 헌혈을 하러가는 당일 아침에도 고기를 먹고 말았다.

처음 혈소판 수치를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헌혈의 집에서는 헌혈자인 나를 환대해 주었고, 수치가 상당히 좋다는 이야기에 내심 뿌듯함도 느꼈다. 지정헌혈이었기 때문에 수혈을 받을 아이의 정보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혈소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미리 뽑았던 내 피에서 기름의 함유량이 많게 나온 것이다. 나의 문진을 진행해주신 선생님과 옆에서 혈액의 상태를 검사해주신 선생님의 의견이 충돌했다. 결국 나를 문진해주신 선생님께서 이정도면 괜찮다고 강행하셨고 나는 무사히 헌혈을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정헌혈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고, 망할 코로나로 헌혈이 너무 감소한 탓에 한 사람의 헌혈도 소중히 여겨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후에 따로 확인해본 결과 그래도 수치상으로 수혈이 가능해서 나의 혈소판은 전달이 잘 되었다고 했다. 이후 나는 혈소판 헌혈을 예약하고 나면 전날부터 식단을 철저히 관리했고 늘 무사히 헌혈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나고 며칠 후 다음 헌혈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아이의 소식이 전해졌다.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의 혈소판이 더 건강했다면 그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지쳐있는 아내에게 그런 감정이 전달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애써 눈물을 참았다.

나와 아내가 우리아기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중에 ‘요게벳의 노래’라는 찬양이 있다. 이 노래는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이 ‘바로’라는 애굽（이집트）왕의 칙령-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기 위해 갓 태어난 히브리의 사내아이를 모두 강물에 던져 죽이고 여자아이만 살려두도록 하는-으로부터 모세를 지키기 위해 갈대상자에 모세를 담아 나일강가에 띄워 보낸 심경을 노래한 것이다. 그 심경이 성경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어있지는 않지만 그 가사가 너무도 애틋하여 감동적인 노래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난 후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내 혈소판을 수혈 받던 아이와 아이 부모님의 마음이 떠올라 한참을 울컥해했다. 특히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에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라는 가사가 깊이 와 닿았는데 직접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아빠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한참 다독이며 노래를 불러 주곤 했다.

이러한 상황과 두 아들의 육아를 핑계 삼아 결국 지금까지 수개월째 헌혈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이 글을 계기로 다시 여유가 된다면 헌혈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된 그 아이가 하늘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