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S#1. 한강

만수 - （헐떡거리며） 휴! 겨우 찾았다. 여기 있었어? 한참 찾았네.
수인 - ….
만수 - 괜찮아! 중간고사 좀 망칠수도 있지. 나도 이번에 망했는데 뭐.
수인 - 지난번보다 10점도 넘게 떨어졌어. 나, 집에 어떻게 들어가지?
만수 - 오! 너도? 딱 나도 그 정도 떨어진 것 같아! 근데, 인생에 성적이 전부가 아니야. 진짜 작은 일부분이라고.
수인 - 그치만….
만수 - 괜찮아! 선생님들도 이번 시험 엄청 어렵게 내셨다 그랬어. 수능 때 잘 보면 되는거야. 와! 근데, 한강 경치는 올 때마다 진짜 좋다.
수인 - 그치? 난 여기 우울할 때마다 와. 와서 경치를 보고 있으면 뭐랄까. 조금은 위안 되는 기분이랄까.
만수 - 진짜? 나도 여기 자주 와! 힘든 일 있으면 여기서 야경을 보면 좀 나아지더라고. 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는데, 우리도 우리 나름 생각이 많잖아. 나는 내가 하고싶은게 있는데, 집에선 엄청 반대해. 엄청 힘든 길이라고! 난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은데….
수인 - 넌 하고 싶은 걸 찾았어? 그게 뭔데?
만수 - 나? 음…. 나는 말이지….


S#2. 만수네 집

[E] 심장 쿵쾅거리는 소리

（기계음） 귀하의 합격 여부는 불합격입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수 - 나 왔어.
엄마 - 아들! 어떻게 됐어?
만수 - 아 몰라. 잘래.
엄마 - 아들!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E] 취업률, 청년실업 관련 뉴스 여러 멘트 오버랩.



S#3. 만수의 방
수인과 통화하는 만수.

만수 - 여보세요?
수인 - 자기야! 대박! 나 지금 일하는 곳, 정규직 계약했어! 다음 달부턴 나도 정규직이야! 대박이지?
만수 - 와…. 그래, 역시 될 줄 알았다니깐. 우리 자기 장하다. 축하해!
수인 - 그치? 자긴 이번에 넣은 거 어떻게 됐어? 잘 됐어?
만수 - 나? 아…. 이번에도 잘 안됐어.
수인 - 괜찮아! 나도 이거, 몇 십 군데를 넣어서 겨우 된 거야! 우리 자기도 금방 될 거야! 정규직 된 기념으로 내가 내일 맛있는 거 쏠게! 요즘 우리 얼굴도 잘 못 봤잖아.
만수 - （고민） 어….
수인 - 내가 맛있는 거 쏘겠다는데 안 나올 거야?
만수 - 아니…. 요즘 맨날 니가 사잖아.
수인 - 괜찮아! 취준생이 돈이 어딨어? 맘 편하게 나와! 알았지? 나 일해야 하니깐 이따 연락할게!

[E] 전화기 끊는 소리

만수 - 아…. 엄마! 나 용돈 좀….


S#4. 가게 안
수인과 식사하는 만수

[E] 고기 굽는 소리

수인 - 맛없어? 왜 멍 때리고 있어.
만수 - 아니 그냥….
수인 - 나 초밥 먹고 싶었는데, 자기가 고기 더 좋아해서 고기 먹으러 왔단 말이야. 응? 얼른 먹자아.
만수 - 그래. 먹자, 먹자. 고기 다 타겠네.
수인 - 자기야, 너무 우울해하지마. 어떻게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해. 나도 오래 걸린 거 자기가 옆에서 다 봤잖아! 군대도 기다렸는데 이것도 못 기다려 줄까봐?
만수 - 그러게. 어떻게 바로 취업을 해.
수인 - 생각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그쪽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자기 같은 인재를 몰라보는 회사가 웃긴 거지. 다들 나중엔 땅치고 후회할걸?
만수 - 하하…. 그랬으면 좋겠다.
수인 - 참! 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롯데월드 반값이래. 간만에 갈래? 우리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 때 한 번 가구 못 갔잖아. 나 자이로드롭 진짜 타고 싶단 말이야.
만수 - 아! 나 이번 주에 스터디그룹 모임 있어서….
수인 - 토요일? 그러면 일요일에 가자! 아무래도 토요일보다는 일요일에 더 사람이 적을 것 같았어!
만수 - 자기야, 나 일요일은 학원가야 되는 거 알잖아.
수인 - 아 맞다! 나도 주말근무 있었지 참. 어휴, 회사생활도 정말 못해 먹겠다니깐.

[E] 고기 굽는 소리

S#5. 수인이네 집 앞
수인과 다투는 만수

만수 - 조심히 들어가.
수인 - 응….
만수 - 전화할게.
수인 - 너무 신경 쓰지 마. 자기는….
만수 - 그 얘기 좀 그만하면 안 돼?
수인 - 어?
만수 -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루 종일 왜 그런 얘기 만해?
수인 - 아니 난 네가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만수 - （말을 끊으며） 뭘 또 신경 쓰지 말란 거야! 난 괜찮다니깐!
수인 - 아니 난….
만수 - 네가 자꾸 그러는 게 더 신경 쓰여! 잊을만하면 자꾸 생각나게 만들잖아.
수인 - 네가 신경 쓰이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해? 오늘 하루 종일 말도 잘 안하고 멍하니 딴 생각하고. 너야말로 오랜만에 봤는데 할 말이 그렇게 없어?
만수 - 그럼 내가 할 말까지 다 준비해서 널 만나야 돼? 너한테도 면접처럼 준비해야 되는 거야?
수인 - 뭐? 내가 축하 받으려고 한건 아니지만, 축하한단 말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나는 뭐 너 위로해주러 나온 줄 알아?
만수 - 누가 위로해 달랬어?
수인 - 뭐? 됐어. 그만하자. 동네사람들 다 듣겠다. 나 들어갈게.
만수 - 수인아….


S#6. 술집
무원과 만난 만수

무원 - 나올 거면 빨리 나오지, 뭘 그리 튕겨?
만수 - 뭐야? 둘이서 술 마셔? 금동이는 왜 안 나왔어?
무원 - 아, 너 몰랐구나. 걔 공무원 준비한다고 바빠.
만수 - （놀라며） 뭐? 공무원?
무원 - 그래! 요즘엔 공무원이 답이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노량진으로 학원 다닌다고 바쁘다더라.
만수 - 그럼 학교는?
무원 - 한 학기 남기고 휴학했대. 공무원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자퇴는 오바지. 붙으면 한 학기 대충 다니다 졸업하겠지 뭐. 아무리 공무원이 된다 한들, 학교에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졸업장은 받아가야지.
만수 - 하긴 그건 그렇네. 졸업장은 따야지. 넌 공부 좀 잘 돼 가냐?
무원 - 모르겠다. 공부가 내 길이 아닌 건 확실한데, 때려치던가 해야지.
만수 - 에휴, 팔자도 좋네.
무원 - 네가 할 소리냐? 너 이번에 원서 넣은 거 잘 됐어?
만수 - 넣은 게 한 두 개냐. 잘 됐으면 신나서 너한테 먼저 술 먹자고 연락했겠지.
무원 - 괜찮아 임마, 우리 같은 놈들이 백 만 명이 넘어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느긋하게.
만수 - 안 그래도 학자금 대출도 밀려 있는데…. 막막하다니깐.
무원 - 학자금대출? 어휴. 한 건 공부 밖에 없는데 무슨 빚더미에 앉아있냐.
만수 - 국가 장학금 신청은 해봤어? 야, 그거 좀 이상하지 않냐.
무원 - 이상해? 뭐가? 우리 집 1분위 떴는데?
만수 - 뭐? 1분위? 그래 이상하잖아. 받아가는 놈들만 받아간다니깐 그거.
무원 - 아니 아버지가 계속 신청하라고 해서 신청했더니, 1분위 딱 뜨더라! 1분위 200만원! 반 값 등록금의 시대가 도래했다!
만수 - 야, 너처럼 금수저 같은 놈이 1분위 받아가니깐 우리 같은 서민이 못 받잖아!
무원 - 내가 받고 싶어서 받냐? 나라가 넌 1분위야 하고 돈 주는데 뭐 어쩌냐.
만수 - 천장에 굴비 매달고 밥 먹는게 우리 집인데, 정작 받아야 될 사람은 못 받고 안 받아도 될 사람이 받고, 부익부 빈익빈이지 이게! 어휴.
무원 - 야 됐다, 술 마시러 와선 씁쓸한 소리만 하네. 짠이나 합시다. 짠!
만수 - 크으, 무원아, 얼마 전부터 생각한 건데, 나도 공무원이나 준비 할까. 어떤 것 같아?
무원 - 만수야! 미친 소리 하지 말고 하던 것 마저 하세요. 얼마나 아깝냐. 졸업하고, 영어에 봉사에, 뭐에, 뭐에! 어? 네가 여태 한 게 있는데! 너 공무원처럼 가만히 일하는 거 겁나 싫어하잖아. 아무리 요즘 같은 세상엔 먹고 살 정도만 되도 성공 한 거라지만, 그건 아냐. 니가 어떤 놈인지 아니깐 하는 말이야.
만수 - 큰 성공 안 바래 임마. 먹고 살 정도 딱 그 정도만 바란다 나도. 근데 먹고 살 정도도 못할 것 같다 난.
무원 - 우리 만수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긍정적이었던 놈이. 만수야 우린 잘못이 없어요. 이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백 만 명이나 우리처럼 술이나 퍼먹고 있는 거야. 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근데 제일 슬픈 건, 이 취업난이 다 자기 잘못인줄 알아. 내가 부족해서. 내가 잘 못해서. 그게 아닌데 말이야.
만수 - 어휴…. 그러게 말이다. 너도 그냥 아버지 카페 받아 임마.
무원 - 난 그럴 생각 없다니깐. 내 힘으로! 혼자 자수성가한다. 근데 오늘 왜 수인이가 잠잠하냐? 술 마신다 하면 맨날 전화오더니. 설마 헤어졌냐?
만수 - （버럭하며） 헤어지긴. 아 몰라, 나도 미치겠다. 요즘. 걔는 일 하는데 나는 이러고 있으니.
무원 - 뭐? 걔 취업했냐? 이야. 진심 부럽다. 너 임마, 수인이한테 잘해. 내가 봤을 땐 걔 만한 애도 없어. 꽉 잡고 있어. 걔가 잘못했어도 무릎 꿇고 싹싹 빌란 말이야. 주변 애들 봐도, 여자 친구 사귀는 애중에 걔가 제일 낫더라. 성격 좋지, 이쁘지! 게다가 취업까지 했어? 이야 너 어떡하냐 이제.
만수 - 나도 알고 있으니깐 그만해. 술이나 마셔.


S#8. 수인의 방

수인 -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소연 - 왜? 언니. 또 뭐 잘 못한 거야? 사고 쳤지?
수인 - 아니…. 내가 기획안 낸 거 맘에 든다네.
소연 - 오! 한건 한 거야? 웬 일이래! 한 턱 쏴! 치킨! 치킨!
수인 - 근데 선배가 한 번만 도와달래. 이번 달 구조조정 들어가는데, 자기 짤리기 직전이라고.
소연 - 엥? 그건 뭔 소리야.
수인 - 자기 기획안으로 내 달란 거지.
소연 - 뭐? 그게 뭐야. 언니가 낸 기획안을? 완전 도둑놈 심보잖아. 그냥 싫다 그래!
수인 - 아 나도 진짜 짜증나. 근데 어떻게 그래 선밴데…. 이렇게 부탁하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이번에 내가 냈으면 회사생활 탄탄대로였는데….
소연 - 이런 게 사회생활이란건가. 난 그렇게 부당하게 못 산다. 아니 선배! 제가 낸 아이디어인데 왜 선배가 가로채요? 그냥 쿨하게 능력 안 되면 나가세요! 해 버려.
수인 - 뭐? 그렇게 했다간, 내가 가장 먼저 나가게 될 걸? 그래도 내가 신입 중엔 제일 이쁨 받는 것 같아. 근데 다음 주는 또 내내 야근이야….
소연 - 야근을 또 해? 아니 그 회사 진짜 웃긴다. 인턴은 인턴이라고 부려 먹더니, 이젠 정직원 되니깐 정직원이라고 부려 먹는 거야?
수인 - 원래 막내가 다 그렇지 뭐. 이리 불리고 저리 불리고. 너도 이제 겪게 될거야.
소연 - 아니, 돈이라도 더 주면 몰라. 야근수당도 안 준다며? 사원이 무슨 봉인 줄 알아. 나 같으면 때려 친다. 이 다크서클 내려 앉은 거봐. 한 참 이쁠 나인데. 언니 취업하고 더 늙었어. 남친이 뭐라 안 해?
수인 - 걔도 취업한다고 바빠. 요즘에 취업 안 돼서 민감한지, 얼마 전에 싸웠어.
소연 - 그거 때문이 아니라, 언니 얼굴 때문이라니깐. 거울 좀 봐.
수인 - 시끄러! 너까지 스트레스 주지 마. 회사에서도 싫은 소리 듣느라 짜증나는데 너한테까지 들어야겠어? 너 때문에 생기는거야.
소연 - 언니. 인생이란 연극의 주인공은 자신이란 말이 있잖아. 잘 생각해봐. 그냥 말해버려.
수인 - 그만 떠들고 공부나 해라. 그러고 보니 싸우고 나서 연락 한 통 없네.

[E] 휴대폰 진동소리

소연 - 타이밍 기가 막히게 오는구만. 왜 언니 같이 성질 더러운 사람이랑 사귀냐. 이해가 안가 정말.
수인 - （말 끊으며） 조용히해! （말투가 차분해진다.） 여보세요?
소연 - 푸하하하하!
만수 - （취기 가득한 목소리） 우리 수인이 안자고 뭐해요? 퇴근했어요?
수인 - 뭐야 또 술 마셨어?
만수 - 또라니! 얼마나 오랜만에 마셨는데…. 정말 너무해. 관심도 없구만!
수인 - 됐고, 나 오늘 술주정 받아 줄 기분 아니거든. 끊자.
만수 - 왜? 직장상사한테 혼났어? 아니면 이가 또 까불어?
수인 - 얼른 끊자니깐.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만수 - 수인아. 지난번엔 내가 미안해. 너도 취준생 해봤으니깐 알거 아냐?
수인 - 뭐가 미안한데? 지금 술 먹고 사과하는 거야?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야?
만수 - 아, 미안하다니깐. 내가 조금 민감했어, 그땐.
수인 - 됐고 끊자. 나 잘래.

[E] 전화 끊긴 소리

만수 - 어? 아…. 밧데리 다 됐네. 아오!
소연 - 끊으라고 진짜 끊네? 에휴, 남자들이란.
수인 - 시끄러워! 너도 얼른 자.

나레이션（수인） - 인생이란 연극의 주인공은 나다. 하지만, 모든 연극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S#9. 만수의 방
J기업 서류 면접을 통과한 만수.

만수 -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보세요….
무원 - 야 잘 들어갔냐? 어제 기억이 하나도 안나. 뭔 일 없었지?
만수 - 아…. 죽겠다. 오늘 스터디그룹 가야 되는데.
무원 - 아, 진짜 이제부터 금주다. 술 마시자고 하지 마라.

[E] 문자 알림 소리

만수 - 어…. 잠깐만. （문자를 읽으며 확인 ）J기업 서류전형? 나 서류전형 합격했다는데.
무원 - 뭐? J기업? 합격했다고?
만수 - 어…. 내일 모레 면접 오래.
무원 - 아~ 이 새끼. 이러기냐. 나만 백수 되게 생겼네. 이럴때가 아니다. 야, 끊어

[E] 전화 끊어지는 소리

만수 - 아…. 나도 이럴 때가 아니지.


S#10. 만수의 방
J기업 면접을 준비하는 만수.

만수 - 안녕하세요! J기업에 뼈를 묻을! 아니 아니지. 안녕하십니까! J기업의 노예가 될! 백만수입니다. 이것도 아니야.
엄마 - 아들! 면접 준비 하는 거야? 이번엔 또 어디야? 지난번에 어디 넣었어JT지?
만수 - 엄마! 놀라지 마시라. J기업 붙었어!
엄마 - 뭐? J기업? 아니, 아니 이게 웬일이야! 장하네! 우리 아들!
만수 - 그냥 서류전형만 붙은 거라 아직 몰라. 면접 준비 하고 있는데, 잘 되가는지 모르겠네.
엄마 - 어디 엄마 앞에서 한 번 보여 줘봐.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건 처음보네. 암, J기업인데 열심히 해야지! 진작에 이렇게 좀 하지 그랬어.
만수 - 평소에도 열심히 했어. 엄마, 내가 이번엔 당당하게 붙어서! 맛난 것도 사드리고! 옷도 사드리고!
엄마 - 오 정말? 얼른 옷 봐두고 있어야겠네! 요즘은 뭐가 이쁜가…. 참, 아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잘 안 되면….
만수 - 아니 엄마, 엄마 아들 못 믿어? 잘 될 거라니깐!
엄마 - 아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야. 요즘은 공무원도 괜찮다던데. 무엇보다 안정적이잖아. 아들, 공무원은 어때?
만수 - 아니, 엄마. 난 계속 책상에 앉아서 일 할 생각 없다니깐!
엄마 - 아니, 그냥 어떠냐고 물어본거야. 아들 이번에 J기업 붙으면 되잖아!
만수 - 그럼! 엄마 나만 믿고 있어.
엄마 - J기업만 붙으면 이곳, 저곳 자랑하느라 바쁘겠네! 요즘 아줌마들 사이에서 아들 얘기 나오면 좀 그랬는데 이제 당당히 얘기 할 수 있겠어. 호호호.


S#11. 수인이네 집
회식을 마치고 들어온 수인

소연 - 언니! 뭐하다 이제 들어와? 어후! 술 냄새! 술 마셨어? 왠 또 술이야!
수인 - （한껏 취한 목소리） 우리 사랑하는 동생! 공부하고 있었어요? 어유 기특해라! 오늘! 언니가 회사에서 회식을 했어요.
소연 - 아 절루 가! 냄새나! 술 좀 빼지, 주는대로 다 받아 먹냐? 멍청하게. 그리고 엄마 아빠 주무시니깐 조용히 해!
수인 - 그러게.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냐. 우리 똑똑한 동생은 수능 얼마나 남았어요? 한 100일 남았나?
소연 - 시끄럽고 내가 알아서 공부하니깐 조용히 자. 안 그래도 심란해. 언니, 나 엄마, 아빠가 오늘 뭐라는 줄 알아? 공부하지 말고, 졸업하고 바로 일이나 하래.
수인 - 일? 무슨 일? 엄마 아빠 가게?
소연 - 그래. 무슨 이 나이부터 슈퍼마켓을 해? 스무 살 짜리가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남들 다 학교 다니면서 연애 할 시기에 가게 지켜야겠어? 내가 가게 물려 받으려고 공부한 줄 알아?
수인 - 그거…. 내가 받으면 안 돼?
소연 - 언니. 많이 취했구나. 대학 졸업해서 취업까지 했으면 됐지. 무슨 가게는 가게야. 나도 언니 처럼 4년제 나와서 회사 들어가고 싶은데, 아빠가 자꾸 전문대 가서 일하거나 가게 물려받거나 하래잖아. 진짜 짜증난다니깐. 내가 공부 조금 못 한다고 엄청 차별 당하는 것 같다니깐.
수인 - 그래 소연아…. 사람이 하고 싶은걸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더라. 꿈이 없으면 죽은거나 다름 없다고 하잖아. 정말 그런거야. 소연아. 너도 너가 꼭 하고 싶은 걸 해.
소연 - 뭐래, 아직 20대면서. 얼른 가서 씻고 잠이나 자.
수인 - 꼭 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대학교 가서,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보고! 어! 여러 사람도 많이 사겨보고!
소연 - 아 시끄럽다니깐! 참! 언니, 남친이랑은 잘 풀었어?
수인 - （뜸들이다） …헤어졌어.


S#12. 집
J기업 면접을 위해 집을 나서는 만수

[E] 알람시계 소리

엄마 - 만수 다 씻었어?
만수 - 머리 좀 만지니까 좀 낫지?
엄마 - 아이구 이게 누구 아들이야. 배우해도 되겠네 아들! 여기에 이 넥타이까지 딱 매면 되겠다.
만수 - 웬 넥타이야?
엄마 - 아빠가 넥타이 사가지고 오셨더라. 오랜만에 면접 본다니깐.
만수 - 엄청 부담되는데?
엄마 - 그럼 합격해야지! 넥타이 사줬으니 엄마 옷 사줘야지!
만수 - 엄마가 사준 것도 아니면서. 쨋든 합격해서 올게.
엄마 - 떨지 말고 잘해!
만수 - （문밖을 나서며） 날씨도 좋네! 오늘이야 말로 날이다.


S#13. J기업 면접실
J기업 면접을 보는 만수

면접관A - 아아, 그렇군요. 취미가 참 독특하시네요. 자, 그럼 다시 백만수씨한테 질문 드릴게요.
만수 - 네 준비 됐습니다.
면접관B - 만수씨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나요?
만수 -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곧 사회인으로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것을 응용하며 심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을 성취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면접관A - 오 그렇군요. 백 만수씨 합격입니다! 하고, 만약 만수씨가 지원한 희망 부서에 배치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만수 - 기업의 일원이 된 이상 회사의 방침에 따라 배치된 부서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분야에도 눈을 뜨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에 관해서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면접관B - 만수씨! 오늘 지원자 중 가장 많은 질문 받은 지원자에요. 많이 당황스러웠을텐데, 만수씨가 계속해서 대답을 잘 했어요. 만수씨한테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우리 회사에 입사하셔서 첫 월급을 타면 어디에 쓸 계획인가요?
만수 - 처음 받는 월급이니, 부모님께 감사의 선물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보면서 속 앓이 많이 하셨을텐데, 꼭 보답 해드리고 싶습니다.
면접관A - 효심이 지극하시군요. 꼭 우리 회사에서 봤으면 좋겠네요.


S#14. J기업 앞
J기업 면접을 보고 나온 만수

[E]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만수 - 뭐야…. 수인이 아직도 화났나?

[E] 전화벨소리

만수 - 여보세요?
엄마 - 아들! 어떻게 잘 본 것 같아?
만수 - 어, 엄마. 나쁘지 않아. 내가 맘에 들었는지, 나한테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더라고. 대답하느라 혼났네.
엄마 - 그래? 그럼 좋은 거 아냐?
만수 - 아직 모르는 거긴 한데, 느낌이 괜찮아.
엄마 - 아이고 이럴 때가 아니네. 옷 고르고 있어야겠다. 아빠한테두 알려 드려야겠네. 고생했어~ 아들.
만수 - 합격도 아닌데 무슨…. 알았어. 이따 봐.
엄마 - 참, 아들!
만수 - 응?
엄마 - 아빠 회사 관두실 것 같아.
만수 - 뭐? 왜?
엄마 - 올해까지만 다니신대. 회사 사정상 그렇게 됬대. 그래도 우리 아들이 금방 취직 할 것 같으니까 다행이네.
만수 - 아니, 어쩌자고 왜 그걸 이제 말하신대? 이제 어떻게 하신대?
엄마 - 아빠도 이제야 아셨나보지. 모르시고 얘기 안 하셨겠어. 그러니까 너가 얼른 취업해야지.
만수 - 엄마, 나 여기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 그래?
엄마 -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공무원 시험 준비해야지.
만수 - 아니, 엄마! 지난번부터 공무원, 공무원 거리는데 공무원은 쉬운 줄 알아? 요즘 경쟁률이 얼만데 엄마! 뉴스도 안 봐?

[E] （시위） 계약대로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 전환하라!


S#12. 카페
무원과 만난 만수

만수 - 나오라고 하면 빨리 나오지, 뭐 이렇게 늦게나와. 공부도 안 하는 놈이.
무원 - 방금까지 자다 일어났다. 지만 멋 내고 비교되게. 난 급하게 츄리닝 입고 나왔구만. 아! 너 오늘 면접 봤냐?
만수 - 그래, 이번에 느낌이 괜찮은데…. 모르겠다 하아….
무원 - 이야! 내 친구 백만수 장하다. J기업 사원이 내 친구라니! 만수야 만약에 붙으면 나 맛난 거 사주는 거냐?
만수 - 돈도 많은 놈이 니가 좀 사라. 아직 결과 봐야 되니깐, 설레발치지 마. 다음 주 발표라니깐 기대하고 있어야지.
무원 - J기업은 무슨 질문하냐? 건물 구경도 못간 곳이라 가늠이 안 된다야.
만수 - 다 똑같지 뭐. 자소서 보고 영어 점수 보고. J기업이라 그런지 면접 온 사람들 취미부터 범상치가 않더라. 그 뭐냐. 그래 히말라야. 히말라야 등반한 사람도 있더라.
무원 - 뭐? 히말라야 등반? 이야~ 엄홍길 선생 납셨네 납셨어. 자소서 한 줄 더 채우겠다고 그 짓거리 하는 거 아냐. 참 회사들도 웃겨. 우린 그냥 겁나 평범한 대학생인데, 인생에 굴곡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좋아해요. 이러니 사람들이 별짓거리 다 하면서 소설 쓰고 앉아있지.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야. 자소설. 에휴, 그러려니 해야지 뭐. 우리가 이런다고 사회가 바뀌냐?
만수 - 그러니깐 악착같이 버텨서 거지같은 세상을 바꿔야지.
무원 - 그래 역시 백만수! 이래야 백만수지. 암! 근데 너 수인이랑은 잘 풀었냐?
만수 - 요즘 뭐 이렇게 일이 많은지…. 아까 전화 해봤는데 안 받더라고.
무원 -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정직원 이제 막 돼서 엄청 힘들텐데…. 이리저리 불러 다니느라 바쁜가보다 야.
만수 - 어휴, 그런가….
무원 - 이야! 근데, 수인이 걔도 완전 상황 땡잡았네. 남친이 J기업 사원! 만수야, 안되겠다. 내가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서, 술 한잔 마셔야겠다.
만수 - 야야, 들어가서 취업 준비나해. 무슨 또 술이야? 오늘 술 마실 기분 아니다.
무원 -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겠다는게 아니라, 내 자랑스런 친구가 정말 뿌듯해서 마시는거니 말리지마라.
만수 - 야 됐어. 얼른 들어가서 공부해라.
무원 - 한 잔만, 합시다! 한 잔만!
만수 - 에헤이! 왜 이래.

[E] 전화 벨소리

만수 - 어? 수인이다! 여보세요? 수인아! 전화기 왜 꺼놨었어? 일하고 있었어? 대박! 나 면접 보고 나왔는데 잘 본 것 같아!
수인 - 그래? 축하해.
만수 - 이번엔 내가 밥 쏜다! 나와 수인아! 그때 초밥 먹고 싶다고 했지? 내가 사줄게.
수인 - 우리 그만 만나자.
만수 - 뭐?

나레이션（만수） - 왜 예기치 못한 일들은 어느 날, 한 번에 갑자기 찾아오는 걸까.


S#14. 한강
J기업에 떨어진 만수

[E]（기계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수 - 뭐?

[E] （기계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수 - 하아….
무원 - 여보세요, 어, 만수야.
만수 - 무원아. 나
무원 - 야 만수야. 나 아버지 사업 물려 받기로 했다.
만수 - 뭐?
무원 - 원서 넣는 곳마다 떨어지니깐, 아버지가 그냥 카페하란다. 나도 할 생각 진짜 없었어. 죽어도 안하겠다고 했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이대론 먹고살 길도 안 보이고 아버지가 건물에 따로 내 카페 차려준다니깐 그냥 콜 했어. 내일부터 카페로 출근이야.

[E] 치익! 벌컥벌컥 （맥주 캔 따고 들이키는 소리）

만수 - 크으…. 그래. 혼자 오는게 좋지. 오랜만이네. 오늘따라 사람도 없고…. 경치 좋다.

[E] 휴대폰 진동

만수 - 엄마네. 하아…. 미안해 엄마. 난 진짜 도움이 안 돼는 새끼야. 어릴 때부터 내가 배우고 싶다던 태권도, 피아노, 미술학원 다 보내줬는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하게 해주고, 내가 오고 싶은 대학까지 오게 해줬는데…. 난 언제 엄마가 원하는 거 해줄까? 왜 이렇게 나한테 해준 게 많아!
수인 , 만수 - 하…. 이제 어떡하지?
만수 - 어?
수인 - 자기야…. 아!
만수 - 수인아! 네가 여기 왜 있어? 이제 막 퇴근할 시간인데….
수인 - 나 짤렸어….
만수 - 뭐? 짤려?
수인 - 회사에서 이번에 인턴에서 구조조정을 하는데 정규직 전환자들을 가장 먼저 자르더라….
만수 - 정규직 전환하자마자?
수인 - 지금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시위하고 난리도 아니야. 아직 집에도 말 못했어.
만수 - 그럼 어떻게 하고 있어?
수인 - 독서실 다니면서 다시 취업 준비하려고. 오늘 독서실에 등록하러 갔는데,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고등학교 때 생각 많이 나더라. 고등학교 때 기억나? 우리 둘 다 기말고사 망치고 여기 같이 왔었잖아. 진짜 그때 내 인생 망하는 줄 알았는데…. 대학 못가면 어쩌나 하고.
만수 - 어떻게 그걸 잊겠어. 시험 망쳤다고 엄청 시무룩했었지. 나도 그때 겉으론 신경 안 쓰는 척 했는데 진짜 속으론 얼마나 애가 타던지.
수인 - 지금 생각하면 그땐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나중에 또 그럴 수 있을까? 취업 못 하 던거 별거 아니였다고. 그냥 고등학교 때 생각나서 와 봤어. 입시지옥에서 겨우 벗어났다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어. 우리가 비록 인생의 꽃인 20대라고 하지만, 뭐 이리 힘든걸까. 고등학교 때도 그렇고, 대학교 갓 입학해서도 되게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만수 - 이젠 정말 모르겠더라 정말. 매일 취업 준비만하다가 하루가 가버리니깐. 아무것도 안했던 것처럼.
수인 - 언제부턴가 하루도 참 빨리 가더라. 그럴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져. 그저 취업은 남 얘기인 것 같아. 이러다 평생을 남 부러워하며 살 것 같아 정말 겁나.
만수 - 맞아. 전엔 친구들이랑도 진짜 거리낌 없이 나중에 뭐 하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추억이다.
수인 - 그리워. 그때가. 그때랑 뭐가 달라진 걸까. 그때도, 지금도,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

[E] 문자알림음

엄마 - 아들! 왜 안 들어오니? 취업 준비한다고 고생하는 것 알고 있어서, 엄마 마음이 아프구나. 그래도 우리아들은 어디에서도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깐 잘했잖아. 엄마가 아들 힘내라고 방 깨끗이 청소해놨어. 엄마가 많이 해준 것도 없는데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다시 준비해봐. 엄마가 항상 우리아들 응원하는 거 알지? 사랑해 우리아들!

만수 - 이번엔 느낌이 좋아서 잘 될 줄 알았는데 바보같이 또 떨어졌다.
수인 - 만수야….
만수 - 나 정말 가족한테 미안하고, 면목 없어서 여기서 아까 계속 자책했어. 진짜 계속 자책하니깐 안 좋은 생각도 들더라.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깐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수인 - 응 나도 이제 한결 좀 나아졌어.
만수 - 여기 오니깐 생각났어. 나, 꼭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했었잖아. 너무 잊고 살았던 것 같았는데 드디어 찾은 것 같아.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건데, 옳은 길 틀린 길 그런 게 어딨어. 내가 택한 곳이 내가 갈 길이지 뭐! 우리 같이 백수 탈출해야지! 너가 그랬잖아. 나 안 뽑은 회사들 땅치고 후회할거라고. 수인아, 우리 열심히 해서 그 회사들 다 엿 먹이자!
수인 - 하하하. 그래! 엄청 후회하게 만들어주자!
만수 - 그리고…. 우리 서로 잘 돼서 멋진 모습으로 다시 여기서 보자.
수인 - 응….

만수（나레이션） - 젊음을 가장 사랑하는 자가 젊음을 가장 오래 간직한다는 말이 있다. 젊음과 청춘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우린 아직 스스로를 많이 사랑해야 할 시기이다.


S#15. 엔딩

엄마 - 아들! 어떻게 됐어?
만수 - 아 몰라. 잘래.


소연 - 언니 또 떨어졌어?
수인 - 아 시끄러! 공부나해!
소연 - 난 수능 끝났는데?


무원 - 만수야! 놀러와라. 커피 한 잔 타줄게. 근데 가게 망하게 생겼다. 손님이 뭐 이리 없냐. 파리만 겁나 날리네.

나레이션（만수） - 물론 청춘이 조금, 힘들고 아플 수 있다.

만수 - 안녕하십니까! U프로덕션에 지원하게 된 백만수라고 합니다.

나레이션（수인） -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학점도, 봉사활동도, 영어점수도, 인턴도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 하고 싶은 것,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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