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작성하였던 에세이로 현재에는 와 닿지 않거나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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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온 마을’의 위력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아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나는 최근에 실제로 온 마을이 ‘한 아이’에게 집중하는 순간을 체험했는데, 그 힘에 가히 압도당하고야 말았다.

5일장인 동네 시장의 장날이었다. 나와 아내는 시장에서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아내는 출근을 해야 했기에 나 혼자 장을 보고 귀가할 계획이었다. 둘째는 내 품에서 우리와 함께였다. 그렇게 우리는 몇 가지 구매목록을 정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계획대로였다. 그런데 밖에서는 잘 안겨있던 아기가 실내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니 아빠의 뱃살에 눌려 갑갑했는지（아빠가 잘못했네...） 울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전 야외에서 그렇게 우는 둘째를 품에 안고 재운 적이 있었기에 우선 아이를 안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출근을 해야 하는 아내가 먼저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식당 유리창을 사이에 둔 채 눈빛으로 안타까움과 위로를 건넸다.（당시 우리의 눈빛은 여느 멜로영화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애잔해보였을 것이다.）
아이는 아내가 어느 정도 든든히 먹은 시점에 잠이 들었다. 나는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움직이며 둘째를 안은 채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결국 시간이 되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서둘러 음식을 먹고 빠르게 장을 본 후 얼른 귀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서둘러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는데, 갑자기 움직임이 커졌던 탓이었을까? 아이가 깨고 만 것이다. 잠에서 깨어 다시 품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안은 채 남은 음식을 마저 입에 우겨넣고는 얼른 식당을 빠져나왔다. 마침 분유를 먹을 텀이 되었던 둘째는 눈물로 배고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분유가 차에 있어 즉시 아이를 먹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복세긋살적인 측면에서） 어차피 차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니 그 길에 지나치는 상점들에서 정말 필요한 한두 가지만 재빨리 사면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울음이 언어이자 표현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는 상황에서도 너무 당황하지 않고 적당한 여유를 가지는 것이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과 여러 이론 및 조언 등을 통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의 패턴과 우는 이유는 파악이 완료되었고, 어차피 차로 가지 않는 이상 해결방법이 없는 상태였기에 （지극히 나 자신의 심적인 여유만을 고려하여） 내려진 결론이었다. （이 결론이 내게 그런 엄청난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
허나 둘째는 잠에서 깬 짜증에 허기까지 겹치면서 시작부터 찢어지는 울음을 터뜨렸다. 이 소리는 곧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누구 아들인지 목청이...） 그러자 주변 할머니들과 어머님들이 내게 다가와 조언（이라 쓰고 ‘혼구녕’이라 읽어야할 듯）을 시작하셨다. “왜 이렇게 더운데 아기를 품에 꼬옥 안고 있느냐? 애기가 더워서 그러는 것이다.”는 의견부터 “애기가 엄마냄새가 그리워서 그렇다. 엄마가 있어야 하는데...”, “애기가 배가 고픈가 보다.” 등 여러 조언（그래! 조언이다!）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고, 나는 그 시선과 조언들에 등 떠밀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런 내 등 뒤로 어떤 어머님은 “아빠가 애기 보는 게 어설프다.”고 한마디를 더하셨다. 결국 나는 1년 정도 육아휴직을 하고, 아들 둘을 전담하다시피 키우면서도 아직 육아에 ‘어설픈’ 아빠가 되었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이의 울음-징징거리는-소리가 짜증을 유발시키는 소리 중에서도 1위라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온 신경이 집중됐을 수밖에...）
이때에도 나는 마스크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당시 나는 주목을 받게 된데 대한 당황스러움과 더위에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그 표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나의 인성이 만천하에 공개될 뻔한 순간이었다. 그랬다면 그 순간 주변에 계셨던 어르신들께 두고두고 너무나도 죄송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둘째를 위한 말씀들이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간신히 차에 도착한 나는 둘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였다. 예상대로 둘째는 배가 부르고 상쾌해진 기분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지만 나는 넋이 빠져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귀가하였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줄기에 땀이...）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는 혼자서도 너무너무 잘하니 아무 참견 마시라.’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부부도 주변의 큰 도움들에 힘입어 지금 이렇게나마 아이들을 키워올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을 통해서도 마을 분들이 힘을 합쳐 아이를 귀하게 여겨주심을 크게 느꼈고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 속에는 이와 같이 주변의 아이를 향한 도움뿐만 아니라, 아이가 마을 안에서 성장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교류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대한 중요성도 담겨 있다. 공동체에서 상호작용하며 성장한 개인은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할 줄 아는, 인성이 바른 사람이 될 확률이 높을 테니 말이다.
나는 주변에서 “나중에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가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하고는 한다. 이 안에는 인성이 바르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며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학창시절 약강강약-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의 ‘비열하고 지질한 놈’이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고 쾌락을 쫓으며 자라왔다. 그런 이기적이었던 모습들이 약 2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가장 후회되고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나의 과거들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하는 행동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고, 또한 결코 옳지 않은 행동이다. 또한 이 과거들은 두고두고 큰 죄책감으로 남게 되고 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아마 아내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전했거나 더 한 놈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르고 옳은 사람으로 성장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온 마을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아들들아, 너희와 너희 엄마는 아빠를 항상 바른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준단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을 잘 간직하고 성장해다오. 고맙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