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카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행동했다. 이유를 표현하자면 하겠지만, 굳이 밖으로 꺼내긴 싫었다. 분명 남들은 ‘겨우 그런 걸 가지고?’라는 반응을 꺼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건 너무나 컸다.
나는 이를 악물고 어느 웹 사이트에 접속했다. 뉴스에서만 듣던 것이었다. 의원들이 회의장에 앉아서 이런 것 때문에 우리나라가 안된다느니, 그런 건 궤변일 뿐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득권의 욕심 때문이다, 하며 싸우는 그것. 나는 마우스를 붙잡고 버튼을 딸깍거렸다. 아주 미미한 울림이 내 신경을 파고들어 정곡을 찔러온다. 아프다. 아프기에 난...
죽어야 해.
새로운 인터넷 창이 모니터 중앙에서부터 활짝 펴진다. 배너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작은 글자로 조그맣게 적힌 것들만이 보였다.
[장난 사절, X월 OO일 W시경에 F공원에서 모입니다.]
나는 그대로 가입 버튼을 눌렀다. 딸깍.
자살카페였다. ‘인터넷 소모임’이라고 불리는 웹 카페. 자살을 하기 위한 모임. 죽기 위한 모임. 나는 ‘인사글’이라 이름붙여진 단 하나뿐인 게시판에다 글을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자살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딱히 밝히지 않겠습니다.
나는 약간의 후련함을 느끼며 의자에 반쯤 누운 듯한 자세로 기대 있었다. 전자음이 컴퓨터에서 울렸다. 1분만에 새 덧글이 달렸다.
‘저희도 이유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모임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해 주세요.’
내일이었다. 딱 맞춰 왔다. 나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잠을 청했다. 컴퓨터는 켜 둔 채로. 내일이면 영원한 잠 속으로 들어갈 테지만, 나는 잠들었다. 죽음 뒤에 일어날 일은 모르기에. 나는 나 나름대로의 휴식을 택한 것이다.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악몽을 꾸지 않은 것이.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눈을 감고, 다시 뜨니 아침이었다. 악몽을 꾸고 금방 잊어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기억에 남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나는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죽음을 앞에 둔 이의 심정이란, 참으로 미묘했다. 모든 게 새로웠다. 매일 지겹도록 본 인파들, 멀리 달리는 기차도.
F공원에 도착했다. 몇 명이 와 있었다. 카페에는 다섯 명이 F에서 모인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네 번째였다. 벤치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앉아 있던 이들도, 모두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다섯 번째 사람을 기다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빛과 어둠. 씁쓸하게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하, 웃음을 지으려 입술을 씰룩거려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얼굴 자체가 마비된 듯 했다.
발소리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이었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우습게도 그제서야 알아챘다. 그 사람은 여자였다. 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땅만 보고 걸었던 것이다. 가장 끝에 앉은 중년 남자가 자살 동기를 말해보자고 했다. 웃겼다. 내가 죽으려고 하는 이유는 아주 초라했다. 발톱의 때만큼도 못한 것이었다. 진짜로.
내 차례가 오자, 난 얼버무렸다. 수치심으로 가득 차서,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아, 전... 이유마저 초라하네요. 여러분들에 비해서요. 그래도 총각딱지 한 번 못 떼고 죽는 건 슬프네요. 하하.”
다섯 번째로 온 여자가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그 한, 제가 풀어드릴 수도 있죠.”
일렁였다. 땅이, 하늘이. 나는 일어섰다.
“정말요?”
그녀와 나는 달렸다.
세상 참 웃기다.
남은 세 사람이 크게 욕을 내뱉었다. 너희들끼리 죽어. 난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어느 모텔까지 닿았다. 그대로 격렬한 무언가가 이루어졌다. 서로의 땀이 섞이고, 더 깊숙이 존재하는 무언가와, 과거와 현재의 이질적인 그 어떤 심정마저도 마구 뒤섞였다.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말했다.
“아, 할 말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일말의 웃음을 띈 채로.
“제 자살 동기가 뭔지 아세요?”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 와서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요? 이제 됐어요. 하나의 추억거리로 삼고 열심히 살아가야죠. 뭐.”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중요해요. 많이.”
다섯 번째 여자는 입을 오므리고 한 글자씩 내뱉었다. 씨발.
“나. 는. 에. 이. 즈. 예. 요. 수. 고. 하. 세.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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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 시우리님의 '자살카페의 그녀' 란 만화에 살을 좀 붙여 봤습니다 ㅎㅎ
여러분 자살의 반댓말은 살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