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작성하였던 에세이로 현재에는 와 닿지 않거나 공감되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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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세긋살


아내와 나는 ‘복세긋살 파’다. 복세긋살이란 ‘복잡한 세상 느긋하게 살자.’라는 의미로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을 응용하여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말이다. 때문에 이런 성향의 우리 부부는 무엇인가를 할 때 시간적 여유와 더불어 심적인 여유（그 기준은 순전히 주관적인）까지 고민하고 느긋하게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때문에’ ‘일부러’ 뭔가를 하게 된다면,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 조바심에 압박감을 느끼고 만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2021년 1월, 둘째가 태어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째의 출산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병원을 찾았을 당시, 담당 의사선생님의 “아직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에 유도분만 일정을 잡았다. 첫째도 예정일이 열흘이나 지난 후 유도분만으로 출산했었기에 우리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그즈음 자연분만이 훨씬 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그게 좀 아쉬웠다.
자연분만 예정일 아침에도 아내의 컨디션은 평소와 다름없었기에 우리는 유도분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결국 마음을 놓아버린 채 외출을 계획했다.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려던 찰나, 화장실을 다녀온 아내가 손에 휴지뭉치를 들고 나와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이슬’-출산 전 혈액이 섞여 나오는 분비물-같은데?”
휴지에는 정말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점액이 묻어있었다. 이슬이 비친다고 바로 출산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날이 날인지라 우리는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아내는 첫째를 데리고 낮잠을 자러 들어갔다가 함께 잠이 들었고 나는 혼자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잘 자던 아내가 방에서 비몽사몽 걸어 나왔다.
“자기야, 나 양수 터졌나 봐.”
흥건하게 젖은 이불을 확인한 우리는 허둥지둥 출산가방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고, 하필 그날 그리도 흩날리던 눈보라를 헤치며 저녁시간 즈음 도착했다. 3~4시간 진통을 겪은 뒤 자정을 넘긴 시간, 둘째는 예정일을 하루 넘기고 자연분만으로 태어나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내가 입원실로 옮기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에야 주변에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정일을 미리 공유하고, 출산기미가 보여 병원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주변에 소식을 전해 태어날 아이의 조부모 및 친척들이 병원에서 함께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 등이 익숙한 풍경이었음에도 우리는 심적인 여유가 우선이라 생각해 내린 조치였다. 유도분만으로 출산했던 첫째의 소식을 알린 시기도 비슷했었기에 처제는 이러한 조카들의 출산을 두고 ‘야반도주 하듯’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시국에 맞춰 병원 측에도 신설된 규칙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보호자 1인 외 면회금지’였다. 그리고 이 보호자는 ‘1인’이면 출입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입원 시 등록한 보호자’만 해당됐다.
우리의 가족들은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등 지방 곳곳에 흩어져있다. 면회가 가능했다면 멀리서 아이를 낳은 우리 ‘때문에’ ‘일부러’ 오셨을 것이다. 우리는 이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퇴원 후 집에서, 그러니까 어느 정도 심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손님을 맞고 싶어 했는데, 코로나로 신설된 규칙덕분에 우리는 나름 편안한 병원생활을 누린 후, 원하던 대로 나름 여유롭게 손님들을 맞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엄마는 위대하더군요. 엄지 척! 그리고 출산 하자마자 엄마에게 안겨보지도 못하고, 아크릴 벽 사이로 보호자를 마주했던 코로나 베이비들도 건강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