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우유는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았다.
"네가 정말 딸기우유니?"
그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거야? 집은 어디니?"
그 아이는 나이를 많이 봐도 채 10살정도밖에 되보이지 않았다.
"버스타고 왔어요."
"집이 강릉일리는 없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흔든다.
"거 참.."
"뭔 호구조사가 그리 깁네까. 꼬마야 그동안 편지를 다 네가 썼누?"
"응."

아이에게 프로그램이 뽑은 하나의 편지틀을 주었다. 아이는 편지틀을 쑥 훑어보더니 바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30대 남편이 아내에게 쓰는 편지, 그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한 편지를 완성했다.

"믿기지 않아.. 대단한데.."
"그러게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음.. 일단 아이 부모님께 연락부터 해봐야겠어."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덩치가 크고 머리가 붕뜬 민기씨가 그 아이와 놀아주는 사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을 통해 아이의 부모님과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는데 그 아이의 부모는 잘 들을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 아이를 돌려보내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만을 했다. 화가나서 데리고 가라고 했더니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그 아이의 부모에게 문자메세지로 이 곳의 주소를 남긴 후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한참을 민기씨와 함께 있던 꼬마는 멀뚱히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뽑는다는 그거.. 시켜줘요."
"무슨 일인줄은 아니?"
고개를 흔들었다.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하니?"
그러자 그 아이는 무표정하게 구석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난처하네.."
"사장님 이 꼬마는 천재임돠. 어차피 당분간 여기있을 거 같은데 좀 시켜봄 어떻숨?"
"그래요. 그럼 민기씨가 관리해요."
그도 마치 그러고 싶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쭉 뻗었다.
"하모!"





사무실 문이 또 열리고, 한 중년 여인이 서있었다.
'혹시 아이 어머니인가..'
"여기가 발록구니맞죠?"
"네~ 그렇습니다."
선미씨는 방긋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이 편지들좀 봐봐요. 여기서 만든 거 맞나요?"
아주머니는 한 뭉터니의 편지 다발을 내밀었다. 눈썹이 약간 올라간 것을 비추어보아 흥분된 상태였다. 선미씨는 그 편지들을 입력해보았다. 결과 우리업체 편지는 아니었다.

"저희가 제작한 것은 아니네요.."
"제작이라고요? 그렇지 편지를 제작하는 거겠죠. 그런데 거짓말하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왜 거짓말을 해요.."
"이렇게 돈 버니까 좋은가요? 이 거짓부렁터니들을 파니까 좋냐고요? 여기가 가장 큰 업체 맞잖아."
"저기 손님. 저희가 가장 큰 업체라고해서 반드시 저희가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억지잖아요."
"당신은 뭔데?"
"사장입니다."
"오호 그래요? 이 사기꾼들아. 이게 다 뭐냐고. 흐흐흑."
아주머니는 오열을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남편놈이 매일같이 바람을 피는 거 다 알았다구. 그래도 가끔씩 주는 이 편지를 보며 위로받았었어. 거짓말인줄 알았지만 진실로 믿고 싶을만큼 마음에 와 닿았거든. 그런데 알아버렸어. 편지를 써주는 업체가 있다는 걸. 너네처럼 말이야."
그녀는 편지 몇 개를 집어들더니 공중으로 던졌다. 그러자 꼬마는 그것들을 집더니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여기꺼는 아니예요."
아주머니는 울다말고 어이없다는 듯이 꼬마를 바라봤다.
"넌 뭐니?"
"여기는 편지를 쓰기 전에 써야되는 사람의 성격, 말투, 쓰고 싶은 내용을 알려주는데.. 이상해요 이 편지들은."
꼬마의 말을 듣는 순간 번뜩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도 미친듯이 몇 개를 집어들어 읽어보았다. 하지만 꼬마와의 말과는 달리 성격, 말투는 일관성이 있었다. 마치 한 사람이 쓴 편지같았다. 그리고 충분히 아주머니의 남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꼬마야 뭐가 이상해?"
"한 사람이 쓴 거는 맞아요.. 그런데 편지마다 달라요. 이건 많이 미안해하고, 저건 이만큼 미안해하고. 그럴 수 없어요. 항상 같아야 되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 그리고 우리 업체가 아닌 이유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거니?"
나와 꼬마의 대화를 듣던 아주머니는 화가 갈아앉았는지 꼬마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면서 미안해하고 있어요. 남편이 아닌 자기가. 이 편지는 그래서 더 미안해하는 거예요. 여기는 그냥 정해주는대로 그대로 쓰잖아요."
"민기씨 이 편지들 분석해봐. 그냥 읽어서는 모르겠어."





"철저하게 프로그램에 의한 편지가 써져야합니다. 작가의 감정은 절대 개입이 되서는 안되요. 작가는 단지 프로그램의 언어를 사람이 쓴 글처럼 해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동료들에게 강하게 말했다.
"편지가 인간미를 추구하는 것을 노려서 제작을 하는건데 그 방식으로해서 과연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까요?"
"절대적으로 계산적인 사람이 오히려 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죠. 어설픈 감정이 오히려 작품을 망치는 길이예요. 그래서 우리도 이제 모든 편지의 제작을 프로그램을 통해서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다양한 표정을 내비추었다. 불신, 염려, 혐오, 의심 등. 그리고 감은 슬픔을.





"사장님 꼬마말이 맞아요. 이 편지들은 작가가 미안해하고 있었어요."
"어느 업체지?"
"알 수가 없죠. 이건 업체에서 의뢰를 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상 작가에 의해 독자적으로 씌여진 거니까요."
"저기요 사장."
아주머니가 끼어들었다.
"정말 이 편지를 쓴 사람, 나한테 미안해하고 있나요?"
"네.. 적어도 감정을 넣고 있네요. 그 감정이 어떤 미안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합니다."
"내 남편의 평상시 언행과 편지는 달랐어요. 그리고 편지를 믿고 싶었어요. 몇 번 바람의 흔적을 잡고 따졌을 때 남편은 편지를 통해 해명을 했죠. 그 인간을 보면 솟구던 화도 편지를 보면 갈아앉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이제 난 어떻게 합니까?"
고개를 푹 숙이는 그녀를 보니 답답했다.

꼬마가 말했다.

"남편에게 편지를 써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