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주섬주섬 근처에 핸드폰을 찾았다.
새벽 두 시.
근 몇 달간 계속 반복되고 있다.

매번 같은 꿈은 아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꿈 속에서 나는 예전의 그들 중 한 명과 함께 있었다.
예전, 십년 전 무렵의 그들과.



다시 잠이 들었다 창가를 투영하는 햇빛에 눈을 비비었다.
아침 여섯 시.
영 개운치가 않다.

회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부지런한 학생, 회사가 멀리 있어 일찍 나온 듯한 회사원, 길가 자판에서 토스트를 파는 앳되 보이는 아가씨를 지나쳐 걷다 보면 이내 곧 회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회사에는 언제나 나보다 일찍 출근해 있는 직원이 있었다.

"선미씨 좋은 아침."
언제나 같은 인사.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그녀도 항상 같은 인사. 그리고 매번 다른 이어지는 인사말.
"오늘도 피곤해보이시네요."
"응. 통 잠을 깊이 못자고 매번 꿈을 꾸네요."
"무슨 고민 있으세요?"
"글쎄.. 집에 가면 영 고민이 없는게 고민이야. 아무 것도 생각할 게 없잖아. 하하. 여기서는 고민거리가 넘쳐나는데 말이죠."
"댁에 가시면 저녁내내 숨어있다가 잠이 들면 꿈에서 무의식적으로 고민들이 튀어나오는거 아니예요?"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가. 오늘부터는 집에가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야겠군요."
"회사 생각 말고 다른 생각을 하셔야 할텐데요."
"음.. 왠지 노총각 구박하는 말투입니다?"
"티가 났나요? 헤헤."

그녀가 아침에 언제 출근하는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5분을 먼저 오는 지, 30분을 먼저 오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첫 출근부터 항상 그래왔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십년 전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사업은 상당히 번창했다.
사업체의 장은 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예전의 그들
모두가 사장이라고 하는 것이 올바랐다.
처음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체를 만든 것은 나였지만
우리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다같이
나날이 사업을 번창시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답을 구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만든 문제의 정답.

그 때 나는 마치 공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정답을 결론내렸다. 하지만 예전의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다른 답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고, 고개를 내저으며 조금더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으며 답을 구하는 것을 피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나의 답에 동의하지만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모두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정답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스틱 두 개, 물은 반 잔만큼 탄 커피를 한 잔 마시고나니 직원들이 한 두명씩 출근을 한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편히 쉬셨습니까?"
사무실은 아담해 서로 얼굴을 다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뜬 머리인 민기씨가 도착하면서 모두 출근을 완료하였다.
"좋은 아침이더."
정체를 알 수 없는 민기씨의 사투리였다.

"더 레터쓰의 추격이 무섭네요. 이번에 또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이건 좀 획기적인데요."
"그러게 말이임더. 이건 우리가 생각해본적이 없는 거구마잉."
"우리는 우리만의 서비스가 있는 거잖아요. 너무 신경들 쓰지 맙시다."
쿨하게 말했다.

"그래도 사장님 요즘 더 레터쓰는 마치 우리를 다 아는 것 같아요. 조심스러운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 회사 패턴을 상당부분 파악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음.."

가상 편지 시장은 날이 갈수록 시장규모가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발록구니가 있었고, 발록구니의 성장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업체들의 추격과 성장도 무서웠다. 더 레터쓰는 그 중 하나였고, 감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감..'

"민기씨."
"하모."
"편지 분석팀을 확충해야 할까요?"
사무실 안에 직원은 나까지 총 10명이었다. 굳이 밝히지면 글을 쓰고, 편지를 꾸미고, 고객을 관리하는 회사와 계약한 프리랜서들은 많았다. 하지만 굳이 직원은 많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중 편지 분석팀은 민기씨 한 명이었다. 나름 천재 프로그래머.

"프로그램은 저 혼자로도 충분하잖슴더."
"그렇죠. 프로그램 말고 그냥 글만 읽고 분석하는 팀원 어때요?"
"사장님도 아시겠지마아 이미 프로그램이 사람을 넘은 지는 오래임다. 상대 업체도 결국은 프로그램이 글의 테두리를 만들어주면 사람이 묘사만 할 뿐입니더. 그런데 굳이 프로그램 말고 수동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필요함네까?"
"민기씨 조금 흥분한 거 같은데요."
"아닙니더."

그의 말이 맞았다. 예전 수동 방식을 지나 완전히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편지를 쓴 지는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그 방식을 채택한 것은 나였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선미씨 말해보세요."
"민기씨 말씀처럼 의미가 없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정 기간동안 편지 분석팀원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요즘 들어서 프로그램이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른 직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뭡니깡?"
민기씨는 마치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 부정당한 느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는 지금의 편지 알고리즘을 구축한 천재였다.
"자자. 내가 알고 싶은 것도 그겁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 제안한 거예요. 이건 어때요 민기씨. 일정기간만 운영해봅십다."
"대신 조건이 있슴더."
"뭐죠?"
"6개월만 운영해보고 그 동안 의미있는 성과가 없으면 바로 철회해야합니더. 프로그램과 사람의 방식은 절대 협업될 수 없슴돠. 그건 사장님이 더 잘아자슴. 괜한 혼선이 올 수 있슴다."
"그래요 그럼. 새로운 직원 채용 공고는 바로 내도록 하죠. 더 레터쓰 뿐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이 심상치 않으니까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감.. 무엇을 알아낸거냐..'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 한 덩어리가 있었다. 마치 예전에 우리가 바라보던 그 하늘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