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떠할까? 여자로서의 매력은 하나도 없는 아줌마겠지. 사랑한 적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동안 받았던 편지 구석구석에 담겨진 세월의 흔적들을 보며 사랑한 적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어. 그거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온 건지 모르겠다.

편지를 제작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편하네. 있는 이야기 다 해주고, 원하는 말 해주니까 편지를 써주네. 당신 참 편하게 준 거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참 소중하게도 편지들을 마음에 간직했었어. 편지 제작 업체에 와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편지를 내놓아보니 그들에게는 하나의 작업에 불과한 종이쪼가리더라. 그리고 당신도 이제 아무것도 아닌 고깃덩어리야.

마음은 이미 비웠으면서 굳이 붙잡아두려고 했던 이유가 뭐니? 남들의 시선, 아영이와 수영이 아니면 가정은 남겨두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니? 진작에 그만두었으면 좋잖아. 어차피 아플거였는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보니 너무 아프다. 여기까지만 하자.





"아주머니 여기요."
꼬마는 편지를 내밀었다.
"기분이 이상하구나. 내 마음은 분명한데.."
편지를 제작하기에 앞서 그녀를 충분히 인터뷰했다. 보통 이 작업은 유선 또는 화상으로 했었는데 직접 대면하여 진행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편지를 제작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기보다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상담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인 꼬마도 같이 옆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꼬마는 영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꼬마가 자료를 받아 글을 쓰지 않고 직접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면 어떠할지 궁금했었다. 아주머니와의 긴 인터뷰를 마치고 꼬마에게 물었다.

"꼬마야 이야기가 재미없었니?"
"네."
"그랬구나. 그래도 편지 쓰는데 직접 들으면 도움이 더 되지 않아?"
"무슨 말인지도 몰라요."
"응?"
"저 아주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고요."
"그런데 편지는 어떻게 쓸거야?"
"정리해서 주잖아요. 그거 보고 쓰는 거예요."
"응? 우리가 주는 자료는 이해가 가니?"
"아뇨. 나와 있는대로 쓰면 되요."
"그럼 지금 저 아주머니가 어떤 기분인지 모르는거야?"
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질문을 받는 것이 짜증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자 편지가 완성되었다.

"눈 앞에서 직접 보기 더 믿기지가 않네요. 어떻게 저 어린 꼬마가 이런 편지를 써낼 수 있을까요?"
미선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말임돠. 저 아주머니의 감성을 그대로 녹여내고 있슴더. 프로그램이 준 자료를 말임돠, 그대로 인간화 시키는데 탁월함더."





"저희는 2가지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단지 편지 내용만 주는 서비스와 편지지에 적어주고 포장까지 하는 서비스가 있죠. 어떻게 해드릴까요?"
"편지는 제가 쓰겠습니다. 편지까지 써주시면 정말 제 편지가 아닐 듯 싶네요. 남편은... 필체를 보니.. 남편도 편지는 본인이 썼네요. 예전에 연애할 때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아서 글씨를 알거든요."
"네.. 그러하시군요.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문을 나서던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보며
"이 편지 제 것이 맞겠죠?"
라고 작게 되물으며 나갔다.

"저 아주머니 남편에게 편지를 줄까?"
"왠지 못 줄 거 같아요."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꼬마가 말했다.
"왜요? 제가 쓴 편지가 별로예요?"
"그런건 아니란다. 넌 참 잘 썼어!"
"근데 왜요?"
"그건 말이야. 음.."
"꼬마야 그건 어려운 질문을 하지 말그라. 그나저나 꼬마 이름이 뭔둥?"
"지윤."
"지윤?"
"응 윤지윤이야."
"그러쿠마. 이름 이쁘다."
민기씨와 지윤이는 벌써 친해져있었다.

"지윤이 어머니는 언제 올까요?"
선미씨가 물었다.
"글쎄.. 아무래도 꽤 오래 지윤이와 함께 있어야될 지도 모르겠군. 퇴근 후에는 어쩜담."
"제가 보살피겠슴돠! 지윤이는 흥미로와요!"
지윤이도 벌써 민기씨 등 뒤로 가서 숨어있었다.
"참 저 커플 흥미로운 커플이군요. 그래요. 당분간 그렇게 지냅시다."





집에 돌아와 지윤이를 떠올랐다.
'신기한 꼬마야.'
그리고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이 편지 제 것이 맞겠죠?'
우리는 단지 의뢰자의 마음을 그대로 편지로 제작해주는 업체다. 분명히 그 편지는 아주머니의 편지가 맞다.

"넌 마지막까지 이러는구나."
"뭐가?"
나는 흥분을 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너의 편지맞니?"
"그럼 내가 쓴 건데 내 편지지 누구거니?"
"그래. 알았어. 그만하자."

감 등 뒤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