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탁자는 내가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줘. 얼마나 명확해. 근데 나는 뭘까.

요즘 머리를 떠나지 않는 한 문장이 있다. '나는 왜 사는 걸까?'

일에 치여 사는 요즘 더욱더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이 빌어먹을 세상 속에서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오늘도 쓸데없이 면도를 깨끗이 하고 낡아빠진 볼보를 타고 시장 바닥에 허름하게 놓여진 칼국수집으로 갔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국수면을 뽑고 만두소를 만드는, 아주 예전부터 어머니에게 배운대로 행하는 기계적인 일일 뿐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 칼국수집을 물려주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식당 이모와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지 않고 일로만 대화를 나눌 뿐. 이 분도 나와 성격이 비슷하다.

달이 뜨면 조용히 정리를 하고 늦게까지 가게에 남아 뒷정리를 한 뒤 거리로 나선다.

집 주변에 어지럽게 흩뿌려진 쓰레기들을 아침에 나올 때 미리 가져온 검정 비닐 봉지 안으로 처밀어넣는다.

왜 쓰레기를 줍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은 없다. 거리의 청결을 위해? 헛소리다.

돈도 없으면서 매달 고아원에 기부는 왜 하냐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헛소리다.

그렇게 눈뜬 장님 혹은 나사 빠진 기계처럼 살다가 여름을 맞고 장마가 다가왔다.

차라리 다 휩쓸려 나갔으면. 근데 이 정도로 휩쓸려 나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이 작은 주택집에서 꽤나 가까운 산이 억수같은 장대비로 무너져내렸다.

길거리가 온통 진흙과 죽어버린 나무로 뒤덮였다.

이거야 원, 이것들은 비닐봉지에 담을 수도 없잖아.

이럴거면 애초에 그딴 짓은 하지나 말껄.

슈퍼마켓에서 소주나 한 병 사러 갔더니 어린아이가 옆에서 자기만한 우유를 2개나 들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오른손에 있는 게 더 싸고 맛있어."라고 한마디 했더니

이거야 원,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그냥 전부 내려놓고 잽싸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야 사람 기분나쁘게. 이럴거면 면도는 왜 한걸까.

그날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새벽녘에 같이 일하는 식당 이모에게 아주 짧은 문장 하나를 보냈다.

"이모님, 그 식당. 이모님 가지세요."

그리고 이 좁디좁은 방 안에 어울리지 않게 창가에 치렁치렁 길게도 매달려있는 커튼에

라이터를 틱하고 켰다. 커튼은 해방됐다는 듯이 잽싸게 타오르더니 천장과 가구들에 불길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뭐야, 시체가 없어?". 불을 끄러온 소방대원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뜬금없는 문자에 급하게 전화를 걸었더니 좀체 받지를 않아

뭔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아주 예전에 알려준 집주소로 와보았더니

화염이 이미 휩쓸고 지나간 주택은 새까맣게 타버린 숯검댕이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 시체가 없단다.

"불지르고 사라진 거야?...여기 살던 인간 뭐 어떤 인간인지 알아봐"

어떤 인간이냐고. 6년을 같이 일했어도 나도 몰랐는데 당신들이 알아낼 수 있을까.

그 엄마에 그 자식이라고. 그렇게 또 귀신같이 사라져버렸네.

둘이 비슷한 구석이 또 있긴 있었지.

틈만 나면 멍하니 탁자를 보곤 했지 둘다 똑같이.

미친거지 미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