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스무 살에 들어온 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혼란스러운 시기들이 있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행동해야지라는 수동적인 형태의 삶은 첫 여름방학에 들어온 순간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멈추어버렸다. 그렇게 조그만 노력이라도 해보자고 결정한 그다음 해의 겨울에는 한 손에 자격증 공부 책을 쥐었다. 시작이 첫걸음이라는 떠돌이 격언이 나를 축복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짧은 시간 동안 함께해왔던 외조부의 장례식장 앞에서 소복히 쌓인 눈 속에 차갑게 박혀버렸다.

이제 아무것도 시작하기 두려워, 성인이란 게 이런 걸까, 시작하려는 순간에 찾아오는 절망은 도망가고 싶어하는 나의 어린 시절 계곡 물가에서 폭포가 무섭다며 헤엄치던 그 시절에서부터 함께해와 다시 쏟아지는 시간과 현실들 속에 끝없는 강물을 따라가게 만들어버린다.

그 끝에 다가가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은 건 어느새 20대가 절반은 넘어가려는 그 높은 턱에 다가서서는 다른 친구들이 손에 깃발 하나씩 쥐고 있는 순간에 나는 내 양손에 기름기조차 없이 푸석푸석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버리곤 어쩐지 처량해진다.

다시 돌아온 겨울의 아침에 내 손에 남은 건 이름뿐인 졸업장뿐인지라 이런 현실이 두려워 눈물짓고 또 도망치려 해도 눈물마저 다 말라버렸단 것을 당신은 깨달아버렸다.

오랜 세월 동안 내 옆에 함께해준다던 친구들은 자신의 삶을 찾아 진작 떠나버렸고 가장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친구는 결국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책 한 권과 졸업장뿐이었단 것을 깨닫는다.

연락이 닿지 않는 모든 친구는 전부 서북쪽의 도시들을 향해 떠나버렸고 나는 아직 잠들기에 너무 굶주려왔음을 깨달아버린다.

새벽이 넘어가는데도 아직도 잠에 못 드는 이유는 아직 굶주렸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솔직하게 원해왔던 것을 해보고 싶어진다. 잠에 들었으면, 꿈을 꾸고 싶다

Let Me Sleep / Starving

One11Twenty

[you're not lost but starving instead]

당신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굶주린 것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