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작성하였던 에세이로 현재에는 와 닿지 않거나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4. 반주（飯酒）


마스크와 모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가끔 늦잠（서울 거주자들과 비교하자면 늦잠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시간대였지만）을 자거나 했을 때는 이도 닦지 못한 채 출근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이럴 때 마스크는 내게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을 부여해주었다. （계속 이런 지저분한 이야기만 하려는 것은 아니고）이처럼 입을 포함해 얼굴의 반 정도를 가려주는 마스크 덕분에 내가 마음 편하게 누렸던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반주（飯酒）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게다가 얼굴도 금방 붉어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전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기분전환용이자 오후를 버틸 힘을 충전하는 용도로 점심시간에 반주를 즐겼다.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반주를 할 때에는 보통 1병, 또는 인원이 많을 경우 2병까지도 시켰다. 혼자 마시는 것은 아니었기에 많이 마셔도 2~3잔이었다. 헌데 코로나로 점심시간이 세분화되면서 혼자 점심을 먹는 경우가 발생했고, 시키는 병수는 똑같이 1병이어도 마실 입이 줄게 되니 결국 내가 마시는 양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아싸!）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마시는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 아니라（아닌거 확실해?） 반주 후 붉어진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 아무리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마신다 하더라도 업무를 봐야하는 사무실에 얼굴이 붉어진 채 앉아 있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가려주었고, 게다가 모자까지 쓰고 다닌 덕에 얼굴의 노출 면적을 더욱 줄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알코올 섭취로 붉어진 얼굴을 잘 가린 상태에서 오후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마스크가 냄새까지 막아주지는 못했기에 점심식사 후에는 꼭 충분히 양치질을 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래도 업무 중에는 칸막이가 설치된 책상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며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으니 나름 완전범죄라 자평（自評）하겠다.
그런데 그 일탈의 즐거움에 너무 취했던 것일까? 내가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발음’이었다. 좀 급하게 마신 날이나 피곤한 상태에서 마신 날은 취기가 평소보다 많이 올라와 발음이 온전하지 않은 경우들이 발생했다. 물론 업무 진행에 차질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아닌거 확실하냐고.） 내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노력을 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온전치 못한 발음이 나올 때가 있었다. 아마 나의 상담을 받았던 분들 중 예민하신 분들은 눈치를 채셨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저나 여러분, 너무 스트레스 받고 살지 맙시다! 제가 소소한 일탈을 즐겼던 것처럼, 스트레스가 쌓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꼭 풀어내고 살자고요. 우리 모두 힘냅시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