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당신의 말마따나 퍽 서러워질 때가 있어요.
오늘처럼 당신의 이름이 생각나는 그런 날이에요.

오늘 내가 아는 당신의 이름을 모두 꺼내 뒤적여 봤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당신이 궁금했어요.
아직까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당신을 제대로 알고 있긴 했었는지, 당신을 만나던 순간에도, 헤어지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생각했어요.
나쁘게 말하자면 당신을 의심했어요. 내 원래 성격이 이렇다지만, 당신의 성격도 그러했으니까.
지금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가여워 하기보단 역겨워 할지도 몰라요.
오래전 당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어떤 글을 썼는지도 궁금해요.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 움츠린 당신을 보고 있으면 무작정 안고 싶어졌어요. 움츠린 당신이 내 품에 딱 맞을 거 같단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게 당신의 콤플렉스였다고 할지라도, 제겐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움츠린 몸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고난과 고뇌, 그리고 고독을 안아주고 싶었어요.
품에 안긴 당신의 귓속에 당신의 이름을 되뇌며 사랑한다고, 계속해서 말해주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을 보며 나를 보았고, 당신은 나를 보면서 당신을 보았어요. 서로에게서 서로를 보았어요.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그게 메아리로 돌아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나는 당신을 사랑하면, 꼭 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내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당신도 그런 느낌이었을지도 몰라요.

나는 당신을 안개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비밀이 많은 사람. 모든 걸 보여주진 않는 사람.
나는 친해지려면 비밀이 필요했어요. 나에게 비밀이란 하나를 까면 상대도 응당 까야하는 패같은 거였어요.
비밀이란 한 쪽만 공개하면 약점이 되지만, 쌍방이 공유하게 되면 유대감이 되니까.
내가 당신에게 모든 약점을 보여줄 테니 당신도 나에게 모든 약점을 보여주길 원했어요.
그건 내 욕심이었을지도 몰라요.

오히려 내 눈에 안개가 껴있던 사실을 몰랐어요. 당신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그때 저는 많이 아팠어요, 아니 미쳤던 걸지도 몰라요.
그래요, 사실 변명이에요. 이런 내가 불쌍하게 느껴지라고, 동정심이라도 유발하기 위한 변명이에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나를 또다시 동정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우리의 끝은 아름답지 못했어요. 변명하자면 내가 많이 아팠으니까. 당신을 아프게 했어요.
내가 사랑 받는 만큼 당신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처럼, 내가 힘든 만큼 당신도 힘들길 바랬어요.
사실 정말로 미쳤던 걸지도 몰라요.

가끔씩 당신의 말마따나 퍽 서러워질 때가 있어요.
당신의 말마따나 이름 모를 싸구려 담배나 피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당신의 말마따나 당신의 이야기가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잘 몰라요.

당신과 좋았던 기억은 미련으로, 그렇지 못한 기억은 후회란 이름으로 남아있어요.
싸구려 커피처럼, 당신의 이름이 내 입안에서 텁텁하게 맴돌아요.
음미하듯 혹은 헹궈내듯, 당신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